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복제되는 조국들

등록 2025-07-24 22:28 수정 2025-07-30 15:45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결국 낙마했다. 논문 표절이나 총장 시절의 행적도 행적이거니와 자녀의 불법·호화·조기 미국 유학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치명타였을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이진숙 후보자는 ‘여자 조국’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다분히 정치적 명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억울할 것도 없다. 조국의 정치적 복귀를 물심양면 거들고,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전략으로 제22대 총선에서 재미를 본 민주당이 심우정·한동훈·이주호의 아들딸들을 아무리 소환해봐야 조국은 여전히 시대의 아이콘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조국 사면론에 군불 때는 이들이 횡행하는 한 여자 조국, 젊은 조국, 이과 조국, 제3의 조국들이 지겹도록 오래 민주당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강남 스타일’ 돌봄이 공교육 붕괴로

어쩌면 처음부터 명명이 틀렸다. 2019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두고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던 그 일은 조국 ‘사태’가 아니라 조국 ‘현상’이었어야 옳다. 조국이 저지른 잘못의 핵심은 무엇인가. 자신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자본을 이용해 자녀로 하여금 싫은 것은 피하게 하고, 귀한 것은 쉽게 얻도록 만든 부정(不正/父情)에 있다. 이런 종류의 비리가 서울 강남 등 학군지 부유층 사이에서 횡행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들 중 앞장서 자신의 정의론을 설파한 이는 단연 조국뿐이었다. 개천에서 가재나 붕어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던 조국은 그렇게 탐욕스러운 돌봄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조국으로 설명되는 공교육 붕괴 ‘현상’을 짚고 이를 극복하는 데 주력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이 일이 조국 ‘사태’로 번지도록 그저 내버려두기만 했다. 진영 논리에 갇혀 왜 조국 집안만 도륙하냐며 편들던 쪽과 과도한 수사를 종용하며 정권을 흔들려던 쪽 모두에게 큰 책임이 있겠으나 주조연들의 인신을 낱낱이 해부해 무대에 올리고 앞다퉈 티켓을 판 언론, 그 선정적 드라마를 기꺼이 즐기며 엘리트의 몰락을 오랫동안 지켜보던 객석 또한 비판을 면하긴 어려울 것이다.

입시 비리에 이어 서이초 교사 사건으로 우리 교육의 또 다른 문제가 대두됐을 때, 우리는 또 한번 실기했다.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교권을 실추시킨다는 보도에 세상은 다시금 가해자를 찾아 신상을 터는 데만 골몰했다. 당시 불볕더위 속 서울 광화문광장에 선 교사들의 집회 현장에 동행했던 70대의 노작가(김훈)는 아직 ‘발각되지 않은’ 가해자들, 선배 부모들의 사례로 부덕을 학습하는 예비 가해자들의 ‘내 새끼 지상주의’를 비판했다. 모두가 한번쯤 곱씹었어야 할 충고이자 마땅한 문제 제기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조국이 잠시 호명됐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진보 진영의 반발이 쏟아졌다. 작가의 책을 내다버리겠다며 협박하고, 촛불행동 상임대표라는 직함을 단 이는 몰락한 지식인의 교묘한 궤변이고 횡설수설이라며 작가의 대표작까지 폄훼했다.

 

‘조국 현상’이 장기 지속하지 않으려면

바로 그 촛불행동 상임대표라는 이의 친동생이 김민석 총리라는 사실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씁쓸하다. 김 총리는 자녀의 대입 특혜와 유학 비용 논란이 있었음에도 무사히 청문회를 통과하고 내각의 수장이 되었다. 김민석 총리 인준과 이진숙 낙마는 모두 한국 사회에 장기 지속된 조국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이 같다. 현상이 오래 이어지면 결국 구조로 고착된다. 새 정부가 이 현상을 돌파하지 않는 한 인사 사고는 끝이 없고, 조국은 수없이 복제될 것이다.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