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도 모자라 한덕수까지

‘21 토크’는 한겨레21의 지난호 표지이야기를 쓴 기자가 기사나 취재 과정에 대해 쓰는 ‘후일담 코너’입니다. 애초 헌법재판소(헌재)가 2025년 4월4일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한 이후, 12·3 내란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자세히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헌법학자인 신옥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헌·위법한 계엄을 발동한 헌정 질서 파괴 범죄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이라며 헌정 파괴 범죄자에 대한 선거권 제한, 비상계엄 선포 시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계엄법의 개정, 헌정 질서 파괴범에 대한 대통령 사면권의 제한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헌법 질서 회복을 위해 사용하도록 한 국가긴급권을 윤석열처럼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입니다. 저도 그 필요성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2024년 12월26일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3명(정계선·조한창·마은혁)의 임명을 거부한 한덕수는, 헌재가 그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해 직무에 복귀한 2025년 3월24일 이후로 15일 만인 4월8일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했습니다. 이 소식까지만 들었을 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헌재에서도 인정한 한덕수의 위헌·위법 행위(헌법재판관 임명 거부)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덕수가 4월18일 임기가 끝나는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후임자로 서울고법 부장판사 함상훈과 함께, 법제처장 이완규를 지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서 신망이 높다”는 한덕수의 평가와 달리, 이완규는 윤석열의 최측근 인사입니다. 윤석열과 40년 지기인 그는 윤석열이 검찰총장 재직 시절 법무부로부터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받았을 때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대리했고, 윤석열 장모의 변호를 맡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당선 후 출범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일했습니다. 지금은 내란 방조 혐의를 받는 피의자입니다.

국회가 2024년 12월4일 새벽 1시2분께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을 가결할 수 있도록 계엄군에 저항한 시민들, 12월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헌재의 파면 결정이 나올 때까지 4개월 동안 광장과 거리에 나와 ‘윤석열 탄핵’ ‘민주주의 회복’ ‘차별 없는 세상’ 등을 외친 시민들은 ‘윤석열 없는 세상’을 간절히 바란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윤석열의 영향력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을 한덕수는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습니다. 직무 정지 기간 중에 ‘윤석열 탄핵’ 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 헌재와 멀지 않은 종로구 삼청동 총리 공관에 머물렀을 텐데,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나 봅니다. 한덕수는 지금 시민을 능멸하고 있습니다. 이완규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더는 공직자라 할 수 없습니다.

오세진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