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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 불태우는 사회를 막는 방법

④ 모두의 책임
21대 국회 임기 이틀 남기고 ‘의류재고폐기법’ 발의한 이유...“문제의식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함”
등록 2024-12-27 21:58 수정 2025-01-03 14:59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정치는 민생을 말한다. 민생은 다시 ‘먹고사는 문제’, 곧 의식주의 문제로 치환된다. 그렇다면 의식주의 맨 처음에 놓인 ‘의’의 문제, 즉 입고 사는 문제에 관한 우리의 현주소는 어떨까. 동네 거리에서 지하철 환승 통로까지 의류매장은 곳곳에 자리잡고 우리를 기다린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싼 럭셔리 매장도 있지만 고물가 시대에 많은 이들은 ‘가성비 좋은’ 스파(SPA, 제조와 유통 일원화) 브랜드 매장으로 향한다. 불황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대표적인 SPA 브랜드 4곳은 전년 동기 대비 2024년 매출 신장률이 10%에서 많게는 25%까지 뛰어올랐다. 철 따라 만들어진 각양각색의 옷을 언제나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패션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참 반가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우리가 지금과 같은 의류 생산, 유통, 소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정부는 의류기업이 얼마나 폐기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실제로 입는 것에 비해 너무 많은 옷을 만들고, 너무 많이 사고, 입지도 않은 옷을 무더기로 버린다. 이렇게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소모한 대가는 인권유린과 미세플라스틱, 토양오염, 기후위기의 모습으로 돌아와 지금껏 우리가 살아온 세계 그 자체를 위협한다. 우리가 입는 방식이 우리가 살아온 방식을 위협하는 이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제21대 국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의류재고폐기금지법’을 발의했다. 이 글에서 나는 왜 지금 대한민국에 ‘의류재고폐기금지법’이 필요한지, 이 법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추진됐는지, 제22대 국회에서 의류 재고 문제를 포함한 ‘과잉생산-과잉소비-과잉폐기’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의류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유통되고 폐기되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환경적 영향은 무엇인지 일목요연하게 알 방법은 없다. 범위를 국내 의류 기업들의 미판매 재고 의류 규모와 폐기 현황으로 한정한다 해도 한국 정부는 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물론 환경부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매년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 통계를 발표한다. 이에 따르면 2022년 폐의류 발생량은 10만t이 조금 넘는다. 그러나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HS코드 6309 ‘사용하던 의류와 그 밖의 사용하던 물품’)에 따르면 2022년 중고의류 수출량은 30만t에 달한다. 두 데이터 사이에는 20만t이라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2023년 7월12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과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 등이 함께 주최한 ‘순환경제사회 전환을 위한 패션 재고 폐기 금지 방안 국회 토론회’에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연간 중고의류 수출량 30t과 전국 의류수거함에서 배출된 의류 중 선별 이후 수출되는 비율 약 70%를 적용해 환산하면 연간 국내 의류폐기물 발생량이 약 61만t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2024년 9월21일 서울 마포구 ‘망원정x’에서 열린 가을맞이 바자회에 기부된 중고 의류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연 ‘망원정x’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치적 대화가 있는 시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 전 의원 제공

2024년 9월21일 서울 마포구 ‘망원정x’에서 열린 가을맞이 바자회에 기부된 중고 의류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연 ‘망원정x’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치적 대화가 있는 시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 전 의원 제공


7대 의류기업에 묻자 한 곳만 “소각 안 한다”

연간 최대 61만t에 달하는 이 의류폐기물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우선 미판매 재고 의류의 경우에는 의류업계, 특히 대기업 및 중견기업에서 3년간 유통시장에서 최종 판매되지 않은 재고 의류는 브랜드 이미지 손상 방지를 위해 소각을 선호한다고 홍수열 소장은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2022년 방송대상을 받은 한국방송(KBS) 다큐멘터리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의 기업 대상 설문조사로 뒷받침된다. 제작진이 국내 매출 상위 7대 의류기업을 대상으로 미판매 재고 의류 처리 방식을 묻자 그 가운데 네 곳은 소각한다고 답했고 한 곳은 공개가 불가하다고 답했으며 한 곳은 아예 응답을 거부했다. 소각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놓은 곳은 한 곳에 그쳤다.

의류수거함으로 보내진 중고의류는 어떻게 될까. 같은 다큐멘터리는 의류수거함으로 보내진 중고의류의 고작 5%가 빈티지 의류로 유통되고 15%는 쓰레기로 분류되며 80%는 국외로 수출된다는 데이터를 제시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산하 연구소인 ‘경제복잡성관측소’(OEC)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중고의류를 많이 수출하는 나라이고, 이렇게 수출한 의류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5개국은 말레이시아, 인도, 필리핀, 칠레, 타이 순이다. 이렇게 수출된 의류들은 해당 국가에서 의미 있게 재활용되기보다는 또다시 처리 곤란한 쓰레기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로 인한 오염과 건강 문제, 수입 중고의류가 자국 의류산업에 끼치는 악영향은 모두 수입국이 떠맡아야 할 몫이다. 북반구의 선진국들이 남반구의 저개발국가들에 중고의류를 수출하는 이유는 재고를 창고에 쌓아두거나 소각하는 것보다 수출하는 것이 비용절감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의류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양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의하면 의류 생산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나 된다. 섬유는 알루미늄과 함께 재료 단위당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의류 세탁 과정에서 떨어져나온 미세플라스틱은 전세계 해양 미세플라스틱의 주요 방출원이다. 지구상 폐수의 20%는 의류 염색 과정에서 사용되는 염료와 표백제로 인해 발생한다. 저렴한 의류를 빠르게 생산하기 위한 비인간적 생산 시스템은 노동자들을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밀어넣는 비극을 낳는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무려 1134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3년 방글라데시의 ‘라나 플라자’ 의류공장 붕괴 사고다.

2024년 9월21일 서울 마포구 ‘망원정x’에서 열린 가을맞이 바자회에서 중고 의류를 판매하는 모습.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연 ‘망원정x’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치적 대화가 있는 시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 전 의원 제공

2024년 9월21일 서울 마포구 ‘망원정x’에서 열린 가을맞이 바자회에서 중고 의류를 판매하는 모습.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연 ‘망원정x’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치적 대화가 있는 시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 전 의원 제공


파타고니아 팀장 “재고 대단히 민감한 이슈”… 자발적 공개 어려워

이러한 상황에서도 기업과 정부의 인식은 아쉽기 짝이 없다. 지난 국회 토론회에 사정상 서면으로 발언을 대신한 파타고니아코리아의 김광현 팀장은 “패션 기업들에 재고 관리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대단히 민감한 이슈”라며 기업이 자발적으로 재고 관련 정보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시민들의 주도적 활동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사실 재고 관리는 제품 생산과 유통, 소비, 폐기라는 전 과정의 일부다. 지금 시급한 것은 ‘과잉생산-과잉소비-과잉폐기’로 이어지는 고도의 자원소모적 경제를 순환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총체적이고 구체적인 제도 설계와 시행이다. 그러나 정부도 기업도 섬유 및 의류산업의 매출 규모 증가에만 관심을 둘 뿐 기업 이익처럼 보이는 숫자 이면에 어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지, 그 비용과 책임을 줄이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면 다행인 지경이다.

제21대 국회의 ‘의류재고폐기금지법’은 이러한 막막한 상황에 작더라도 구체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보기 위해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민과 정치가 만나 함께 만들어낸 작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2023년 1월, 나는 지인의 소개로 ‘다시입다연구소’가 주최한 ‘패션 기업 재고 폐기 금지 법률 제정을 위한 모임’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연구소의 정주연 대표는 팔리지 않은 의류 재고가 브랜드 가치 제고를 이유로 소각되는 것을 포함해 전세계적 의류산업의 생산 과잉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사회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한편,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국외의 법 제도 개선 사례를 소개하며 국내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취지에 공감한 나는 다시입다연구소, 연구소의 자문역인 법무법인 선의 김보미 변호사와 함께 의류 재고를 폐기물이 아닌 자원으로 순환할 수 있도록 하는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의원실은 자문 변호사와 함께 법안을 성안했고 다시입다연구소는 법령 개정을 촉구하는 대중 캠페인을 벌였다. 법안 취지를 쉽게 알리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에서 ‘버려진 새 옷’을 가득 쌓아놓은 전시와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2024년 9월21일 서울 마포구 ‘망원정x’에서 열린 가을맞이 바자회에서 중고 목도리를 산 장혜영 전 의원의 동생 장혜정씨.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연 ‘망원정x’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치적 대화가 있는 시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 전 의원 제공

2024년 9월21일 서울 마포구 ‘망원정x’에서 열린 가을맞이 바자회에서 중고 목도리를 산 장혜영 전 의원의 동생 장혜정씨.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연 ‘망원정x’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치적 대화가 있는 시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 전 의원 제공


국내에 폐기물과 관련된 법률은 크게 폐기물관리법,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3가지다. 우리는 우선 의류 재고 폐기 문제에 입각해 ‘의류재고폐기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의 일부 개정안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는 사업자의 책무로 의류 등 순환이용이 가능한 재고의 폐기를 원천적으로 금지했고, 현행법상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돼 있는 ‘순환이용 촉진 대상 품목’을 법률로 상향하고 여기에 ‘의류’를 포함하는 한편 기부와 순환이용 등 재고품 처리 순서를 준수하도록 했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폐기물을 중심에 두고 유가성과 유해성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순환자원으로 인정할 것을 환경부 장관에게 요청하는 소극적 방식의 현행 순환자원 인정 시스템을 반대로 뒤집는 방안도 제시했다. 우선 대통령령으로 적극적으로 순환경제 촉진에 나설 필요성이 있는 업종과 규모의 사업자를 ‘순환자원 사용 지정사업자’로 정한 뒤 환경부 장관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협의하에 순환자원 기준요건의 충족 여부를 심사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지정된 사업자에게는 순환자원 사용 의무를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며, 순환이용 가능한 폐기물을 폐기처분한 경우에는 부담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2024년 9월21일 서울 마포구 ‘망원정x’에서 열린 가을맞이 바자회에 기부된 중고 의류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연 ‘망원정x’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치적 대화가 있는 시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 전 의원 제공

2024년 9월21일 서울 마포구 ‘망원정x’에서 열린 가을맞이 바자회에 기부된 중고 의류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연 ‘망원정x’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치적 대화가 있는 시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 전 의원 제공


새 옷 소각 막는 법안, 공동발의자 찾기 어려웠다

‘의류재고폐기금지법’은 2023년 7월 국회 토론회 이후 진작 성안됐지만 정의당 5개 의원실 이외에 공동발의자를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어 실제로 발의된 것은 2024년 5월27일이었다. 제21대 국회의 임기를 겨우 이틀 남겨둔 시점이었다. 공동발의자 찾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법안 내용의 문제라기보다 진영적인 측면의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22대 총선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공동발의자를 찾을 수 있었던 살풍경한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난다. 냉정히 말해 이틀 뒤면 기간 만료 폐기될 법안을 굳이 발의한 것은 제22대 국회에서 누군가 이 문제의식을 이어가주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다행히 제22대 국회의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이 순환경제촉진법을 개정하는 방식의 ‘의류재고폐기금지법’과 함께 미사용 재고 의류의 실태를 파악하고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대상 품목에 의류를 추가하는 폐기물관리법과 자원재활용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런 반가운 노력이 제대로 된 논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쉽게도 제22대 국회의 첫해는 자원순환처럼 시급한 민생 현안을 심도 깊게 논의하는 ‘민의의 전당’이기보다 여야의 진영적 대결정치에 새파랗게 경색된 ‘의제의 무덤’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민주주의로 자신에게 주어진 개혁 과제들을 해결해나가야만 한다. 여전히 정치인들은 민생을 말한다. 그렇다면 의식주의 ‘의’부터 시작해보자. 이 추운 겨울, 우리의 피부를 감싸고 있는 이 옷들의 미래에서 변화를 시작해보자.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망원정x 대표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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