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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공백 9개월, ‘가방 항암’도 밀린다

등록 2024-10-26 13:50 수정 2024-10-31 05:05
국회에서 기자회견 하는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 김성주 제공

국회에서 기자회견 하는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 김성주 제공


“의·정 갈등 8개월 만에 대화 물꼬 텄다.”

2024년 10월22일,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가 ‘여당·야당·의료계·정부 협의체’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많은 언론이 기대감을 나타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에 나선 뒤 의료계 단체가 공식적으로 공론장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환자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10월22일 오후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입장문을 내어 “이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이고 지금도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환자들을 배제한 협의체를 출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한의학회, 의대협회의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환영할 수 없고, 정치권이 환자를 빼고 협의체를 발족하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성주(62)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반대 성명을 냈다. 이유는.

“9개월째 의정 갈등이 계속되고 의료 공백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그동안 정부와 의료계 전문가들끼리만 대화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피해를 감내하고 있는 국민과 환자들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결국 이 상황은 다시 왜곡되고 해결책을 찾는 데 실패할 것이다. 정부는 국민과 환자들을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하고, 의사단체들도 국민과 환자의 건강권을 위한다면서 정작 대화의 장에서 환자단체를 제외했다. 결국 환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정협의체 논의가 잘 안 될 거라고 보는지.

“쳇바퀴를 돌 것이라 예상한다. 결국 정부는 의대 증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의사단체는 의대 증원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입장이지 않나. 서로 입장만 내세우면서 공전하는 양상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론협의체에 참여하라는 제안이 없었나.

“전혀 없었다. 전공의와 의사단체들은 말로는 ‘환자와 국민께 죄송하다. 기다려달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 환자들과 만나서 이야기하지는 않으려 한다. 사실 우리를 피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서도 몇 번이나 전공의 대표나 의사단체와 만나고 싶다고 제안해봤지만 의사들은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들만 만나려 한다. 환자들을 만나지 않는다.”

—현 상황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가 진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투입, 진료보조(PA)간호사 합법화 등 임시방편뿐이었다. 2024년 초에 정부가 막상 의대 증원을 발표했지만 그렇게 늘린 의대생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지역의료, 필수의료, 공공의료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처음 내세웠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청사진을 가지고,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 공백 9개월, 현재 상황은 어떤가.

“대학병원에 전공의가 없어서 중증질환자들이 받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근에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환자 스스로 항암제를 맞는 가방 항암(가방을 싸고 다니며 직접 병세를 관리하는 것)마저도 밀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본인도 식도암 4기 환자인데, 상태는 어떤지.

“수술받고 예후를 추적 관찰 중이며, 2025년에 최종적으로 의료진의 판단을 받을 예정이다. 건강상태는 수시로 바뀌는데, 지금처럼 의료 공백이 큰 상황에서 급격하게 병세가 나빠지면 응급치료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할까봐 걱정된다.”

—한겨레21에 바라는 점은.

“의대 증원 발표부터 최근까지 보도를 분석해보면 한국 언론은 의사단체나 전문가, 정부의 입장에 큰 비중을 두고 보도한다. 양쪽 극단에 서서 싸우는 이야기를 보도하면 자극적으로 보이고 많이 읽힐지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는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의료계와 정부가 갈등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국민과 환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해결책을 원하는지 깊이 있게 보도해주면 좋겠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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