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막으려던 전두환은 17년이 지난 1997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뒤늦게나마 사법적 단죄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의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12·3 내란사태에서는 남은 기록을 찾기 힘들다. 피의자들은 조직적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 빈 기록의 자리는 거짓말과 변명이 채우고 있다. 내란 기록에 대한 보존과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조민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2024년 12월3일 밤,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계엄 선포 직후 사무실에서는 ‘이 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회의록은 내란 행위의 실체를 보여주는 첫 번째 증거’라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위기 상황에서 기록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공개를 요구하는 것, 이것이 센터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센터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국무회의 기록이었다. 헌법 제89조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시 반드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보공개센터가 비상계엄 관련 국무회의 기록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대통령 비서실과 행정안전부에 먼저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두 기관 모두 기록이 없다고 답변했다. 국방부에도 국무회의 회의록 관련 문서 일체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하지만 국방부 역시 ‘생산하거나 접수한 적이 없다'며 정보 부존재 결정을 내렸다. 국무회의 회의록이 없다는 것은 비상계엄 선포가 처음부터 불법이었음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계엄의 결정 과정이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투명성과 책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12·3 내란사태에서 공공 기록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내란 사태에서 공공기록물은 무너진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다시 작동시키는 핵심이다. 공공기록물은 시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기반이다. 또 공공기록물은 불법적 내란 행위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다. 각종 지시와 명령, 보고와 결재 문서는 내란 범죄에 동참한 사람들과 최종 책임자를 찾아내는 출발점이 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책임을 묻는 차원을 넘어 공권력이 헌정 질서 파괴에 동원된 전체 과정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센터가 12·3 내란사태와 관련해 가장 관심을 갖는 문제는.
“내란 관련 기록물들의 폐기 위험 문제다. 2024년 12월1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비상계엄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국가기록원에 관련 기록물 폐기 금지를 요청했음에도, 국가기록원은 실질적인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공공기록물법 제27조의 3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으로서 조사기관 또는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거나 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해 긴급히 필요한 경우'에 국가기록원장이 기록물 폐기 금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기록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기록원은 존재 이유가 없다. 내란 사태라는 역사적 중대 범죄 앞에서조차 침묵하는 국가기록원의 행태에 분노를 넘어 절망감을 느낀다.”
—정보공개센터가 현재 하는 활동은.
“현재 두 가지 핵심 과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먼저 국가기록원의 즉각적인 폐기 금지 조치 시행을 촉구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번 국무회의 회의록 사태를 계기로, 주요 기록 생산 의무를 위반했을 때의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정부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공개 체계를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정보공개법 전면 개정, 회의공개제도 도입 등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한겨레21 등 언론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사태는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계기였다. 언론에서도 기록물의 존재 여부, 보존 실태, 공개 여부 등을 지속해서 감시하고 보도해주길 바란다. 시민들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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