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아시아에서 헌재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는 2024년 8월29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에 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 조항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에 관해 그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과소보호금지원칙 및 법률유보원칙에 반해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른 공백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는 2026년 2월까지 관련 법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이 사건은 2020년 청소년 기후활동가 19명의 청구로 시작했다. 이후 2021~2023년 영유아 62명이 낸 헌법소원을 포함해 3건의 헌법소원이 추가로 접수됐다. 쟁점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도록 한 탄소중립기본법 등이 위헌인지 여부였다. 청구인 쪽은 정부의 계획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 커져 헌법상 평등 원칙이 위배된다고 주장했고, 정부는 무리한 감축 목표가 도리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맞섰다. 2024년 4월과 5월 두 차례 공개변론을 거친 헌재의 판단은 헌법불합치였다.
이번 헌재 판단의 핵심은 2031년 이후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감축 목표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에 있다.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서는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 비율만 정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 19년간의 감축 목표에 관해서는 어떤 형태의 정량적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 목표를 규율한 것으로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40% 감축하기로 한 부분에 대해선 “배출량이 정점에 이른 2018년부터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를 때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전제로 한 중간 목표에 해당함은 분명하다”며 “40%만큼 감축한다는 수치만으로는 전 지구적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관점에서 우리나라가 기여해야 할 몫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거나 기후변화의 영향과 온실가스 배출 제한의 측면에서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간 유럽에선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판결이 종종 있었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판결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2019년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기후위기를 막기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21년 독일 정부의 기후보호법 감축 목표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독일은 이 결정이 나온 뒤 2030년 감축 목표를 55%에서 65%로 올리고, 2040년 목표도 88%로 새롭게 세웠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한국도 탄소중립 계획을 다시 세우고 입법 절차를 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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