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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도 못 해본 우승, 한국계 학교 106년 만에 고시엔 제패

등록 2024-08-23 17:58 수정 2024-08-24 13:58
2024년 8월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2-1 승리를 거둔 뒤 한국계 국제학교인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마운드로 몰려나와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8월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2-1 승리를 거둔 뒤 한국계 국제학교인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마운드로 몰려나와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일한국계 민족학교인 쿄토국제고가 2024년 여름 고시엔(甲子園·전국 고등학교 야구선수권 대회)의 최종 승자가 됐다. 올해로 106회를 맞은 이 대회에서 한국계 학교가 우승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여름 고시엔은 일본이 어떻게 세계 야구를 제패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대회다. 등록된 고교 야구팀만 3700여 개, 17만여 명에 달하는 일본의 야구 소년들은 모두 ‘한여름 밤의 꿈’ 고시엔을 위해 청춘을 불사른다. 하지만 영광의 무대는 좁다. 단 49개 팀만이 고시엔이 열리는 한신야구장을 밟는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서도 고시엔 무대를 못 밟아본 선수가 허다하다. 오타니 쇼헤이도 고시엔 본선을 한 게임밖에 뛰어보지 못했다.

재일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는 2024년 8월21일 치른 준결승에서 아오모리야마다 고교를 3-2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8월23일 만난 결승 상대는 간토다이이치고교였는데 소문난 잔치에 걸맞은 명승부가 펼쳐졌다. 양 팀 선발의 치열한 투수전 끝에 정규이닝 동안 0:0 무승부를 기록한 채, 연장 10회에 돌입했다. 교토국제고는 승부치기에서 먼저 2점을 얻고, 이후 상대 득점을 1점으로 막으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교토국제고의 투수와 포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고,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어 들었다. 

교토국제고는 재일동포들이 민족정신과 문화를 교육하기 위해 모금을 벌여 1947년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에서 시작했다. 학생 수가 160여 명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인데, 재적 학생의 65%는 일본인, 35%는 한국계라고 한다. 한국어, 한국사, 한국 문화 등을 교육하는데, 무엇보다 교가가 한국어 가사로 돼 있다. 고시엔은 지역 예선부터 모두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르는데 본선 대회는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가 빠짐없이 생중계한다. 교토국제고가 본선에서 5연승 하는 동안 경기 때마다 선수들은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교가를 불렀고, 우승이 확정된 뒤에도 어김 없이 선수들이 도열해 교가를 제창했다. 

고시엔은 한국 야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춘계와 추계로 나눠 치르는 학생 야구의 대회 일정 자체가 봄여름에 치르는 고시엔이 모델이다. 얼마 전까지 한국 야구의 화두였던 ‘구속 혁명’도 고시엔에 등장했던 ‘체격이 크지 않지만 빠른 공을 던지는 야구 소년’들에게 우리를 빗대 한 고민이었다. 교토국제고가 2021년 4강에 이어 2024년 고시엔에 우승하며 신흥 강자로 떠오른 상황은 ‘아시아 쿼터제’ 도입 등 한국 프로야구에도 새로운 논점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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