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로 갑자기 시끄러워서 (공간이 있는지) 알았죠. 그 전까진 몰랐어요.”
2024년 7월30일,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10층 규모의 한 상가 건물에서 만난 ㄱ씨는 바로 옆 공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건물 8층과 9층은 6월 말부터 인테리어 공사로 시끄러웠다. 소음의 출처는 901호와 902호, 그리고 802호다. 특히 802호는 한눈에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는 문이 없다. 801호와 803호 사이로 가로 70㎝, 높이 2m의 얇은 불투명 플라스틱 벽이 보였다. 그 뒤로 802호 내부가 흐릿하게 보인다. 안쪽은 바닥에 콘크리트만 보일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세 상가가 같은 시기에 공사 중인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 겉보기에 어떤 업체가 무엇을 운영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901호와 902호, 그리고 802호에서는 20년 동안 안마시술소 형태의 성매매가 이뤄졌다. 특히 문이 없는 802호는 이 건물에 입점했던 한 안마시술소가 만든 ‘비밀공간’이었다. 공교롭게도 802호 바로 옆 상가에는 성폭력·성매매 피해자의 상담이나 법률 지원 등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 산하 서비스 기관이 입점해 있었다. 한쪽은 성매매 피해자를 도와주는 정부 기관이, 다른 한쪽엔 입구가 가려진 채 성매매가 이뤄진 비밀공간이 콘크리트 벽 하나를 두고 공존했던 셈이다.
9층 면적(901호, 902호) 682㎡(약 200평), 8층(802호) 289.9㎡(87평). 도심 중심지의 넓은 상가는 어떻게 20년 동안 비밀공간을 활용해 성매매를 해왔을까. 이런 성매매를 통해 수익을 올린 이들은 누구일까. 이 공간을 사용했던 이들에 대한 판결문과 방문 취재를 통해 추적해봤다.
22년 전인 2002년, 이 건물 9층에 이아무개(55)씨가 안마시술소를 연다. 객실 16개 규모(682㎡)의 ‘ㄹ안마 시술소’다. 이씨가 보유한 902호와 지인으로 추정되는 박아무개(59)씨가 보유한 901호를 합쳐 공간을 마련했다. 안마시술소에 맞게 별도 공사도 진행했다. 현행 의료법상 ‘안마'는 전문기관에서 수련을 받고 안마사 자격증을 가진 안마사만 영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안마사 자격증은 시각장애인에게만 발급된다. 이씨는 시각장애인이고, 한국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 이사를 할 정도로 대외적으로 ‘스포츠인’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운영하는 ㄹ안마소는 대외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운영됐다. 성매매가 이뤄진 것이다. “부천권에서는 나름 크고 유명한 곳” “○○지역에선 1번 업소”라는 후기가 있을 정도로 큰 규모다.
그러던 2005년, 이씨는 법정에 서게 됐다. 혐의는 성매매처벌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이었다. 그해 12월 이씨에게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성매매 업소 운영자이자 상가 주인 이씨가 처벌받았지만, 그 뒤로도 ㄹ안마소에서 이뤄진 성매매 후기는 끊이지 않았다. 이씨가 성매매 영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802호를 ‘비밀공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2005년 6월29일 이 건물의 802호 상가 지분 42%를 사들였다. 이후 이씨와 함께 장애인 스포츠계에서 활동하는 정아무개(53)씨가 802호 상가 지분 12%, 901호를 보유했던 박씨가 나머지 46%를 사들였다.
이씨는 이렇게 확보한 802호도 안마시술소 영업에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902호와 802호를 연결하는 비밀통로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802호에 들어가는 다른 출입구는 없고, 902호를 거쳐 비밀통로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바깥에선 802호나 비밀통로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만든 802호 비밀공간에서 단속을 피해 성매매 영업을 했다.
그러니까 ㄹ안마 시술소를 찾는 이들은 엘리베이터 9층 버튼을 누르고 올라간다. 9층에선 자격증을 지닌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손님을 맞았다. 합법 안마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손님 중에는 이곳에서 여전히 성매매가 이뤄진다는 정보를 알고 온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비밀리에 802호로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성매매가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은 9층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비밀공간 802호를 만듦과 동시에 이씨는 성매매 ‘주범’에서 ‘공범’의 자리로 자신의 신분을 바꿨다. 성매매 포주이자 상가 건물주였던 자신의 이중적 지위 가운데 건물주의 지위만 앞세우기로 한 것이다. 그는 다른 시각장애인을 ㄹ안마시술소 바지사장으로 내세웠다. 이씨가 ㄹ안마 시술소 운영자 이름으로 앞세운 이는 모두 9명에 이른다.
그러면서 이씨는 충남 공주시로도 성매매 영업 범위를 확장했다. 역시 여기서도 시설비용 등 자본만 투자하고 안마시술소에는 시각장애인을 바지사장이자 운영자로 앞세우는 같은 수법을 썼다. 이씨는 건물주이자 실질적인 운영자로서 매달 수익금으로 300만원씩 받아 챙겼다. 하지만 이 업소는 안마사 자격이 없는 타이 여성들을 고용해 성매매 알선을 했다가 출입국관리법과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2018년 기소됐다. 이씨는 역시 ‘주범’이 아닌 ‘공범’ 자격으로 법정에 섰다.
이씨가 이렇게 건물주의 지위만 앞세우기로 한 건 법적 처벌의 강도를 고려한 꼼수다. 성매매처벌법은 ‘성매매에 제공되는 사실을 알면서 자금, 토지 또는 건물을 제공하는 행위’ 또한 성매매 알선으로 보고 처벌하지만, 일반적으로 포주보다는 처벌 형량이 낮고 처벌 사례도 적다. 건물주나 투자자가 되면 “성매매가 있었는지 몰랐다”고 잡아뗄 여지도 생긴다. “이 사건에서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과 마지막으로 개전의 기회를 줄 여지가 있다고 보이는 점을 고려했다.” 2018년 10월 판사는 이씨에게 벌금형과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양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1심에서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 벌금 500만원형이 나왔다. 추징금으로는 그가 성매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 8500만원이 선고됐다.
2022년 12월 이씨는 정씨와 함께 부천 ㄹ안마 시술소와 관련해 다시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법정에 섰다. 이때도 역시 성매매 알선 혐의를 받았는데, 이씨와 정씨, 박씨는 ‘성매매에 제공되는 사실을 알면서도 건물을 제공’한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다. 앞서 이씨가 이미 써놓은 수법에 따라 ㄹ안마시술소 운영자는 다른 사람이었고, 공식적으로 이씨와 정씨, 박씨는 건물 임대료만 받는 것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러면서 자신들이 임대한 ㄹ안마시술소에서 “성매매가 이뤄지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선한’ 건물주로서 보유한 부동산에 성매매 업소가 입주해 오히려 피해를 봤다는 입장을 취했다.
다만 이번 재판부는 이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씨 등이 2005년 ㄹ안마시술소를 차릴 때부터 802호에 비밀공간을 만드는 등의 인테리어를 진행했고, 임대차계약서에서 802호를 제외하고 임대했다는 정황 등을 고려해 성매매가 이뤄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이씨 등은 앞서 2021년 5월 성구매자로 위장한 경찰에 의해 ㄹ안마시술소가 단속됐을 때 건물주로서 경찰의 단속 사실을 통지받았지만, 이후에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고 2011년 7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월세로 12억6천만원을 받아온 사실도 드러났다. 그래놓고도 법정에서 “성매매가 이뤄지는지 몰랐다”고 주장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법원은 결국 이 월세 수익 12억6천만원 가운데 6억원가량을 추징하기로 결정했다.
이씨는 2023년 12월 실형이 선고되면서 법정 구속됐다. 건물주의 자리에만 숨어 있었던 이전 재판 때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다만 정씨는 시각장애인이고 2차례 벌금형 처벌을 받은 것 외에는 다른 범죄 전력이 없다며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아울러 이 상황에서도 ㄹ안마시술소 9층 상가를 보유했고, 비밀공간 802호의 공동 지분을 소유한 박씨는 국외 체류 등 사정을 감안해 처벌을 피했다.
이 사건은 불법 성매매 산업의 그늘에 숨어 이익을 착취하면서 법적으로는 거의 처벌조차 받지 않는 성매매 업소 건물주가 어떻게 ‘공범’과 ‘주범’ 사이를 오가며 기생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정씨는 한겨레21 탐사팀과 만난 자리에서 여전히 “그저 임대료를 받으려고 한 것뿐이었다”며 성매매는 몰랐다는 취지로 말했다. 구체적인 사안들을 연이어 묻자 “더는 언급하기 싫다”며 답을 피했다. 한국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 관계자는 “소속 이사가 재판 중인 사실은 파악하고 있다”며 “최종 확정판결이 나온 뒤에 이사 결격사유가 있는지를 판단할 예정”이라고 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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