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고백해야겠습니다. 기사 쓴 시간보다 어떻게 쓸지 머리 싸매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민간인 학살을 증언한 또 한 명의 베트남전 참전군인(“학살은 있었다” 소수가 되는 용기와 외로움)에 대해 쓴 표지이야기 말입니다.
<한겨레21>은 1999년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이사(당시 <한겨레21> 통신원)의 기고글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을 시작으로 20년간 꾸준히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논의를 다뤄왔습니다. 현지 주민들 증언은 물론 참전군인의 용기 있는 고백도 자주 다뤘죠. 최근에 증언한 분으로는 2018년 퐁니·퐁녓 학살 증언자로 나온 해병대 청룡부대 1중대 1소대 소속 류진성씨가 계십니다. 그 뒤로 6년 만인 2024년 1월, 또 다른 청룡부대 소속 참전군인 송정근씨가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는 증언을 보탰습니다. 1진으로 파병된 그는 1966년 1월 푸옌성에서 대규모 학살이 있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오래 다뤄온 주제인데 왜 새삼스럽게 고민했냐고요? 일단 송씨가 제시한 학살을 구체적으로 명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송씨가 학살 시기(1966년 구정 휴전)와 장소(푸옌성 투이호아)를 비교적 자세히 밝혔지만, 푸옌성의 경우 관련 자료가 빈약해 정확한 명칭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퐁니·퐁녓 학살’처럼 이름이 붙으려면 생존자와 관련 증빙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료 없이 병사의 기억만으로 학살 진상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고민은 ‘참전군인 증언 듣기’에 동반되는 논쟁이었습니다. 참전군인은 생존자만큼이나 중요한 전쟁의 핵심 당사자입니다. 이들의 경험담은 파병의 면면을 밝혀주는 귀한 역사적 증언이지요. 그러나 참전군인들은 역사적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펼쳐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는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 “있었더라도 북한군 소행”이라고 부인하며 피해자들을 재차 상처 입혔죠.
송정근씨는 학살을 전적으로 인정했습니다.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동료 군인들에게 ‘학살을 인정하자’고 설득도 하셨지요. 한편으로 그런 비극이 일어났던 이유도 설명하고 싶어 하셨어요. 학살이 정당하다는 취지가 아니라 병사들도 살육을 지시받았음을 말하려 했지요. 한국군이 때로 동료 전우의 죽음을 보복하려, 때로는 골라내기 힘든 게릴라를 “쓸어버리려” 학살을 택했다는 송씨.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애초 그런 전쟁에 우리 국민이 왜 가야 했나?’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습니다. 방아쇠를 당긴 군인들의 책임은 절대로 면책될 수 없지만, 그곳에 국민 32만 명을 보낸 국가의 책임이 시야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송씨의 이야기를 그대로 실으려 했습니다. 송씨가 기억하는 학살 전후 상황과 방아쇠를 당겨야 했던 병사들의 번민, 전쟁터에서 겪은 죽음의 공포와 평생을 따라다닌 전장 트라우마까지도요. 파병의 역사적 맥락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그로 인해 더 정확히 반성하고 사과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한겨레21>은 더 많은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민간인 학살을 비롯해 베트남전이 개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폭넓게 듣고자 합니다. 경제성장 논리가 다 담을 수 없는 국민 개개인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공동체의 자성으로 가기 위함입니다. 베트남전 파병 60년이 되는 2024년, 여러분의 증언을 기다립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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