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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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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땀눈물…그 숙련공의 몸들이 문학이었다

숙련노동자 12명의 피, 땀, 눈물, 근육까지 담은 <베테랑의 몸>
등록 2023-09-01 08:45 수정 2023-09-07 02:49

장인, 달인, 고수의 몸을 기록했다. <베테랑의 몸>(한겨레출판 펴냄)은 “그냥 하는 거”라며 오랜 시간, 다만 열심히 해온 노동자의 신체에 쓰인 이야기를 받아 적은 책이다. 책갈피마다 ‘선수들’의 자부심과 멋이 뿜뿜 뿜어져 나온다. 이들은 숙련노동자다. 숙련은 연습, 시도, 정정과 반복으로 완성된다. 베테랑 안마사는 고객의 몸을 만지면 그의 직업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몸은 일의 기억을 새기는 성실한 기록자”이기 때문이다.

기록노동자 희정과 사진작가 최형락이 만난 12명의 베테랑들. 균형 잡는 몸, 관계 맺는 몸, 말하는 몸까지 책은 3부로 나뉜다. 세공사 김세모는 손을 떨면 안 되기 때문에 휠 날에 금속이 튕기는 것을 오롯이 손가락 서너 개로 버텨낸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일한다는 마음”으로 동료까지 헤아리는 것이 베테랑의 자세였다. 조리사 하영숙은 “배에 힘 딱 주고” 쌀 포대도 번쩍 들어 옮겼다. 30년 넘게 담그는 김치도 매년 조금씩 다르게 해본다. “하는 일을 막힘없이 어려움 없이 해나갈 수 있는” 베테랑이 되려고 오늘도 배우고 익힌다. 로프를 이용한 고소 작업자인 ‘로프공’ 김영탁은 로프 탈 때 좋다고 한다. 걸리적거리는 게 없기 때문이다. 실리콘 보수 작업을 하면서 “내 안전은 내가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기록노동자 희정은 그것을 베테랑의 덕목으로 여기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썼다.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이 베테랑이라는 어부 박명순·염순애는 35년 전에 마련한 ‘사랑호’에 오른다. 뜨거운 해를 오롯이 받아내고 물에 온통 젖어가며 이들은 배에 몸을 길들였다.

조산사 김수진, 안마사 최금숙, 세신사 조윤주는 손바닥으로도 기운을 전한다.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근육을 손끝으로 느낀다. 마필관리사 성상현은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됐다. 저자 희정은 그에 대한 존중과 별개로, 말은 왜 달려야 하는지 질문한다. 노동을 구성하는 관계에 함께 있는 비인간 동물의 자리가 어디인지도 묻는다.

수어통역사 장진석, 일러스트레이터 겸 전시기획자 전포롱, 배우 황은후는 ‘말하는 몸’이자 ‘표현하는 베테랑’이다. 아흔의 식자공 권용국은 빠르고 정확하게 활자를 채운다. 제일 자신 있는 건 없다. “아무거나 줘도 다” 할 수 있는 베테랑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활자 사이에서 그는 길을 잃지 않았다. 베테랑의 몸에서는 문학이 흘러나왔다. <한겨레21> 연재로 읽을 때와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이 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또 못 버린 물건들

은희경 지음, 난다 펴냄, 1만7800원

소설가 은희경이 12년 만에 펴낸 신작 산문. 술잔, 감자칼, 구둣주걱, 우산과 달력, 목걸이 등 작가가 좋아하는 친근한 물건으로 써내려가는 일상 이야기. 물건이나 사람이나 잘 정리하는 게 미덕이 된 이 시대에 인간과 물건의 관계, 사적인 감정과 시간의 소중함을 함께 일깨운다. 2022년 7월부터 12월까지 <채널예스>에 연재한 원고를 다시 매만졌다.

사람이 사는 미술관

박민경 지음, 그래도봄 펴냄, 1만9800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15년간 근무하면서 인권교육 운영 업무에 집중해온 박민경의 책. 세계 명화에서 인권의 주요 주제를 발견해 설명한다. 중세 마녀사냥부터 오늘날 승무원 복장 규정과 재난 참사까지 인권 이슈를 피카소, 들라크루아, 고흐 등의 작품을 통해 들려준다. 그림을 보고 술술 읽으며 하는 인권 공부.

혐오하는 민주주의

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1만8천원

‘팬덤 정치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정치학자 박상훈이 썼다. 팬덤 정치를 다섯 가지 차원으로 나누고 팬덤의 유형과 개선 가능성을 검토한다. 한국의 팬덤 정치는 초기에 정치 양극화로 정의됐으나 이제 그렇게만은 볼 수 없게 됐다. 팬덤 정치는 이미 정당을 장악하는 패턴이며 사회적 고통과 비용은 중하층 시민이 감당한다고 분석한다.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 1·2

장남주 지음, 푸른역사 펴냄, 각 권 2만2천원

저자는 독일에서 20여 년 거주하면서 독일 역사가 시민에게 어떻게 전승되는지 살폈다. 베를린의 공공장소를 걸으면서 그 도시의 불편한 과거사와 현대사의 기억을 현장감 있게 전한다. 1941년 1천 명 넘는 유대인을 싣고 강제수용소로 향하는 첫 열차가 출발한 그루네발트역 17번 선로, 브란덴부르크문, 동베를린 지역 빵공장, 로자 룩셈부르크 광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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