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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잘 알지도 못하면서…과학은 ‘의심하라’ 한다

등록 2023-08-25 23:45 수정 2023-08-31 13:46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를 2023년 8월24일 오후 1시께 시작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전경. 연합뉴스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를 2023년 8월24일 오후 1시께 시작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전경. 연합뉴스

젊은 막스 플랑크가 1875년 수학과 물리학을 놓고 고민할 때, 주위 사람들은 이제 물리학이 밝혀낼 건 없다고 진지하게 충고했다. 빛의 속도가 일정함을 보여준 ‘마이컬슨-몰리 실험’(1887년)의 마이컬슨도 과학 연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때야말로 현대 물리학이 태동했다. 알다시피 1905년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연보>에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그로부터 10년 뒤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현대 물리학의 중력 이론을 발표한다.(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8장)

1세기 전 ‘천재’ 과학자들은 한 치 앞을 못 봤다. 공교롭게도 현대 물리학의 특성은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모른다. 시간이 공간의 일부고 중력 역시 힘이 아니라 휘어진 시공간의 부산물이라는데, 어떻게 범인의 지력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른 의미에서도 우리는 모른다. 불확정한 요소로 인해 알 수가 없다. 빛은 양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이 동시에 나타나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른다.

1911년 순수한 라듐을 분리해낸 성과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는 1934년 백혈병으로 죽었다. 방사성원소 중독이다. 마리 퀴리는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실험을 거듭했다. 라듐의 위험성이 제기된 것은, 라듐이 든 성분으로 페인트칠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죽어가면서였다. (위키백과) 현재까지도 방사능 때문에 마리 퀴리의 연구노트는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접근할 수 있다.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리더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을 위협용으로 도쿄만에 떨어뜨리기보다 도시에 떨어뜨리자고 했다. 하지만 끔찍한 인명피해를 보고 반핵주의자가 되었다. 1946년 원자폭탄 실험을 했던 비키니섬의 주민은 4년 뒤 섬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소개됐다. 이들은 1974년에야 섬으로 돌아갔다.

과학이라면 오히려 ‘믿으라’ 하지 않고 ‘의심하라’고 한다. 과학적 엄밀성은 견고하지 않고 확률적으로 열려 있다. 과학이 완벽하게 구축해놓은 것을 경제성 논리와 인간의 실수가 무너뜨리는 걸까? 아니다. 과학은 애초 완벽하지 않다.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한 것은 과학자였고, 한국에서 1800여 명(2023년 1월 말 기준)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첨단 과학기술의 요람 반도체 산업은 세정 물질에 의해 젊은 청년이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할 것을 몰랐다. 생리대는 전 성분이 공개되는데도 여전히 발암물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간이 프로그래밍하는 슈퍼컴퓨터는 270㎜의 비가 온 날, 최대 90㎜가 내린다고 날씨를 예보한다.

2023년 8월24일 오후 1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여전히 뜨거운 원자로의 노심을 식히는 데 사용하고 모아둔 물을 바다로 방출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핵 잔류 오염수 방류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해줬다. 주로 선봉에 내세운 것은 ‘과학’이다. 반대는 괴담이 됐다. 대통령은 여러 차례 “일본 오염수는 과학에 기반한 투명한 과정으로 처리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1년 전 뽑은 대통령이 이런 일을 벌일 줄 누가 알았을까. 임기 5년밖에 안 되는 정부가 적어도 30년, 한 세대에 걸쳐 일어날 일을 결정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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