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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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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

등록 2023-08-18 23:55 수정 2023-08-23 15:25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두마 제공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두마 제공

“비가 오니까 조개들이 입을 다 벌린 거예요. 물이 들어오는 걸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기다린 건 바닷물이었지만, 입으로 들어온 건 빗물이었습니다. 그렇게 갯벌은 그대로 조개무덤이 됐습니다.

비슷한 걸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2020년 남해안에서 있었던 홍합양식장의 떼죽음입니다. 수하연(양식을 위해 바닷속으로 늘어뜨린 줄)에 딸려나오는 모든 홍합이 썩은 냄새를 풍기며 죽어 있었습니다. 장마 뒤 바람 없는 날씨가 지속됐습니다. 강에서 장마에 휩쓸린 흙탕물이 바다로 덩어리째 들어왔습니다. 바람이 없는 잔잔한 바다, 물덩어리(수괴)가 바닷속에서 흩어지지 못하고 그대로 뭉쳐서 바다에 머무릅니다. 육지에서 쓸려온, 산소가 거의 없는 이 수괴를 빈산소수괴라고 부릅니다. 홍합은 물속에서 질식사합니다. 날씨가 일으킨 재난이었습니다.

조개가 떼죽음한 갯벌의 재난은 100% 인간의 짓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인간이 공들인 대역사(大役事)였습니다.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의 갯벌을 방조제로 바다와 분리하는 간척사업이었습니다. ‘새만금 ’이란 말도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 만경평야와 김제평야처럼 ‘만금 ’이 나는 논을 만들어낸다는 뜻이었습니다 . 전두환 정부인 1987년 새만금간척종합사업을 발표하고, 노태우 정부에서 1991년 첫 삽을 뜬 뒤, 노무현 정부인 2006년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진행합니다. 이렇게 이은 33.9㎞ 방조제 길이는 기네스북에 등재됐습니다. 막아서 생긴 땅이 서로의 것이라 우기는 인간을 갯벌의 생명은 죽어가면서 봤을 것입니다.

이런 새만금의 역사가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로 재조명됐습니다. 날씨가 재난이었더라, 비슷한 조건의 일본 야마구치 잼버리에선 나무를 많이 심어서 문제없었다더라, 여러 부처가 협의하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더라, 급하게 갯벌을 메운 게 문제더라…. 여러 원인이 거론되는 와중에 ‘생명을 살려내라’는 유명한 표어를 만들어낸,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를 비롯한 4개 교단의 종교인이 삼보일배를 했던 일과 엮인 ‘새만금’을 기억해냅니다.

맨 앞의 조개무덤은 <수라>(황윤 감독)의 한 장면입니다. 수라는 새만금의 갯벌입니다. 조개의 영혼이 기도해 지금 맞춤한 듯 도착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새만금의 죽음을 기록하려 했지만, 갯벌의 생명력에 의해 ‘삶’이 그려집니다. 놀랍게도 인간이 죽인 갯벌에 생명이 살아 있습니다. 박기용 기자는 “생명 다양성을 실제로 느껴지게 했다”고 평했습니다. (박기용 기자는 전형적인 ‘T형 인간’인 것을 첨언합니다. 제1476호 ‘청춘의 봄비’ 참조) 제가 <수라>를 보러 광복절에 간 큰 영화관은 관객으로 거의 꽉 찼습니다. 박수가 터져나오는 영화관을 오랜만에 봤습니다. 다큐에서는 ‘새만금으로 찾아가자’고 노래 <백두산>을 개사해 부릅니다. <수라>를 추천합니다. <수라>를 찾아가십시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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