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악귀>의 주요 장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악귀로 설정했겠어?” 이유진 선임기자가 회사 앞에서 퇴근 전 한잔을 함께 들이켤 때 한 말입니다.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 <악귀>는 20대에 이미 세상의 모든 짐을 진 듯한 구산영(김태리)이 주인공입니다. 이혼한 어머니와 살지만 구산영이 힘들게 집안을 ‘하드캐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편의점에서 일했고, 배달 알바와 대리기사를 뛰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합니다. 산영은 한강 다리 위에 자주 섭니다. 이유를 묻는다면 죽고 싶어서 온 건 아니라 하겠지만, 귀신들은 그런 영혼을 잘 알아봅니다. 자존심이 대수겠어? 돈에 영혼을 팔 수도 있어. 어디 돈 떨어지는 데 없나.
점점 악귀는 평범해져가지만(가족력이라는, 악귀가 된 원인까지 가세) 원한을 젊은 여자에게만 부과하지 않은 점은 돋보입니다. 하지만 ‘한정판으로 나온 명품’이라는 클리셰는 이번에도 20대 여성에게 주어집니다. 아귀에 삼켜진 20대 여성은 예약 경쟁이 치열한 결혼식장, 명품 등을 위해 사람을 해칩니다. 아귀는 남이 가진 것을 탐내다 자신을 잃고 마는 귀신입니다.
국민의힘 실업급여 개선 청문회에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가 말했습니다.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옵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에 해외여행 가요. 그리고 자기 돈으로, 일했을 때 살 수 없었던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그 앞의 말은 이렇습니다. “웃으면서 방문하세요. 장기간 근무를 하고 갑자기 실업을 당해서 저희 고용보험이 생겼었던 그 목적에 맞는 남자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시는데….” 이 사회를 지탱하는 남자들은 ‘실업’하셨는데 다른 분들은 ‘시럽급여’ 받는다고 조어도 만들어서 조롱했습니다.
그분 말씀 중에 “웃으면서 온다”는 것도 걸립니다. 20대 여성에게 누가 ‘상 찌푸릴 권리’를 주나요? 실업 창구에 가서도 발랄하게 말해야 했을 것 같습니다.
<한겨레21> 르포작가 지원 공모제 당선작 하미나 작가의 <미쳐 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에서는 사회의 강요 속에 속이 문드러지는 여성이 여러 명 나옵니다. 딸기는 너무 꽉 깨무는 습관 때문에 앞니를 전부 치료받고 있습니다. 현지는 샤워하면서 울고는 연구실에 가서 동료를 보면 반갑게 이야기합니다. 필자는 ‘과도한 사회적 미소’ 덕분에 최악의 상태일 때도 이를 알아차리는 이가 드물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귀신도 자주 봤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제 배운 나눗셈이 너무 무서워. 딱 나누어떨어지지 않아서 끝없이 수가 반복돼….’ 민지는 ‘내가 이걸 하지 않으면 나쁜 일이 생길 거야’ 하는 전형적인 주술적 사고를 합니다. 얼마나 힘들면 악귀가 되었겠습니까.
*르포작가 지원 공모제를 개편해 만든 표지이야기 공모제 제2회에선 당선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지원자들에게는 ‘당선작 없음’을 전자우편으로 알려드렸습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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