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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동성애가 권장된 이유는?

근현대 한국 여성들의 독서문화 탐구한 <위험한 책읽기>
등록 2023-07-14 22:56 수정 2023-07-21 12:29

식민지 시기 대중잡지엔 여학교 출신인 자신의 동성애 경험을 고백하는 글이 심심찮게 실렸다. 당시 사회 분위기상 ‘동성연애’는 용인되다 못해 권장되는 측면도 있었다. 이성 교제를 막아 여성의 순결을 지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점차 동성애는 병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이 시기에 발행된 잡지와 기관지 등은 여성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의 존재가 될 것을 요구한다.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2010년대 후반, 고전소설 <심청전>을 재해석한 웹툰 <그녀의 심청>에서 심청과 장승상 부인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나온다. 이 여성 서사는 이성애·가부장적 규범을 부순다.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다.

<위험한 책읽기>(허윤 지음, 책과함께 펴냄)는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국 여성들이 읽은 책과 그를 둘러싼 문화를 다룬다. 저자는 잡지·소설·기관지·순정만화·웹툰 등 다양한 매체를 폭넓게 연구했다. 국가는 ‘바람직한 여성상’을 설파했지만, 소녀와 여성은 그에 마냥 순응하지만은 않았다. 여성교양을 표방한 잡지에는 주부의 일탈을 다룬 통속 작품이 실렸고, ‘문학소녀’들은 현모양처가 아닌 여고생·여대생 작가가 되어 낭만적 사랑과 섹슈얼리티를 탐구한다. 여성이 만들고 여성이 읽는 텍스트에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과 불화, 여성의 욕망과 섹슈얼리티 등이 반영됐다.

1980년대는 여성운동 조직이 출범하고, 대학에 여성학과가 생기면서 젠더에 대한 정치·사회적 의제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운동, 문단 내 성폭력 등 2010년대 중후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장은 큰 변화를 맞는다. 페미니즘적 인식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독해하는 여성 독자가 늘어났다. 소설 <82년생 김지영> 출간 이후 벌어진 각종 사회현상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세계를 다르게 인식하게 된 독자의 욕망과 결합해 만들어졌다.

저자는 “억압의 근본적인 원인이 젠더에 있다는 고민을 하는 광장의 젠더정치와 책읽기가 접속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그는 한국 여성들이 지극히 개인적 행위인 독서로 자기 의제를 표현하며 사회운동 등 정치 행위를 한다고 본다. 문학이 원래 내재한 정치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 여성들의 ‘위험한 책읽기’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1이 찜한 새 책

나는 자살 생존자입니다

황웃는돌 지음, 문학동네 펴냄, 1만8천원

가족·친구·연인 등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자살로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자살생존자’(Suicide Survivor)라고 한다. 책은 자살생존자의 치열한 애도 기록이다. 글쓴이의 아버지는 사업하다 막대한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어디에서도 자신과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보거나 들을 수 없었기에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김승섭 등 지음, 동아시아 펴냄, 2만원

재난은 불평등했다. 여성·아동·장애인·비정규직·이주민 등 취약계층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케이(K)-방역’ 성과를 폄훼할 수는 없지만 성공만 기억하면 안 된다. 지난 3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이에 따라 다음 감염병 재난이 닥칠 때 한국 사회의 대처도 달라질 것이다.

나의 조현병 삼촌

이하늬 지음, 아몬드 펴냄, 1만7천원

조현병 환자의 가족 이야기다. 글쓴이의 삼촌은 20대 때 조현병이 발병해 입·퇴원을 반복했다. 어머니는 동생의 상태를 주변 사람에게 철저하게 숨겼다. 병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었고,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지금보다 더 강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숨길수록 낙인은 선명해지고 고통은 커질 가능성이 크다. 저자가 “병은 소문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문학동네 펴냄, 1만8천원

홈리스, 가난한 독거노인, 깡촌에 사는 할머니, 죽음을 앞둔 엄마 등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구술생애사를 써온 저자가 자기 삶을 담은 산문집을 냈다. 저자는 2022년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 인터뷰에서 구술생애사 작업에 대해 “남들은 다 쓰잘데없는 짓이라 말해도 난 이 이야기를 꼭 사회적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남의 생애를 자꾸 뒤지다보면, 내 생애가 자꾸 뒤져진다”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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