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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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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묻은 아파트

등록 2023-07-14 22:28 수정 2023-07-18 11:31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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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내가 사는 아파트도 누군가의 죽음 위에 지어진 것이었다.

2017년 4월27일 발행된 <경기일보> 디지털뉴스를 요약하면 이렇다.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이 ○○아파트 신축 현장에 대해 ‘산업안전보건 정기감독’을 실시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 153건을 적발했다. 정기감독을 한 이유가 중요한데, 4월15일 이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주택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가 ‘추락사’한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이름과 ‘산업재해’를 넣고 검색한 결과 나온 뉴스였다.(아파트에 산다면 한번씩 해보기를 권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건폭’(건설업 폭력배)이라 부르는 이들은 오늘도 아파트와 빌딩을 짓다가 떨어져 숨지고, 우리는 그렇게 지은 집에서 살아간다. 재산 증식의 행복까지 누리며 산다.

아파트 앞 ‘추모비’ 어떨까

‘우리 단지 현장에 무슨 일 있나요? 앰뷸런스가 왔다 갔다 하고 난리예요.’

몇 해 전 운 좋게 신도시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예비입주자 인터넷카페에 가입했는데, 거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당첨된 아파트 현장 주변에 살고 있는 이들이 올린 글이다. 그러면 인근에 사는 다른 주민이 여기서 무슨 사고가 있었고 얼마간 작업이 중단됐다는 ‘친절한’ 댓글을 더한다. 이렇게 산업재해는 건설노동자가 아니라도 나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면 이미 일상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아파트가 완공되면 어디에도 짓다가 스러진 이의 흔적은 없다.

아파트 정문에 있는 머릿돌 앞을 지나다 생각한다. 여기에 준공일은 기록됐는데 사망한 이들의 흔적은 왜 없을까. 적어도 우리 집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지어졌다는 양심의 가책을 아주 가끔은 느껴야 하지 않을까. 아파트의 풍요는 누리면서 산재의 상처는 모른 척하는 모습은, 개발의 풍요는 누리면서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목숨값은 지워버리는 한국식 개발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아파트 정문마다 아파트를 짓다가 숨진 이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비 하나 세우면 어떨까. 희생자가 산재를 당한 무명씨가 아니라 안타까운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말이다. 아이들을 위한 기억의 정치가 아닐까.

이 사회가 눈 질끈 감는 동안, 건설현장의 산재는 늘어간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2022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건설업 종사자 2만7432명이 사고재해를 당했다. 사고사망자만 2022년 402명, 2021년 417명에 이른다. 평균 하루에 한 명 이상 건물을 짓다가 숨진다는 얘기다. 건설업은 사망자가 가장 많은 업종이다. 그런데 사망자 다수가 청년이 아니다. 산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다. 2020년 이래 건설업 사고사망자 10명 중 4명은 60살 이상이었다. 2020년 건설업 사고사망자의 77.3%(354명)가 50살 이상, 41.9%(192명)가 60살 이상이었다. 이 해에 다른 연령층의 사고사망은 줄었지만 유독 60살 이상의 사고사망만 48명이 늘었다. 건설노동자의 고령화와 맞물린 추세다.

오늘도 공사현장에서는

일해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어르신들의 희생 위에 지어진 건물에서 우리는 먹고 자는 셈이다. 추모비 하나 아파트 입구에 세워놓고 아이들에게 이들의 희생을 이야기해주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날마다 속보로 날아드는 ○○ 건설현장 추락사에 마음 아프지만, 내 일은 아니라고 그 죽음을 ‘타자화’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2023년 7월11일 <한겨레> 디지털뉴스는 오늘도 ‘인천 주상복합시설 공사현장서 60대 노동자 추락사’를 제목으로 전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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