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의 집>.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는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에는 <철길의 석양>이 비중 있게 걸렸습니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도시의 고독’을 그린 것으로 자주 묘사되는데, 이번 전시는 그가 매년 뉴잉글랜드로 스케치여행을 떠나 자연 풍경을 즐겨 그리고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도 오랫동안 생활한 다채로운 작가임을 부각하고 싶어 합니다. <철길의 석양>이 독특한 것은 화가가 철길을 지나면서 본 풍경을 상상 속에서 조합했다는 것입니다. 호퍼의 전략은 대상을 데려다가 ‘심상’을 입히는 데 있습니다. 시간을 멈추게 한 것은 호퍼일 뿐, 그것이 정확한 묘사인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주류 밀매 업소의 벽에 걸린 시계가 ‘7시’를 가리키는 작품의 제목은 <오전 7시>입니다. 어둑해지는지 밝아오는지 모르는 모호한 ‘개와 늑대의 시간’을, 호퍼는 제목을 붙여 사실로 붙들어두려 한 것 같습니다. 호퍼의 아내 조세핀이 “아마 ‘주류 밀매 업소’를 그린 듯하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건물 자체에 상상이 들어갔을 법합니다.
호퍼가 상상한 풍경은 후기로 가면서 더욱더 기술적으로 변합니다. <밤의 창문>에는 창문이 이쪽으로 향한 건물에서 아슬아슬하게 여성이 옷을 갈아입고 있습니다. 그는 외출하려는 걸까요, 외출에서 돌아온 걸까요. 외출에서 돌아온 듯이 손짓은 피곤해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외출하러 가는 거라면. 그 만남의 대상은 딱히 달뜨게 하는 사람은 아닌 모양입니다. <황혼의 집>에선 여성이 목을 창문 밖으로 빼고 거리 저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스름이 내리는데, 여성은 누군가가 안 와서 조바심이 난 것 같습니다. 이런 대표적인 ‘훔쳐보는’ 구도의 그림들을 보면서, 인간이라면 몽글몽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호퍼는 영리하게 노린 것 같습니다.
방영한 지 10년도 넘은 한 프로그램이 생각납니다. 기인 생활을 하는 배우가 산에 들어가서 생활할 때였습니다. 당시 한 종합 버라이어티 채널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멀리서 카메라로 잡아 보여줬습니다. “땔나무를 모읍니다. 밥을 지으려나봅니다. 불을 붙입니다. 불이 잘 안 붙습니다…” 이런 큰일도 없고 별일도 아닌 일을 내레이션으로 읊었습니다. 궁금하다면 왜 가서 물어보지 않지, 왜 저렇게 종일 카메라를 켜놓고 추측만 하지,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최근 <조선일보>가 보도한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2023년 5월17일치) 제목의 기사엔 ‘추측’이 가득합니다. 시너, 불길, 휴대전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화면을 보면서 동작을 초 단위로 묘사합니다. 기사를 쓴 기자는 경찰에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제목부터 거짓이라는 것은 다음날 바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뻔히 ‘추측’으로 짐작되던 것이 ‘사실’로 변합니다. 독자는 간부에 분노하고 한 시민단체는 단체를 고발까지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빈칸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인간의 본능이 이용당했습니다. 어떻게 ‘조작’이 흘러가는지를 생생하게 지켜본 사흘이었습니다. 소름 끼칩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조선일보 기사를 쓴 최훈민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찰에 전화했다고 밝혔습니다.
5월24일 14시26분 수정

<밤의 창문>.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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