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저희 세대만 해도 아이들이 ‘쟤네 엄마 아빠 이혼했대’라며 놀리곤 했거든요. 하루는 아이들이 저를 계속 놀리니까 선생님이 저를 두둔하는 얘기를 해주신 거예요. 놀리는 게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설명하면서 ‘이혼은 절대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얘기해주셨어요. 그날이 뭐랄까… 저한테 굉장히 해방감을 준 날이었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부모님의 서로에 대한 험담(부모따돌림·한 부모가 자녀에게 다른 부모와의 관계를 끊게 할 목적으로 계속하는 행동)으로 고통받았던 윤은미(46·가명)씨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기사에 이 내용은 담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마음에 남은 말이었습니다. 절망적 상황에 빠진 아이에게 어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 같아서였습니다.
반대 상황도 있을 것입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무심코 하는 말 가운데, 깊은 상처를 주는 말도 많습니다. <한겨레21>은 1461호 표지 기사로 ‘어린이날 기획’을 준비하면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한 말 중에 어떤 말이 듣기 싫었는지’ 물었습니다. 어른들은 역시나 ‘악의 없이’ 상처가 될 만한 말을 많이 했더군요. ‘너무 말랐다’, ‘까맣다’ 같은 외모 평가부터 ‘넌 왜 이런 문제도 못 푸니’, ‘쟤는 영어 시험 잘 치는데 너는 왜 이 점수니’ 같은 비교하는 말들도 있었습니다.
저도 7살·4살 두 딸을 키우면서 비로소 어른이 얼마나 아이에게 무심코 상처가 될 만한 얘길 많이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길 가던 할머니들은 아이들을 보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시면서 “어휴, 너 남동생 없어 다행이다. 남자가 있었으면 넌 찬밥 신세였을 텐데” 같은 말을 했고, 지나가던 어른이 검은색 운동화를 구경하던 딸에게 “여자애가 왜 그런 운동화를 봐”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KTX에서 혼자 앉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아기가 자다 깨 “응애” 하고 울음을 터뜨리자마자, “아×× 시끄러워” 하고 욕설을 내뱉는 어른을 보며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어른은 아이에게 함부로 말을 할까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기보다 ‘어른의 미완성 상태’로 보고 말을 편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KTX에서 건장한 어른이 옆 사람에게 첫마디를 꺼내자마자 욕설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지나가던 성인에게 ‘왜 이렇게 말랐어요? 왜 이렇게 까매요?’ 같은 무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여러분은 어린 시절 어른에게 들은 말 중 어떤 말이 기억에 남나요. 우리도 혹시 너무 편하게, 너무 함부로, 어린이에게 말을 걸고 있진 않나요.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생존 해병 “임성근, 가슴장화 신고 물에 들어가라 지시했다”
진성준 “윤, ‘망나니 칼춤’ 류희림 해촉하고 언론탄압 사과해야”
나는 시골 ‘보따리상 의사’…평범한 의사가 여기까지 오려면
미 국무 부장관 “윤 대통령·기시다 놀라운 결단…노벨평화상 자격”
‘자두밭 청년’ 향년 29…귀농 7년은 왜 죽음으로 끝났나
하이브, 민희진 오늘 고발…“‘뉴진스 계약 해지’ ‘빈껍데기 만들자’ 모의”
“열 사람 살리고 죽는다”던 아버지, 74년 만에 백골로 돌아왔다
스페인 총리, 부인 부패 혐의로 물러날까…“사퇴 고심”
조국혁신당 원내대표에 황운하…10분 만에 만장일치로
해병 녹취엔 “사단장께 건의했는데”…임성근 수색중단 묵살 정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