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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판에…상추 밭에 들이닥친 단속반

등록 2023-05-05 06:36 수정 2023-05-12 02:10
슬로우어스 일러스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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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에요. 정말 지팡이만 짚을 수 있는 할머니만 있으면 나와서 일할 정도로.” 선주민들은 농촌에서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갈수록 일손 구하기가 어렵다. 그 필요한 자리를 이주노동자와 미등록노동자가 채우고 있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퍼졌다. 국경이 통제되고 항공편이 취소됐다. 가뜩이나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데 고용허가제로 오기로 한 이주노동자들이 입국하지 못했다. 농가에선 일손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제때 농작물을 심지 못하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불법 사업주’ 감수하고라도

경기도 이천에서 상추농사를 짓는 40대 홍선주(가명)씨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2월, 그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미얀마 노동자 6명을 신청했지만 코로나19로 이들의 입국이 불투명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1년 2월1일,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미얀마 인구 절반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되리라는 우울한 전망이 9시 뉴스에 나왔다. 뉴스를 보는 홍선주씨 부부는 말문이 막혔다. “미얀마 사람들도 오긴 다 글렀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어도 합법으로 사람을 구할 방법은 없고, 상추를 심어야 할 시기가 넘어가고 있었다. “봄상추하고 가을상추가 달라요. 봄상추는 날씨가 쭉 좋아지니까 조금 늦게 심어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가을에는 아침저녁으로 추워지기 때문에 하루 늦게 심으면 하루 늦게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열흘 뒤에나 수확할 수 있어요. 그렇게 차이가 나요. 작물이 그래요. 가을상추를 제때 심지 못해 상추 안이 배추처럼 속이 안 차면 못 팔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속이 타는 거예요.”

홍선주씨네 농가는 어쩔 수 없이 미등록노동자를 고용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한국에서 4년10개월을 보내고 체류기간이 끝났지만 한국에 머물며 초과체류를 한 상태였다. ‘불법체류’ 상태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들을 고용하면 ‘불법 사업주’가 된다. 출입국 단속반에 걸리면 사업주는 한 명당 250만~300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 사업주는 범칙금을 감수하고라도 ‘불법체류’ 상태의 노동자를 고용한다. 한 해 농사를 망칠 순 없기 때문이다.

2023년 3월, 법무부는 ‘불법체류 외국인 합동단속’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에 대대적으로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단속에 걸리면 미등록노동자는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되고 본국으로 추방된다. 사업주는 범칙금을 내야 하며,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빚더미에 앉게 된다. 3월17일, 경기도 여주 농민들이 여주시청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했다. 미등록노동자 없이는 농사지을 수 없는데 법무부는 아무 대책 없이 단속만 한다고 비판했다.

밥상 곳곳에 미등록노동자의 손길

당연히도 모든 사업주는 ‘합법체류’ 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어 한다. 단속과 범칙금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고용할 방법이 없다.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를 신청하더라도 이들이 한국에 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신청하려 해도 그 인원수가 적어 쉽지 않았다.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졌다.

어떤 사람은 ‘불법체류자’는 불법이니 이들을 다 내쫓으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한다. 그러면 당신이 오늘 먹은 음식에 미등록노동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들의 땀과 손길이 담긴 음식을 감사히 먹고, 이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궁리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법무부 단속에 비판의 목소리를 함께 높이기 희망한다. 사회의 밥상을 차리려면 고양이 손이라도, 미등록 사람들의 손이라도 빌려야 하니까 말이다.

우춘희 <깻잎 투쟁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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