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곳보다 슬픈 곳에 가라.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들은 말입니다. 결혼식, 회갑연, 생일연 등 웃을 일이 많은 곳보다 장례식 등 사람들이 울고 있는 곳으로 가라는 말입니다. 부조를 하더라도 슬픈 일이 있는 곳에 부조가 커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4월은 봄나들이 나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좋은 날씨로 시작했습니다. 그런 날을 윤석열 대통령은 충분히 즐긴 듯합니다. 4월1일 대구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 가고, 같은 날 대구의 야구장에서 시구도 했습니다. 서문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여섯 번째라고 합니다. “서문시장·대구 생각 하면 힘이 난다”라는 말도 시장에서 했습니다. 2022년 대통령선거 유세 때 찾아 “마지막에 서문시장에서 기 받고 갈랍니다” 하고, 당선인 신분으로 찾아 “서문시장만 오면 아픈 것도 다 낫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 이야기한 것을 보면 작정하고 간 것 같습니다. 힘 받으러.
그 이틀 후에 있을 ‘제주4·3’에는 총리가 참석하기로 한 터였으니 당연히 “대구까지 내려갔는데 제주는 못 가나”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매년 갈 수는 없다. 총리의 말이 윤석열 정부의 말’이라고 대통령실에서 대답했습니다.
한덕수 총리가 대신 읽은 추념사는 짧습니다. 그 짧은 추념사에 그 말이 또 등장합니다. 100일 기념식에도 등장하고, 첫 유엔 연설에 등장하고 3·1절에도 등장하고, 한-일 정상회담에도 등장하고, 최근 3월29일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도·태평양 지역 회의에도 등장합니다. ‘보편적 가치’라는 말입니다. ‘보편’이니까 어디든 쓰이는 거죠. ‘보편적인 노래’(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입니다. ‘보편적 가치’를 노래 부르듯 하십니다. 보편…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을 한껏 낮춘 곳이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한국은 슬픔의 나라입니다. 특히 4월은 슬픈 달입니다. 오랫동안 울지 못한 ‘제주4·3’이 있습니다. 4월16일 바다에서 일어난 무참한 사고가 상상만으로 슬픔이 끄억끄억 올라오는 시간을 만들어왔습니다. 2022년의 일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습니다. 4월5일은 159일 전국을 돌고 온 이태원 유가족의 진실버스가 마무리된 날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잃을 아이가 없습니다.” 송진영 이태원 유가족협의회 부대표가 해단식에서 울부짖은 말입니다. 유가족은 이제는 만질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이를 떨리는 목소리로 애닯게 불렀습니다.
왜 사람들이 기쁜 곳 대신 슬픈 곳으로 가라고 할까요. 기쁨은 혼자 좋고 마는 일이지만 슬픔은 이웃이 되는 일입니다. 기쁨은 휘발되지만 슬픔은 오래오래 고입니다. 기쁨이 두 배가 되어도, 슬픔이 반으로 나뉘는 것만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찬란한 사월에 도착하자마자 슬픔을 마주하게 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주십시오. 그게 보편적인 노래입니다. 슬픔이 있는 곳으로 가십시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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