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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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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앙과 지탄 사이, 장애운동가들의 거대한 질문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운 장애인운동가 6인 생애사 <전사들의 노래>
등록 2023-04-21 11:50 수정 2023-04-25 05:11

그들은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고 한국 사회를 움직였다.

“한 명의 장애인이 이동하기 위해선 이 사회가 통째로 이동해야 한다는 걸, 우리는 뼈가 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전사들의 노래>(홍은전 지음·훗한나 그림·비마이너 기획, 오월의봄)는 장애해방운동에 말 그대로 몸을 던진 운동가 6명의 열정적이고 가슴 벅찬 생애사다.

인천 장애인운동의 거목 박길연, 한국 장애여성운동사의 산증인 박김영희, 53살에 세상과 싸움을 시작한 대구의 노장 활동가 박명애, 진보적 장애인운동계의 ‘투사’ 이규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25살의 나이에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조직한 노금호.

2021년 12월 시작한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이듬해 3월 당시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이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는 비문명적 시위’라고 공격하면서 대중의 비난과 혐오 한가운데에 놓였다. 지은이 홍은전은 “‘문명인’들이 이토록 거칠어진 이유는 1분이라도 지각을 하면 큰일 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출근길 지하철은 “자본주의사회의 가장 중요한 컨베이어벨트”이며, 거기서 걸리적거린다며 가장 먼저 치워진 사람들이 바로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여섯 운동가는 모두 자신의 ‘쓸모’를 고민해온 공통점이 있다. 하늘에 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낮달 같은 존재”(박김영희)라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집에만 틀어박혀 “시체의 경험”(박경석)을 했다. 하지만 장애 정도, 지역, 성별, 가족관계에 따라 처지는 달랐다. 기혼 여성장애인 박길연과 박명애는 자식을 맘껏 보살펴주지 못한 아픔을 가졌다. 박김영희는 남성과 동등한 권력을 갖지 못했지만 기꺼이 어디서나 가시 같은 존재가 돼야 했다. 척수성 근육위축증 진단을 받은 노금호는 30억원이라는 치료약값에 좌절하고 과연 운동이 삶을 구할 수 있을지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몸이 손상되는 속도에 견줘 세상은 너무 더디게 움직인다. 동지들의 추앙과 대중의 지탄 사이 운동가들의 갈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점이야말로 이 책의 진면목이다.

“생애 내내 이야기를 억압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엮어낸 홍은전은 ‘이야기 자체’가 가진 생명과 운명을 믿는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장애해방운동가들의 생애사, 불굴의 인권투쟁사일 뿐만 아니라 소설보다 생생하고 누구나 쉽게 빨려 들어갈 삶의 이야기로서도 시대의 필독서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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