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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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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더한 비극

등록 2023-04-14 12:55 수정 2023-04-19 00:08

“참사 당일, 참사 이후 정부의 대처나 사람들의 2차 가해가 세월호 참사 후 저희가 겪었던 일들과 너무 비슷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 얼마나 힘드셨나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 말을 제대로 들어줄 사람들, 사회가 이곳에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겠지요.” 2022년 12월26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 박보나씨가 <한겨레> 지면을 통해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2022년의 이태원 참사를 보며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까닭은 두 재난의 피해자들이 겪는 폭력이 유사하게 재현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놀러 가서 죽었다”며 수학여행 간 학생들을 모욕하던 목소리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게도 그대로 향했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가족들의 외침은 “정부를 압박하는 시민단체의 조직적 결합”(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으로 왜곡 해석됐죠. 온라인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회원들이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햄버거를 먹던 광경은 극우단체 ‘신자유연대’가 분향소 앞에서 이태원 유가족을 모욕하는 광경으로 재현됐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렵게 만든 독립조사기구는 다른 참사에 대해선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아 관련 법을 다시 만들어야 할 처지입니다. 9년간, 우리 사회가 재난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은 거의 바뀌지 않았지요.

“재난은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은 더 비극적인 일이다.” 영국의 안전공학자 낸시 립슨이 한 말입니다. 국가가 재난의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파헤치지 않는 동안 수많은 참사 유가족이 모욕을 견디며 직접 진상규명의 도구와 재발방지책을 만들어냈습니다. 2023년 4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독립조사기구 설립을 위한 특별법을 촉구하는 ‘진실버스’에 올랐습니다. 더는 유가족의 투쟁에 빚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 모욕당하지 않고 재난의 진상을 알 수 있는 사회를 기다립니다.

2023년 4월5일 이태원 참사 159일째에 맞춰 <한겨레21>도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다시 묶었습니다. 그간 <한겨레21>에 연재된 희생자 유가족 인터뷰 시리즈 ‘미안해, 기억할게’ 36편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분석 기사를 썼습니다. 인터뷰 시리즈는 특별판으로도 제작해 159일 시민추모제에 배포했습니다. ‘미안해, 기억할게’는 재난 피해자의 시선으로 재난을 기록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려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앞 으로도 기록을 원하는 유가족이 있다면 계속 기록할 것입니다 . 2022년 12월부터 시작된 4개월 의 인터뷰 여정은 유가족들의 도움과 독자의 응원이 없었다면 지속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 지면을 빌려 다시금 감사를 전합니다 .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21토크ㅡ지난주 <한겨레21> 표지 기사의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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