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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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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야, 새끼야, 그거 무슨 뜻이에요?”

등록 2023-04-07 14:08 수정 2023-04-11 05:19

“따라와, 우예 (깻잎을) 땄는지. 이 ××년이, 따라와. 깻잎 딴 거 봐라. (깻잎을 가리키며) 이런 거 왜 안 땄어, 어?”

동영상 속에는 빨간색 스웨터에 짧은 머리를 한 70대로 보이는 여성이 한 젊은 여성에게 삿대질하며,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씩씩거리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가까운 거리에서 동영상을 찍었지만 악다구니 때문에 잘 알아듣기 어렵다.

한국말을 몰라 다행이다

“따라와”라는 강압적인 말에 이주노동자는 뒤로 움찔 물러났다. 사업주로 보이는 한국 여성은 이주노동자의 왼쪽 팔을 잡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비닐하우스 입구부터 저 반대편까지 좁은 통로를 걸어가면서 제대로 따지 못한 깻잎을 가리키며 고함쳤다.

“이런 거 왜 안 땄어, 어? 이까지(여기까지) 따야 하는 거야, 이까지. 너네 하루 월급이 얼마야? 어디 가지 말고 깻잎 따. 우예 땄는지 봐. 캄보디아 고향에 갈래? 사장님이 보내버릴까?”

2023년 3월 초, 캄보디아 노동자가 이 내용이 담긴 5분가량의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조회수가 1만9천 건이 넘었고 폭언에 분노하는 댓글부터, 이주노동자는 힘없으니 어쨌든 사업주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체념의 댓글,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라는 댓글 등 수백 건의 댓글이 달렸다.

며칠 뒤, 한국어 욕을 캄보디아어로 옮긴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상에 떠돌았다. “× 같은 년, × 같은 놈, ×× 새끼, ××년, ××놈, ×년, 개새끼, 또라이” 등 한국어 욕설 옆에는 캄보디아어가 적혀 있었다. 이 게시물에는 “사용해선 안 되는 단어지만, 사업주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최소한 이런 뜻이란 점은 알아뒀으면 하는 의미에서 올렸다”고 적혀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의 폭언을 녹화나 녹음해뒀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사업주가 한 말이 직감적으로 기분 나쁜 말이라는 건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정확하게 어떤 뜻을 물어왔다. 녹음된 파일에는 사업주가 일을 잘하지 못했다며 악다구니하거나, 일상적으로 괴롭히는 말을 하거나,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하는 등 다양한 욕설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나서 대화에는 어김없이 이런 표현이 등장했다. “너네 월급 얼마 받는 줄 알아? 사장님이 너네 신고해서 출국 조치시켜줄까?” 차라리 이 노동자들이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해 뜻을 정확히 모르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거니 한숨이 나왔다.

이주노동자가 묻는다면 뭐라 답할까

나는 2020년 여름을 낮에는 이주노동자들과 깻잎밭에서 일하고, 밤엔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번은 캄보디아와 태국 노동자들이 성대하게 차린 저녁 자리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데 캄보디아 여성이 나에게 물어보았다. “언니, 새끼야, 새끼야, 그거 무슨 뜻이에요?” 먹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알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장님이 ‘새끼야’라고 말해요?”라고 묻자, 다들 그렇다며 그 말이 나쁜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한 뜻을 알고 싶다고 물었다.

“새끼는 어린 동물인데, 그거 자체는 나쁜 뜻이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한테 쓰면 나쁜 말 맞아요”라고 말하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약간의 적막이 흘렀고 사람들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이주노동자들이 한 달만 깻잎을 따지 않으면 그해 여름은 식탁에서 깻잎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들의 손으로 한국 사회의 밥상이 차려지지만, 이들에게는 차별의 시선과 혐오의 언어가 덕지덕지 따라다닌다. 당신 옆에 있는 한 이주노동자가 “‘이 새끼, 저 새끼’가 무슨 뜻이에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우춘희 <깻잎 투쟁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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