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와, 우예 (깻잎을) 땄는지. 이 ××년이, 따라와. 깻잎 딴 거 봐라. (깻잎을 가리키며) 이런 거 왜 안 땄어, 어?”
동영상 속에는 빨간색 스웨터에 짧은 머리를 한 70대로 보이는 여성이 한 젊은 여성에게 삿대질하며,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씩씩거리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가까운 거리에서 동영상을 찍었지만 악다구니 때문에 잘 알아듣기 어렵다.
“따라와”라는 강압적인 말에 이주노동자는 뒤로 움찔 물러났다. 사업주로 보이는 한국 여성은 이주노동자의 왼쪽 팔을 잡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비닐하우스 입구부터 저 반대편까지 좁은 통로를 걸어가면서 제대로 따지 못한 깻잎을 가리키며 고함쳤다.
“이런 거 왜 안 땄어, 어? 이까지(여기까지) 따야 하는 거야, 이까지. 너네 하루 월급이 얼마야? 어디 가지 말고 깻잎 따. 우예 땄는지 봐. 캄보디아 고향에 갈래? 사장님이 보내버릴까?”
2023년 3월 초, 캄보디아 노동자가 이 내용이 담긴 5분가량의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조회수가 1만9천 건이 넘었고 폭언에 분노하는 댓글부터, 이주노동자는 힘없으니 어쨌든 사업주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체념의 댓글,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라는 댓글 등 수백 건의 댓글이 달렸다.
며칠 뒤, 한국어 욕을 캄보디아어로 옮긴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상에 떠돌았다. “× 같은 년, × 같은 놈, ×× 새끼, ××년, ××놈, ×년, 개새끼, 또라이” 등 한국어 욕설 옆에는 캄보디아어가 적혀 있었다. 이 게시물에는 “사용해선 안 되는 단어지만, 사업주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최소한 이런 뜻이란 점은 알아뒀으면 하는 의미에서 올렸다”고 적혀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의 폭언을 녹화나 녹음해뒀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사업주가 한 말이 직감적으로 기분 나쁜 말이라는 건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정확하게 어떤 뜻을 물어왔다. 녹음된 파일에는 사업주가 일을 잘하지 못했다며 악다구니하거나, 일상적으로 괴롭히는 말을 하거나,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하는 등 다양한 욕설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나서 대화에는 어김없이 이런 표현이 등장했다. “너네 월급 얼마 받는 줄 알아? 사장님이 너네 신고해서 출국 조치시켜줄까?” 차라리 이 노동자들이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해 뜻을 정확히 모르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거니 한숨이 나왔다.
나는 2020년 여름을 낮에는 이주노동자들과 깻잎밭에서 일하고, 밤엔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번은 캄보디아와 태국 노동자들이 성대하게 차린 저녁 자리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데 캄보디아 여성이 나에게 물어보았다. “언니, 새끼야, 새끼야, 그거 무슨 뜻이에요?” 먹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알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장님이 ‘새끼야’라고 말해요?”라고 묻자, 다들 그렇다며 그 말이 나쁜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한 뜻을 알고 싶다고 물었다.
“새끼는 어린 동물인데, 그거 자체는 나쁜 뜻이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한테 쓰면 나쁜 말 맞아요”라고 말하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약간의 적막이 흘렀고 사람들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이주노동자들이 한 달만 깻잎을 따지 않으면 그해 여름은 식탁에서 깻잎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들의 손으로 한국 사회의 밥상이 차려지지만, 이들에게는 차별의 시선과 혐오의 언어가 덕지덕지 따라다닌다. 당신 옆에 있는 한 이주노동자가 “‘이 새끼, 저 새끼’가 무슨 뜻이에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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