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교 선생님에게서 고향에 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은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을 지긋지긋하게 들었습니다. 목포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인근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를 지키는 버팀목으론 삼호조선소 뿐이었고, 조선소는 경기에 따라 일자리가 출렁거렸습니다. 친구들은 200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자리를 찾아 전국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서울로 대학을 오니 고난이 시작됐습니다. 재개발지역 주택에 홀로 살며 4년 동안 취업준비를 했습니다. 고향에 좋은 일자리가 많았다면 고향 인근 대학을 다닐 수 있었을까. 취업준비생 시절 맴돌던 생각입니다. 2021년 경남·부산에서 청년들을 취재하면서 그때의 상상은 사라졌습니다. 전국 제2의 도시 부산에 있는 청년들조차 양질의 일자리를 찾지 못할 거라고, 아무 연고 없는 수도권으로 취업하러 가기엔 두렵다고 말했거든요. 최근 동남권(부산·울산·경남) 지역의 현실은 더 심각합니다.
국가통계포털(KOSIS)의 시·군·구별 이동자 수를 보면, 조선업이 붕괴하고 동남권이 경기침체를 본격적으로 겪은 2018년 경남의 인구유출이 시작됐습니다. 그해 경남은 인구가 5810명이 줄었고 수도권은 5만9931명이 늘었습니다. 2022년 인구유출은 본격화했습니다. 경남은 수도권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인구(1만8547명)가 유출된 지역이 됐습니다. 수도권은 3만6643명이 늘어났습니다. ‘2022년 국내인구 이동통계 결과’를 보면, 전국 지역자치단체 가운데 20~29살 인구의 유출이 가장 많은 곳은 경남(1만6635명)이었습니다. 2022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경남 창원을 네 차례 찾아가 지방대 출신 취준생의 이야기를 들은 이유입니다.
창원은 고용인원 11만6761명(2022년 기준)에 이르는 전국 3위의 공단을 배후에 둔 산업도시이지만, 취준생에게 현실은 막막합니다. 한때 ‘공대 나와서 공단 가면 먹고살 수 있다’고 했던 곳인데, 이제 취준생은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전국 곳곳으로 면접을 보러 다닙니다.
기사가 나간 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독자분들이 전해왔습니다. “대대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한국은 망할 거임.” <한겨레21> 누리집 제1451호 표지이야기 기사(‘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청년 블랙홀 서울·수도권’)에 달린 댓글입니다. 대안은 있을까요. “각 도에 정책적으로 산업구조를 만들고 그곳이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곳이 된다면 청년들이 모일 것이다.” 또 다른 댓글입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지방대의 위기는 무너져 내리는 지역 산업과 닿아 있으니까요.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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