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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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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g의 생명체가 주는 마지막 기회[포토]

등록 2024-07-12 23:14 수정 2024-07-17 14:14
2022년 9월12일 아침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제비 숙영지에서 제비떼가 날고 있다. 김영길 작가 제공

2022년 9월12일 아침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제비 숙영지에서 제비떼가 날고 있다. 김영길 작가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데이비드 애튼버러: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2020)에서 진행자인 데이비드 애튼버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지구에 사는 포유류 무게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60%는 우리가 먹으려고 키우는 동물이다. 쥐부터 고래까지 나머지 모든 동물의 무게는 겨우 4%다. 이것이 우리 지구의 현주소다. 인간 이외의 생태계에 할애된 공간은 없다.” 여기에서 ‘무게’는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지표로 읽힙니다.

제비는 포유류가 아니어서 저 4%에도 들지 않지만, 지구상 생명체 가운데 차지하는 중량은 미미할 것입니다. 제비 한 마리 무게는 16g 정도입니다. <한겨레21> 제1521호가 다룬 내성천(경북 영주시 이산면)의 제비 개체 수는 10만 마리입니다. 무게로는 성인 남성 30명만큼도 안 되는 1600㎏(160만g)입니다. 가벼운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이 또한 인간 이외의 생태계에 공간을 할애하지 않는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1조원대로 부푼 ‘개발 망상’에 밀려 제비 숙영지는 지금 수몰 위기입니다.

내성천 제비떼는 토건족의 계산을 까마득히 초과하는 생태계의 놀라운 치유와 회생 역능을 상징합니다. 이명박 정권이 내성천을 토막 내고 영주댐을 착공하면서 경이롭던 모래강의 비경은 참혹하게 파괴되고 지워졌습니다. 그러나 수몰 예정 지역에서 사람들이 떠나자 수풀이 들어찼고, 여러 동물에 이어 제비떼가 찾아들었습니다. 어느덧 내성천 유역은 국내 최대이자 내륙의 유일한 제비 숙영지로 자리잡았습니다.

2022년 8월20일 아침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제비 숙영지 나뭇가지에 제비떼가 빼곡히 앉아 있다. 김영길 작가 제공

2022년 8월20일 아침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제비 숙영지 나뭇가지에 제비떼가 빼곡히 앉아 있다. 김영길 작가 제공


2022년 9월12일 아침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제비 숙영지 나뭇가지에 제비떼가 빼곡히 앉아 있다. 김영길 작가 제공

2022년 9월12일 아침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제비 숙영지 나뭇가지에 제비떼가 빼곡히 앉아 있다. 김영길 작가 제공


제비떼의 군무는 옛 모래강과는 또 다른 미학적인 경이감을 자아냅니다. 제비떼를 감상하며 정작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공존과 공생의 가치입니다. 다른 종에게 공간을 내주지 않으면 인간의 공간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한 애튼버러의 경고는 이곳에서도 고스란합니다. 녹조 가득한 영주댐 물과 댐 주변을 어떻게든 관광자원화할 셈으로 제비떼를 내몰려고 하는 발상은 탐욕에 눈먼 놀부의 미망과 판박이입니다.

벌써 7월 중순입니다. 예년 같으면 제비떼의 운집이 시나브로 시작될 때입니다. 지율 스님의 발길이 분주해졌습니다. 최근 서해 쪽으로 제비 조사를 함께 다녀온 이들과 ‘내성천 제비 연구소’(가칭)를 열자고 뜻을 모았다고도 합니다. 제비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숙영지 보호를 위한 여론 확산을 염두에 두고, 후원회원을 기반으로 지역주민까지 포괄하는 계획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물론 올여름에도 제비떼가 내성천으로 돌아온다는 걸 전제합니다. 제비떼는 과연 돌아올까요? 돌아온다면 그것은 무게 16g의 생명체가 주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때맞춰 다시 제비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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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허접한 알리바이, 1조원 사업비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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