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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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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조차 안 보이는 어둠

등록 2023-02-20 06:20 수정 2023-02-23 04:48
제1451호 한겨레21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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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은 지방대를 다녔다. 대학교 정문 앞에는 편의점 하나, 치킨집 하나, 문 닫은 중국집과 피시방 하나. 주변에 논과 밭과 산뿐인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인근 광역시에 월세 30만원짜리 방을 구했다. 국도 보수공사 현장에서 신호수를 하고, 산타 복장을 한 채 온종일 종을 흔드는 구세군 아르바이트를 하고, “죽도록 무거운 죽”을 들어야 하는 출장뷔페 아르바이트도 했다. 광역시에서 버스로 30분가량 나간 곳에 있는 물류창고에서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택배 상자 3천 개를 트럭에 쌓고 나면, 일당 8만원을 벌었다. 어느 날 팀장에게 왜 아침 7시까지 추가 수당도 없이 일을 시키느냐고 대들었다가 “아, 진짜 요즘 애들은…”이라는 지청구를 들었다. 장갑을 벗어던지고 나와 국도 갓길을 따라 걸었다.

‘정용은 후회하진 않았으나, 다리는 아팠다. 이대로 걸어가다보면 모르긴 몰라도 아침 퇴근 버스보다 (집에) 더 늦게 도착할 게 뻔해 보였다. 정용은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 서서 잠깐 하늘을 올려다봤다. 벚꽃에 가려 밤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벚꽃이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4월마다 사람들은 난리를 칠까… 정용은 괜스레 나무 밑동을 발로 툭 걷어찼다. 꽃잎이 우수수, 아래로 떨어졌다. “좋겠다, 넌, 정리하지 않아도 돼서. 요즘 애도 아니라서….” 나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정용은 소설 <눈감지 마라>(2022년)의 주인공이다. 지역에서 대학생을 가르치는 이기호 소설가가 ‘지방’과 ‘청년’이라는 단어로부터 풀어낸 이야기다. 그러니 ‘벚꽃’이 그저 상투적인 배경이나 소재는 아니었을 테다.(그가 터 잡고 있는 지역은 벚꽃으로 유명한 동네도 아니다.) 아마도 ‘벚꽃’은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지방대를 연상케 하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국도 갓길을 1시간 넘게 걷던 정용은 생각한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사라진 국도는 좀 전보다 훨씬 더 컴컴해진 것 같았다. 벚꽃이 만개해 있어도, 벚꽃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지금 지방대가 처한 현실이 꼭 그렇게 어둡다. 이미 대학의 모집인원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학생보다 많다. 2023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전국 14개 대학의 26개 학과에는 지원자가 아예 없었다. 모두 지역에 있는 대학이었다. 수시모집에서 지방대에 합격하고도 등록하지 않은 수험생이 지방대 수시모집 정원의 20%가량 됐다. 2031년이면 전국 4년제 대학 203곳 가운데 70곳이 폐교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2023년 2월1일,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대학에 5년 동안 1천억원씩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대책만으로 지방대의 몰락을 ‘방지’할 수 있으리라 믿는 이는 별로 없다.

지방대의 위기는, 지역의 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없으니 어떻게든 서울로 가려 하고, 교육과 일자리 때문에 수도권으로 향하는 이가 많아질수록 지역은 점차 쇠락해간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20~29살 청년이 가장 많이 떠난 지역이 경남(16만6천 명)이었다.(2022년 국내인구 이동통계) 이정규 기자가 경남 제1의 도시인 창원을 네 차례 찾아가, 지방대 출신 취업준비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50군데 취업 원서를 쓰고, 취업률만 높이려는 학교에 치이고, 전국 방방곡곡 ‘원정 취업’을 떠나는 이들은 또 다른 ‘정용’이었다. 박기용 기자가 이같은 위기의 근본 원인을 분석했고, <복학왕의 사회학>을 쓴 최종렬 계명대 교수가 지역 청년들의 삶이 바뀌려면 무엇부터 달라져야 하는지를 짚었다. 지난호 ‘미안해요, 베트남’ 표지이야기를 쓰자마자, 신다은 기자가 발 빠르게 베트남을 다녀와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을 만난 이야기도 전한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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