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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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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영하 26도에도 ‘이태원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

명절 못 쇨 희생자 유족 위로하려 강추위 뚫고 이태원 분향소 찾은 시민·자원봉사자들 이야기
등록 2023-01-29 12:13 수정 2023-01-30 01:37
설날인 2023년 1월22일 오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앞 광장에서 희생자 유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평소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으로 상을 차린 뒤 차례를 지내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설날인 2023년 1월22일 오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앞 광장에서 희생자 유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평소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으로 상을 차린 뒤 차례를 지내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흰 국화꽃들 사이로 작은 시집이 놓였다. 시집 제목은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진은영). 선물받는 이의 생전 취향이 담긴 듯도 선물한 이의 절절한 마음이 담긴 듯도 하다. 수면양말, 모자, 신발, 헤드셋, 단팥빵, 주문 제작 케이크… 다른 선물들도 단상 위 여기저기 놓여 있다. 어느 선물에는 작은 쪽지도 붙어 있다. 캔커피 두 개에 붙인 메모지엔 이렇게 쓰여 있다. ‘이거 좋아할지 모르겠어! 그래두! 따뜻할 때 먹구! 감기 걸리지 마!’ 친구가 직접 가져온 듯한, 카페라테 컵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엔 이런 손글씨가 눈에 띈다. ‘○○야, 보고 싶어. 사랑해. 손이라도 잡고 싶어.’

자녀가 좋아하던 음식 놓고 거리에서 지내는 차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023년 1월24일. 이날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16도까지 떨어졌다. 체감온도는 영하 26도였다. 거리는 텅 비었고 이따금 보이는 시민들도 두꺼운 겉옷에 몸을 파묻고 종종걸음을 치며 사라졌다. 이런 날에도 강추위를 뚫고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3번 출구 앞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을 만나러 온 추모객과 봉사자들이 있었다. 분향소 단상에는 과일과 명절 음식, 꽃다발이 한 아름 얹어졌다. 가족 없이 맞이하는 첫 명절, 유가족들은 이곳에서 자녀들이 좋아하던 음식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설 전날인 1월21일 날짜와 시간도 통지하지 않고 이곳을 방문해 5분 만에 자리를 떴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행안부 쪽에서 연락이 왔길래 ‘서로 당황스럽지 않게 일정 조율을 하자’고 전달했다. 그런데 혼자 불쑥 와선 ‘유가족 없냐’고 천막까지 다 열어보는데 이게 무슨 도둑조문이냐”고 말했다.

비록 참사 책임자는 그렇게 자리를 떴지만, 다른 추모객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유가족의 손을 잡고 응원을 건넨다. <한겨레21>은 설 연휴를 앞둔 1월11일과 연휴 마지막 날인 1월24일, 두 차례 분향소에 머물면서 이곳을 찾고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2023년 1월1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단상에 추모객이 가져온 시집이 놓여 있다. 신다은 기자

2023년 1월1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단상에 추모객이 가져온 시집이 놓여 있다. 신다은 기자

“저희는 올해 시골 내려가서 가족들하고 설 명절을 보냈는데요, 이분들은 (참사 때문에) 그러시지도 못했을 것 같아서, 그 생각이 많이 나서 왔습니다.”

아내와 딸과 함께 경기도 시흥에서 일부러 차를 타고 왔다는 최승묵(49)씨가 말했다. 최씨의 딸은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영정을 하나하나 쳐다보고 헌화했다. 단상에 국화 세 송이가 새로 쌓였다.

“날이 추워서 꽃이 많이 얼었더라고요. 근처에 꽃집 연 데 있으면 새로 사와서 가족분들 드려야겠어요.” 추모객 허인숙(55)씨는 추위에 바싹 언 국화들이 눈에 밟힌다고 했다. 그 역시 최근에 가족을 사별했다. “어머님이 최근에 돌아가셨어요. 예고된 죽음이었는데도 정말 슬프더라고요. 참사로 갑자기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심정이 어떨지….” 말을 더 하려다 말고 허씨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세로 네 줄, 가로로 길게 놓인 97명의 영정은 서 있는 자리에서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분향소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약 스물다섯 걸음을 걸어야 한다. 추모객들은 그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희생자들의 얼굴을 눈에 담는다. 어떤 이는 희생자 앞에 예를 갖추려 모자를 벗었고 어떤 이는 무릎을 꿇고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손을 대 절했다. 한 중년 남성은 분향소 옆 작은 책상에 앉아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쓰다 멈추고 쓰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그의 손이 30분째 책상 위에 머물렀다.

경남 거제에서 왔다는 김아무개(25)씨는 “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라며 연신 자원봉사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설 명절을 맞으러 서울에 왔다가 따로 일정을 빼서 이태원에 방문했다. “제가 수학여행 때 탔던 배도 엄청 오래된 노후 선박이었고요. 대중교통 타거나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늘 (밀집돼) 위험하다고 느꼈어요. 운이 좋았을 뿐 제게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는 빨갛게 언 손으로 희생자 가족들에게 한자 한자 쪽지글도 적었다. ‘(내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이 사람들(희생자)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차 한 잔 드리려 왔다가 매일 출근

2022년 12월14일 처음 설치된 이후 분향소가 한 달 넘게 반듯하게 유지된 데는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컸다. 특히 김아무개(63)씨는 주말도 없이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그냥 (유가족과 추모객에게) 따뜻한 차 한 잔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까 봉사자 일손이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그 뒤로 계속 차 대접하고 분향소 관리하는 봉사를 했죠. 요새도 유가족들이 드실 생강차는 따로 끓여서 가져와요.”

김씨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분향소를 돌본다. 이제는 눈으로 훑기만 해도 ‘할 일’이 다 보인다. 밖에 꺼내놓아 시든 꽃은 비닐을 씌워 바람을 맞지 않게 하고 다음날 쓸 꽃은 밑단을 보기 좋게 다듬는다. 향로 안에서 타다 만 향 조각을 젓가락으로 일일이 집어내고 영정과 단상에 쌓인 먼지는 먼지떨이로 살살 털어낸다.

“처음엔 영가들(희생자들) 눈도 못 마주쳤는데요, 이제는 영정 청소하면서 말도 걸고 그래요. ‘여기 일은 우리한테 맡기고 좋은 곳 가십시오’ 그러지요.”

짧게는 3시간, 길게는 12시간씩 분향소를 지키는 ‘일일 지킴이’들도 있다. 대부분 두 번 이상 봉사한 이들이다. 최휘주(26·진보대학생넷)씨도 12월부터 매주 한 번씩 분향소 봉사를 하고 있다. “제겐 참사 당일 이태원에 갔다가 사람이 많아서 그냥 돌아간 친구도 있고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예약한 배가 세월호였던 학교 후배도 있습니다. 심지어 저는 2022년 6월 이사 전까지 용산구에 살았고요. 운이 좋아 살아남았지 저도 참사를 당할 수 있었고, 국가가 국민 생명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최씨는 시민들이 분향소를 자주 찾아주는 것이 고맙다. “시민들이 계속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모습을 보면 나랑 같은 마음이구나 싶어요.” 분향소에 얼굴 사진을 끼운 영정이 조금씩 느는 것도 “유가족들끼리 점점 연결되는구나 싶어 안도가 된다”고 말했다.

1월24일 분향소 단상에 올라온 과일과 빵, 커피. 쪽지에는 ‘손이라도 잡고 싶어’라는 친구의 글씨가 적혀 있다. 신다은 기자

1월24일 분향소 단상에 올라온 과일과 빵, 커피. 쪽지에는 ‘손이라도 잡고 싶어’라는 친구의 글씨가 적혀 있다. 신다은 기자

비극 앞에서 진보·보수가 다를 게 있나요

김서연(25·청년녹색당)씨도 2022년 12월 이후 이날 네 번째로 봉사를 신청했다. 첫 방문 이후 “혹시 찾아오는 사람들 발길이 줄어들까봐, 가족들이 상처받을까봐” 걱정했다. “이태원에 비건(채식) 식당이 많아서 친구들이랑 자주 왔어요. 해밀톤호텔 앞은 정말 익숙하고요. 그날 아르바이트가 밤 10시에 끝나고 집에 왔다가 (참사) 소식 듣고 깜짝 놀라서 ‘나도 당할 수 있었겠다’ 생각했죠.”

자신을 ‘참사 생존자’로 느끼는 마음은 세대를 뛰어넘는다. 1월11일 경북 영주에서 아침 6시20분 케이티엑스(KTX) 첫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추모객 장영희(59)씨는 “놀러가서도 다치지 않아야 하는데, 지금은 문 열고 5분 뒤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내 자녀들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세찬 바람에 펼침막이 펄럭 나부꼈다. ‘그만합시다’ ‘국민들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등 유족을 비난하는 펼침막은 분향소 맞은편에 터 잡은 보수단체 ‘신자유연대’가 걸어놓은 것이다. 2022년 12월, 분향소 앞에서 공개적으로 유가족을 모욕하던 신자유연대는 유가족 쪽이 법원에 접근금지 명령 가처분을 신청한 뒤로 행동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분향소 주변에 둘러친 펼침막은 그대로 두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이렇게 안타까운 사건 앞에 펼침막을 저렇게 걸어놓는 거는 정말 아닌 것 같다.” 1월11일 분향소 방문차 대구에서 올라온 최성태(66)씨가 펼침막을 보더니 혀를 찼다. 같은 날 분향소를 찾은 박상윤(36)씨도 “내가 좋아해서 자주 가던 펍이 분향소 앞인데 저렇게 (혐오) 펼침막이 바로 앞에 걸려 있더라. 정말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분향소 봉사자들의 주된 ‘임무’ 가운데 하나는 카메라 촬영을 단속하고 제지하는 일이다. 신자유연대 회원들이 추모객을 가장해 희생자의 영정 사진을 가까이서 찍어가는 일이 빈번해서다. 그렇게 찍힌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며 2차 가해의 대상이 될까봐 유가족들은 두려워한다. 이러한 사정을 모른 채 동영상 촬영을 하던 외국인 추모객 등이 봉사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1월11일 오후 5시께는 한 여성이 다짜고짜 분향소에 찾아와 유가족을 붙잡고 ‘내 말 좀 들어보라’며 목청을 높였다. 참사와 무관한,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봉사자들이 분향소에서 내보냈지만 그는 30분가량 분향소 앞에서 ‘내 연락처를 받아가라’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기사만 읽다 직접 와서 보니 마음가짐 달라져

땅거미가 내려앉는 1월11일 오후 5시, 봉사자 김명하(47)씨는 봉사 시간이 끝난 뒤에도 조끼를 벗지 않고 분향소 안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엔 장난스러운 표정을 한 희생자의 영정이 있었다.

“아까 어떤 학생이 자기 친구를 만나러 왔는지 영정을 한참 보며 울다 가는 것 같더니만 다시 뛰어들어와 편지를 막 써서 앞에 놓고는 (영정을 향해) 손을 흔드는데 그게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그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마음을 곁에서 제대로 알고 싶어서 분향소를 찾았다고 했다. “우리 삶이 워낙 바쁘다보니 기사를 읽고 듣는 것만으로는 마음이 잘 안 움직여요. 그런데 이렇게 한 번 왔다 가면 우리 마음에 담고 가는 감정이 있잖아요. 조문객들, 가족들 보며 눈물 나는 그런 감정을 가지고 갈 때 (참사에 대해) 이전과는 정말 다른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김씨가 바라보는 영정 아래엔 좀 전에 희생자의 친구가 두고 간 편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분향소 너머로 저녁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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