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찌아(가명·캄보디아 20대 여성)씨를 처음 만난 곳은 경남의 한 깻잎농장이었다. 그는 150㎝ 정도 키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조용조용히 깻잎을 땄다. 이 농장에 온 지 한 달이 됐단다.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 그를 어떻게 고용했는지 이상했다.
그다음 날은 찌아씨가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받는 날이었다. 그는 고용주의 차를 타고 백신을 접종하는 실내체육관으로 들어갔다. 백신을 맞고 이상 증상이 없는지 15분 기다린 뒤 우리는 실내체육관을 나섰다. 찌아씨가 계속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주차장으로 걸어가 차에 올라타려는데, 별안간 큰 키의 70대로 보이는 남성이 욕하며 “너 이리 와”라고 강압적으로 찌아씨의 팔목을 붙잡았다. 내가 너무 놀라서 왜 그러냐고 하자, 그는 고용주라며 상관없으니 비키라고 했다. 찌아씨와 같이 온 고용주는 옆에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쟤가 원래 우리 집에서 일하던 애야. 9월30일에 일이 끝나고 내가 얘 월급을 오후 5시에 줬어. 그랬더니 6시에 짐을 딱 싸서 나가버린 거야. 시시티브이(CCTV) 돌려봐서 알았지. 고용센터에 무단이탈 신고도 안 했어. 기다리면 돌아올까 싶어서. 너 이리 안 와!”
알고 보니 찌아씨는 원래 이 70대 고용주 밑에서 4년 넘게 일했다. 그러다가 2021년 9월30일, 찌아씨는 월급을 받자마자 사업주의 동의 없이 ‘도망’쳐서 다른 사업장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고용주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이탈하고 닷새 이상 연속으로 무단결근하거나 어디에 있는지 파악되지 않으면 고용센터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사업장 이탈로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고용주는 찌아씨가 돌아오리라는 생각과 기필코 잡겠다는 생각으로 신고하지 않았다. 서류상에 찌아씨는 여전히 이 고용주의 직원이었다. 그에게 어떻게 알고 여기에서 기다렸냐고 물으니 “아직은 내가 얘 고용주니까 백신 접종 받는 날을 알 수가 있어. 전화해보니까 알려주더라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랑이 끝에 찌아씨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여기에서 며칠만 더 일하면 한 달 월급 받아요. 그러고 나서 사장님 댁으로 갈게요.”
다음날 찌아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깻잎농장에 일거리가 많이 줄어 월급이 줄어들자, 찌아씨는 고용주에게 사업장 변경을 해달라고 했지만 단칼에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옮길 수 없었다.
찌아씨가 자신의 손을 계속 문지르면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이 내 손을 잡아요. 그리고 만원, 이만원, 오만원을 줘요. 저는 한 번도 그 돈을 받은 적이 없어요. 정말 맹세해요. 사장님 너무 싫어요. 그래서 도망쳤어요.”
고용주의 성희롱이 문제였다. 성희롱이 인정되면 고용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그러면 ‘불법체류’ 상태를 면할 수 있다. 사업장을 변경하기 위해 고용센터나 노동청에 가서 이 내용을 말해줄 수 있는지 찌아씨에게 물었다.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도망가는 게 더 편해요.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그 사장님이 알면 어떻게 해요? 사장님이 나를 잡으러 오면 어떻게 할까요? 사장님이 (나를) 만지고 돈을 주려 했다고 말하면, 한국 사람들이 믿어주나요?” 성희롱을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 근로감독관이나 고용센터 직원이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찌아씨는 다시 원래 사업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찌아씨는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불법체류로 단속돼 잡히면 출국 조처가 될지언정 도망가는 것이 고용주의 지속적인 성희롱에서 벗어날 거의 유일한 방법이므로.
우춘희 <깻잎 투쟁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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