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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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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숍→아파트→시골로 간 포메라니안의 우울증

섣불리 입양했다가 친정에 보내...허리 굽은 할머니는 강아지 산책시키기도 어려워
등록 2022-06-02 16:41 수정 2022-06-03 00:52
포메라니안 강아지. 시골 수의사가 치료했던 포메라니안인 똘이도 원래는 이렇게 귀여운 모습이었을 테지만, 귓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REUTERS

포메라니안 강아지. 시골 수의사가 치료했던 포메라니안인 똘이도 원래는 이렇게 귀여운 모습이었을 테지만, 귓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REUTERS

내가 살며 일하는 곳은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한적한 동네다. 동물병원에서 차를 타고 5분만 달려도 건물들은 사라지고 사방에 웅장한 규모의 산과 너른 논밭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어르신이 많이 사신다. 그들의 자녀는 대도시에 살며 명절에 이곳, 부모님 댁에 온다. 그렇다. 여기는 손주들이 ‘할머니네’로 부르는 시골이다.

펫숍에서 감염된 듯한 진드기

한가위 명절을 쇠러 시골 할머니 댁에 내려온 가족이 작은 포메라니안을 안고 병원에 왔다. 황금빛 풍성한 털, 뾰족한 입이 매력적인 강아지의 이름은 똘이였다. 똘이가 귀를 많이 긁어서 데려왔다고 했다. 보호자인 여성은 병원 안을 뛰어다니는 어린 두 아들을 신경 쓰느라 진료에 집중하기 어려워했다. 보호자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료를 위해 기본 신체검사를 하는데 똘이가 많이 불안해 보였다. 청진하려고 손을 가슴 쪽에 가까이 대기만 해도 몸을 떨고 얼굴을 피하며 긴장했다. 겨우 달래며 검이경 카메라로 귓속을 살폈는데, 귓속에는 살아 움직이는 진드기가 가득했고 피가 나도록 긁어서 귓바퀴는 퉁퉁 부어 있었다. 귀 상태를 보니 감염된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귀를 긁었는지 물어보자 같이 안 살아서 잘 모르겠다는 보호자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울 아파트에 사는 가족이 2년 전 어린이날에 어린 아들에게 두 달 된 강아지를 선물했다. 펫숍에서 산 강아지였다. 하지만 강아지의 짖는 소리로 층간소음 갈등이 심해지자, 1년 동안 함께 살던 똘이를 이곳 친정엄마 집에 보냈다. 귀진드기는 감염된 다른 강아지와의 접촉을 통해서만 감염된다. 친정엄마 집에서는 다른 강아지와 접촉이 없었으니 똘이는 아마 출생하고 포유 중에 모체에서 귀진드기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컸다. 펫숍에서 샀으니 아마 개농장에서 감염됐을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진드기가 귀 안에 기어다녔을 텐데 얼마나 간지러웠을까.

귀 청소를 하려고 귀를 만지면 똘이는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했다. 귀 쪽으로 손만 가도 숨이 가빠졌다. 똘이를 보니 조금 더 다가오면 누구라도 다 물어버리겠다는 표정이었다. 똘이의 반응도 이해됐다. 1년 동안 함께 살던 가족과 갑자기 떨어졌다. 익숙하던 아파트에서 마당으로 생활공간이 옮겨진 건 충격이었을 것이다. 보호자는 똘이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가족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살게 된 똘이가 힘들 것을 알았지만, 본인도 아이들을 키우느라 도저히 못 버텼다고 털어놓았다. 묻지 않았지만 아파트 생활이 눈에 그려졌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도 버거운데 택배만 와도 날카롭게 짖는 똘이가 힘들었을 것이다. 층간소음으로 위아래층 집과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동물을 이해할 때 입양했더라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자녀가 동물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반려동물의 입양을 좀 유보했다면, 입양 전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을 가족과 진지하게 상의했다면 어땠을까? 2개월에 입양된 포메라니안도 누군가의 전폭적인 애정과 돌봄이 필요한 아기인데, 어린아이 둘과 함께 돌보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쉬웠다. 어린 나이에 입양된 똘이가 그 집에서 많이 외롭지 않았을까. 내가 보아왔던 포메라니안은 호기심이 많고 학습능력이 뛰어났기에 준비된 가족 곁에선 잘 훈련돼 행복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너무 섣부른 입양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머릿속에 드는 여러 생각을 털어버리고 지금은 진료에 집중해야 한다. 똘이는 귓병을 치료하러 온 아이다. 보호자에게 진드기 감염 사실을 알리고, 치료 방법을 설명했다. 2주 뒤 호전됐는지 살피러 다시 병원에 오시기를 권했다. 보호자는 난색을 보였다. 이튿날 가족과 함께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대신 친정엄마에게 꼭 똘이를 데려오게 하겠다고 말하고 떠났다.

2주 뒤 똘이는 할머니 손에 안겨 다시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로 들어오시는 할머니의 허리가 많이 굽어 있었다. 똘이를 안고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똘이의 표정은 예전과 많이 달라 보였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짖던 녀석이 아무 반응 없이 내 손에 자기 몸을 맡겼다. 검이경 카메라로 본 똘이의 귀는 많이 좋아져 있었다. 부기도 빠지고 살아 있는 진드기도 보이지 않았다. 치료가 잘되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숨을 쉬셨다. 명절에 가족이 똘이와 이틀을 보내고 돌아간 뒤로 똘이가 통 밥을 안 먹는다고 했다. 딸 가족이 오기 전에는 마당에서 참새를 보면 뛰어다니고 담벼락 위 고양이를 보면 으르렁대던 아이가 가족이 다녀간 이후 참새가 와도, 고양이가 와도 반응 없이 먼 산만 바라본다고.

몸무게를 재보니, 2주 전보다 500g이나 빠져 있었다. 귀는 좋아졌지만 그보다 큰 병이 생긴 것이다. 우울증이었다. 몇 달 만에 온 가족이 반갑고 그 시간이 즐거웠지만, 그들이 다시 사라진 상황을 똘이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희망 없는 기다림이 무기력함을 불러왔을 것이다. 밥을 먹지 않는 똘이의 마음이 내 마음같이 이해됐다.

귓병 때문에 병원에 왔던 똘이. 나는 이제 귓병이 많이 좋아진 똘이의 무엇을 치료할 수 있을까? 녀석은 아마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항우울제를 처방하고 똘이가 가장 좋아했던 간식 몇 가지를 알려드렸다. 그리고 새로운 자극원에 똘이가 반응하도록 정기적인 산책을 권했다. 할머니는 산책을 권하는 나에게 손사래를 치셨다. 할머니 본인 걷는 것도 어려운데 산책은 도저히 못 시키겠다고.

불가능한 정기적인 산책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무릎을 펴서 한 걸음 떼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정기적인 산책을 권한 내가 민망했다. 할머니는 데리고 왔을 때처럼 똘이를 담요로 정성스럽게 싸 안고 병원 밖으로 나가셨다. 똘이는 저항하지 않고 조용하게 할머니 손길에 자신을 맡겼다. 할머니는 할 수 있는 만큼 사랑을 주고 계셨다.

똘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대도시 가족은 1년에 두세 번 와서 똘이를 사랑해줄 것이고, 똘이는 그때마다 우울증에 빠질지도 모른다. 산책은 못 시키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방식으로 똘이를 사랑해줄 것이다. 똘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은 진심인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허은주 수의사

*시골 수의사의 동물일기: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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