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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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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과정’

등록 2022-05-20 00:40 수정 2022-05-20 09:49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취미 생활은 스포츠 관람이다. 어릴 땐 모든 종목을 다 좋아했지만 이제는 쓸 수 있는 시간도 에너지도 예전 같지 않아서 딱 두 종목만 챙겨 본다. 출근길엔 미국 프로농구 NBA 리그 중계를 보고 퇴근길에는 한국 프로야구 중계를 본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기아 타이거즈다.

타율보다 출루율이 좋은 타자

스포츠 관람을 즐기는 여러 방법이 있다.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선수들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찾아보는 건 눈이 호강하는 일이다. 경기가 끝난 뒤 정리된 선수들의 기록지를 살피고 분석해보는 일은 뇌에 짜릿한 자극을 준다. 어느 정도 룰에 익숙해진 팬이라면 각 팀이 승리를 위해 어떤 전술을 쓰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다. 각 팀의 감독은 점수를 많이 내기 위해 다양한 작전을 구사하는데 서로 다른 작전의 핵심은 결국 득점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득점 확률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농구 경기라면 누가 슛을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공을 던지는지에 따라 확률이 달라진다. 슛 성공률이 높은 선수가 공을 던지는 것이, 수비수가 방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 득점 확률이 높아진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경우 외곽슛이 좋은 스티븐 커리나 클레이 톰프슨, 조던 풀이 슛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감독이 짠 작전에 따라 다른 선수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패스하며 공간을 만든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가장 좋은 것은 홈런으로 바로 점수를 내는 것이지만 쉽지 않다. 1점이라도 더 얻으려면 한 베이스라도 더 가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엔 타율 높은 타자가 주목받았다면 요즘은 타율이 조금 떨어져도 볼넷을 많이 골라 나가 출루율이 높은 타자가 인정받는데, 그 이유도 타율보다 출루율이 득점 확률을 높이는 것과 연관성이 깊기 때문이다.

문제는 높은 확률이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운이 나쁜 날은 과정을 아무리 잘 짜도 이상하게 경기가 안 풀린다. 반대로 대충 던진 공이 림(농구대 수직판에 고정된 철제 둥근 테)에 쏙쏙 잘 들어가, 빗맞은 타구가 안타가 되어 경기에서 승리하기도 한다. 스포츠가 재밌는 것이 이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언어처럼 논리적으로 짜인 딱딱한 스포츠 경기의 데이터는 우연과 실수가 결합하면서 승패가 나뉘는 드라마가 된다. 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운보다는 과정을 만드는 능력에 있다. 강팀은 운이 따르지 않더라도 묵묵하게 좋은 과정을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운이 없는 날은 지겠지만, 승리 확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좋은 과정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과정을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팀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때론 결과가 가장 중요하다. 스포츠만큼 결과가 과정을 압도하는 분야가 있을까. 최근 미국 프로농구는 우승을 위해 슈퍼스타들이 한 팀에 모여 슈퍼팀을 결성하는 일이 잦다. 결국 남는 것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우승)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비난을 무릅쓴다. 하지만 좋은 과정을 만드는 능력이 없는 팀은 아무리 슈퍼스타를 데리고 있어도 우승을 못한다. MVP 출신을 두 명이나 보유한 LA 레이커스와 브루클린 네츠는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하거나 1라운드에서 참패하며 떨어졌다. 운으로 한두 경기에서 이길 순 있지만 좋은 결과는 좋은 과정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결과가 중요하기로는 정치가 스포츠보다 더하다. 특히 선거는 결과가 전부다. 하지만 정치에서도 선거에서도 진정으로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과정이 먼저다. 좋은 과정 없이 요행으로는 한두 선거구의 승리를 가져올 뿐, 좋은 결과를 얻을 순 없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는 좋은 과정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정당이 선전하기를 바란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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