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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 누구는 무죄, 누구는 유죄 [뉴스큐레이터]

등록 2022-04-06 04:14 수정 2022-04-06 10:05
해군성폭력사건공대위 제공

해군성폭력사건공대위 제공

2010년 두 명의 해군 상관이 함정에 갓 배치된 부하 여군에게 성폭력 가해를 했다. 해군 소령 박아무개씨는 직속 부하였던 장교 ㄱ씨를 10여 차례 성추행하고 두 차례 성폭력 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다. 함장이던 해군 대령(사건 당시 중령) 김아무개씨는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 ㄱ씨에게 상담을 빌미로 성폭력을 가했다.

법정 다툼은 2022년 3월31일에야 종료됐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군 형법상 강간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대령 김씨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반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소령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가 가한 두 번째 성폭력과 관련한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은 인정하면서도, 첫 가해자였던 박씨 사건에 대해선 원심 판단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피해자의 진술 등이 서로 다르므로 (중략) 범죄 성립 여부가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반쪽짜리 판결”(최희봉 젊은여군포럼 공동대표)이란 비판이 나왔다. “대법원은 이 두 사건을 병합해 한 재판부가 판단하도록 해야 했다”(박인숙 변호사·피해자 법률대리인단)는 지적도 제기됐다. 첫 번째 가해 행위를 바탕으로 상관에게 도움을 청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사건이 발생했기에, 동종 범죄인 두 사건의 맥락을 따로 떼어 판단하는 일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 첫 번째 가해자인 박씨는 범죄 사실을 전부 인정하지 않고, 두 번째 가해자인 김씨는 일부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을 짚으며 “피고인이 모든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재판부가) 범죄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보인다”(박인숙 변호사)고 비판했다.

피고인들은 애초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박씨), 8년(김씨)을 선고받았으나, 고등군사법원은 2018년 11월 원심을 뒤집고 두 명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부하’와 ‘상관’이란 관계, 강고한 위계질서, 해군 함정의 특수성, 성소수자라는 피해자의 위치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죄 판결을 내렸다.

ㄱ씨가 싸워온 12년의 세월 동안 군대에선 성폭력 사건이 계속 발생했다. 고발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죽음을 택한 이들도 있다. 이날 ㄱ씨는 “오늘의 저는 또 한 번 죽었다”고 했다. 언제까지 이런 죽음을 방치할 것인가. 답은 군에 달려 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뉴스 큐레이터는 <한겨레21>의 젊은 기자들이 이주의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뉴스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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