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서울 신촌 산울림소극장에서 극단 동네풍경의 연극 <동물농장>을 봤다. 조지 오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은 알려진 대로 인간에 저항한 동물들이 혁명에 성공하고 자율적인 농장을 건설한 뒤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그린다. 당시 소련 상황을 빗댄 우화라지만 꼭 그렇게 한정할 필요는 없다. 추락하는 사회는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연극에서 다른 동물과의 약속을 어기고 맥주와 위스키를 마시던 돼지들은 “우린 자격이 있다”고 외쳤다. 자격이 있기에 우리는 다른 동물을 통제할 수 있지, 다른 동물들은 우리에게 복종해야 하지,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침상을 독점하는 것도 모두 우리가 자격이 있기 때문이야. 다른 동물과의 구별짓기에 성공한 돼지들은 점차 더 쉽게 다른 동물에게 잔혹해졌다. 동물농장은 그렇게 평등을 향한 투쟁을 멈추고 최초의 이름 ‘장원농장’으로 돌아갔다.
요즘 나를 가장 속상하게 하는 것은 거리에 사는 홈리스(노숙인) 아저씨의 이마이며 손등의 상처다. 거리 생활을 하다보면 사소한 말다툼이 싸움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홈리스를 때리겠다고 서울역을 찾는 악의적인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한 무리는 벌써 2년 가까이 일방적으로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고 사라진다. 젊은이 두엇이 몇 달에 한 번 급습해 머리가 하얗게 센 아저씨를 마구잡이로 때리고 텐트를 부순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으면 그저 “노숙하는 게 싫다”며 비웃는다.
처음에는 물총을 쏘고 가더니 언젠가부터 때리기 시작했고, 얼마 전엔 손가락에 끼우는 버클 같은 무기를 동반했다. 아저씨는 몇 차례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어차피 못 찾을 거라는 절망적인 답변만 받았다고 한다. 늘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 삶을 사는 그에겐 별 대안이 없다. 괜찮다고,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말하지만 아저씨는 몸도 마음도 부쩍 상한 기운이 역력하다.
사람은 왜 이렇게 잔인할까. 어떤 경우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척 친절하다. 타인을 돕기 위해 시간과 이득을 양보하고 생명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믿을 수 없이 잔혹한 사건을 마주한다. 특히 이런 일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학자들은 타인에 대한 구별짓기와 편견이 잔혹함을 허용한다고 한다. 나와 다르다는 믿음이 타인을 비인간화하고 공감을 멈춘다. 돌이켜보면 폭력은 날아오는 주먹만이 아니었다. 청소한다며 끼얹던 새벽의 차가운 물벼락, 남루한 행색 위로 끈질기게 붙는 시선과 냉대. 거리에 사는 순간 세상은 사람대접을 빼앗았다.
그러나 아저씨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난 시기는 1990년 한 공단에서 일하며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해 투쟁하던 때다. 8시간 노동 쟁취, 야간노동 철폐를 외칠 때 아저씨는 나만 8시간 일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싸움으로써 모든 사람이 과로에서 해방되기를, 오늘 하루의 임금을 포기함으로써 내 미래엔 안전한 노동이 보장되기를 바랐다.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단출한 몸뚱이뿐이지만 아저씨는 여전히 그때를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다. “나만 잘살겠다고 한 게 아니니까, 그게 진짜 기분이 좋은 일이거든”이라고 말할 때마다 아저씨의 얼굴이 빛난다.
마땅히 괴롭힘당해야 하는 사람은 없다연극 <동물농장>에서 돼지들이 “우리는 자격이 있다”고 할 때 다른 동물들은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외쳤다. 아마 하루 8시간 노동을 할 젊은 ‘그’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군가를 노숙 상태로 내모는 사회에 충분히 질문을 던지고 있느냐고. 마땅히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사람은 없다고.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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