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은둔 청년이 머리 감고 방 정리한 이유

가정·학교에서 회복 속도에 따라 촘촘한 단계의 대응 필요
등록 2021-12-01 14:40 수정 2021-12-21 07:59
2019년 5월 지역 음식축제에 참여해 음료를 팔고 있는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은둔 청년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제공

2019년 5월 지역 음식축제에 참여해 음료를 팔고 있는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은둔 청년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제공

한정된 공간에서 고립된 채로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른다. 은둔형 외톨이는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나지만 청년 세대의 은둔은 특히 심각한 문제다. 사회적 활동이 한창일 나이에 고립해 지내는 청년이 많다면, 그들을 은둔시킨 사회 역시 병들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취업난과 코로나19로 은둔 청년이 증가했으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러나 전국에 은둔 청년이 얼마나 있는지, 그들은 누구이며 왜 은둔하게 됐는지, 방 안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정부 차원의 전국적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고 이를 구체적으로 파고든 국내 언론 보도도 많지 않았다. 일체의 접촉과 소통을 거부하며 방 안에 은둔 중인 청년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발행하는 독립언론 <단비뉴스>의 기자 5명은 2021년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은둔 청년들의 일상을 직접 취재했다.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단체의 도움을 받거나 기자들이 직접 수소문하고 설득해 전국 각지에서 은둔 중이거나 은둔에서 갓 탈출한 청년 25명을 만났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가입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분석해 은둔 청년들의 일반적 행동과 정서를 분석했다. 전문가 11명을 따로 만나 인터뷰했고, 2500여 쪽에 이르는 관련 보고서와 연구논문도 읽었다.
실명 보도가 원칙이라는 점을 25명의 은둔 청년과 그 가족에게 설득했으나, 이들은 신상 노출을 매우 꺼렸다. 은둔 경험을 세상에 알리면 사회적 낙인이 찍힐까봐 많이 걱정했다. 이에 기사에서는 은둔 청년과 그 가족의 이름을 모두 가명으로 표기했다. 거주 지역은 광역 단위 또는 시군구까지만 밝혔다._편집자주

은둔 탈출에는 촘촘한 단계가 필요하다. 회복 속도에 따라 다른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은둔 청년이 고립되는 집에서는 가정방문 상담이 필요하다. 은둔 징후를 발견할 수 있는 학교에서는 교사의 대응이 중요하다. 3년 이상 길게 은둔한 청년에게는 전문기관의 도움도 필요하다. 지원의 법적 근거가 되는 조례 제정과 법률 통과도 중요한 과제다.

1단계: 가정

초기 단계에 있는 은둔 청년은 일반적으로 3개월에서 6개월 이상 가족 이외 사람과는 소통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 일체를 거부하거나 소수의 관계만 유지한다. 가족과도 소통을 끊는 일이 있지만, 가정은 이들이 그나마 안심하는 거처다. 따라서 가족은 은둔 청년과의 소통을 계속 시도해야 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외부 사람이 찾아오는 방문상담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은둔 가정 방문상담만 500차례 이상 진행한 오상빈 광주시 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가족이 아닌 심리상담사가 은둔하는 자녀와 가족의 연결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과 서울에서 4년간 은둔했던 임수지(25·가명)씨는 은둔 초기에 방문상담을 받고 기본적인 일상을 회복한 대표 사례다. 은둔 생활이 1년 넘을 무렵, 임씨는 양치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군인이던 아버지가 부대 상담관에게 도움을 청했다. 상담관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찾아왔다. 6개월이 지나 임씨는 직접 요리도 하고 그만뒀던 그림도 다시 그릴 수 있었다. 방문상담은 은둔 청년이 일상을 회복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방문상담사와 은둔 청년 사이에 신뢰가 쌓이면, 상담사를 맞이하려고 은둔 청년은 머리를 감고 방을 정리한다. 사소한 변화이지만 은둔 청년에게는 일상을 회복하는 중요한 행동이다.

2단계: 학교

등교 거부는 은둔의 대표 징후 가운데 하나다.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 25명 가운데 8명(32%)은 등교 거부 경험이 있었다. 이들은 자퇴 뒤 본격적인 은둔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20여 년간 ‘히키코모리’ 문제를 연구한 사이토 다마키 일본 쓰쿠바대학 교수(사회정신보건학)의 조사를 보면,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 가운데 86%는 3개월 이상 등교 거부를 한 경험이 있었다.

이러한 은둔 징후에는 교사의 대응이 중요하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의 공저 <은둔형 외톨이: 가족, 사회, 자신을 위한 희망안내서>를 보면 교사의 단계별 대응 지침이 나온다. 어느 학생이 은둔을 준비하거나 마음먹는 기색을 보이는 ‘준비 단계’에서 교사는 학생의 변화를 잘 관찰해야 한다. 실제 은둔이 시작되려는 ‘개시 단계’에서는 그 학생에게 드러나지 않게 관심을 줘야 한다. 은둔이 본격화된 ‘은둔형 외톨이 단계’까지 왔다면, 복귀를 강요하지 말되 지속적인 관심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은둔하는 학생이 전문 상담교사와 함께 상담실에만 있어도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3단계: 기관

장기 은둔을 극복하려면 전문적 지원이 필요하다. 무너진 생활습관을 규칙적으로 만들어줄 도우미와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2010년대 들어 은둔 청년 지원기관이 생겼다.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 25명 가운데 12명(48%)도 지원기관의 도움을 받았다. ‘K2 인터내셔널 코리아’(이하 K2)는 2012년부터 사회 적응이 어려운 청소년과 청년이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공동생활숙소와 일자리 훈련소를 운영하고 있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이하 리커버리센터)는 2019년 설립된 은둔형 외톨이 지원 공동체다. 현재 청년 10여 명이 공동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지원과 상담을 받고 있다.

리커버리센터는 은둔 청년의 회복 자립 단계를 1~10단계로 만들어 적합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3단계까지는 소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4~6단계에서 적극적인 기초생활 훈련을 받는다. 갈등 푸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우스 코치’가 함께 살면서 지도한다. 처음에는 여러 사람과 생활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3~5개월을 넘기면 잘 적응한다.

7~8단계에 이른 청년은 스스로 원하는 일을 찾도록 돕는다. 지원기관과 연계된 카페나 식당에서 일도 한다. 리커버리센터는 몇 년 전 서울거리예술축제에서 작은 카페 부스를 차려 은둔 청년들이 직접 음료를 팔아보게 했다. 일부 청년에게는 장애인활동보조 경험도 제공했다. 김옥란 리커버리센터 센터장은 “장애인과 영화를 보고 산책하는 과정에서 효과를 많이 봤다. 다른 이의 어려움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은둔을 사회문제로 인식한다면

지원기관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재원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리커버리센터에서 만난 이민서(31·가명)씨는 2010년부터 약 10년 동안 간헐적으로 은둔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씨는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민간재단인 ‘청년재단’의 도움을 받았다. 청년재단은 이씨가 2019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참여한 K2의 지원 프로그램비 전액을 지원했다. 이씨는 지원을 받은 뒤로 은둔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은둔 청년이 이씨와 같은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민간재단인 청년재단의 지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원 법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상빈 센터장은 2021년 8월 서울시의회가 주최한 ‘서울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의 길을 찾다’ 토론회에서 “입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은둔 청년 사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입법을 통한 재정적 지원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광주광역시는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관련 법령을 만들었다.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에 따라 광주시는 5년마다 ‘광주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 기본계획’을 세우고 3년마다 실태조사를 하게 됐다. 2020년 처음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광주시에 사는 은둔형 외톨이 349명을 발견했다. 지원 조례는 예산을 투입하는 법적 근거이기도 하다. 2021년에는 추경예산을 편성해 은둔형 외톨이 욕구 조사, 찾아가는 상담, 부모 자조모임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뒤따라 2021년 7월에는 부산광역시, 9월에는 전남도의회가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머지않아 광주처럼 지원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실태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중앙정부나 국회가 이 문제를 전국적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최은솔·이강원·임예진 <단비뉴스> 기자 scottchoi19@gmail.com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