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의 더운 여름날이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데 지역 시의원이 전화로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모시고 의원 면담을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선감학원… 얼핏 들어본 것 같은데 어떤 곳인지 생각나진 않았다. 더구나 피해자를 모시고 오신다고 하니 부담도 느껴졌다.
국회에서 일하면 ‘피해자’를 대면할 일이 상당히 많다. 국회에서 일한 시간이 흘러도 피해자를 직접 만나는 일은 아직도 가장 어렵다. 여기까지 전달되는 피해자의 말은 이미 수많은 곳을 거쳐 최종 종착지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다녀갔던 문턱마다 좌절도 크셨을 터, 이곳에서 죽이든 밥이든 대안도 해법도 내야 할 책임을 피해자와 대면하는 순간 부여받는다. 피해자를 만나기 전에 하는 루틴(습관)대로 일단 나는 숨부터 고른다.
평소 우리의 대화법은 이렇다. 나는 의원에게 보고한다. “의원님, 상황은 이렇지만 일단 결론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후배는 나에게 보고한다. “기관에서 자료가 왔는데 요는 이러저러해서 이렇습니다.” 기승전결의 ‘결’만 있는 대화다. 잠깐 책상을 떠나면 부재중 전화가 두세 통 와 있고, 잠깐 미팅 한번 하고 나면 메시지는 100개 이상 와 있는 숨넘어갈 것 같은 매일이기에 ‘결론’이 대화 내용을 대부분 차지하게 간단히 얘기한다.
그런데 피해 당사자들에게 이게 가능할까. 여기 오기까지 KTX나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와 역이나 터미널에서 다시 여의도 국회 앞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와서, 의원회관 로비에 줄을 서서 ‘출입증명서’를 쓰고, 신분증을 내고 방문증을 수령해서, 엑스레이로 소지품 체크하고, 요새같이 복잡한 의원회관을 돌고 돌아서 우리 방까지 온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결론’만 말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게 가쁜 숨을 고르고 앉아 있자니 사무실에 선감학원 피해자 세 분과 선감학원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했던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 경기도의원 이렇게 다섯 분이 오셨다. 모두 60대 중반쯤 돼 보였고, 약간 경직된 채 연신 땀을 닦으셨다. 말씀은 피해자 단체 대표인 김영배 선생님께서 주로 하셨다.
“제가 8살 때 경찰에 잡혀갔고 선감학원에 수용돼서 매일 맞았어요. 수용된 원생들끼리 일대일로 따귀 때리는 처벌도 받았고, 그렇게 맞아서 터진 얼굴로 수용소 내 병원을 가면 의사도 아닌 수의사가 치료해줬어요.”
“지옥 같은 수용소를 탈출하려고 선감도(지금의 대부도) 앞바다를 헤엄쳐 가는 아이도 많았어요. 그렇게 탈출한 아이들은 대부분 주검이 돼서 발견됐고요. 소라와 낙지가 죽은 애들 몸에 붙어 눈구멍부터 파먹은 걸 본 거지요.”
“그런데 국가인권위워회가 법을 제정하라고 국회에 의견도 냈는데 국회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요. 우리가 그 어린 나이에 경찰에 잡혀가서 왜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당했는지 그 이유는 알고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까지 말씀하시고 우셨다. 예순이 넘은 김영배 선생님은 수십 년도 더 됐을 이 이야기를 마치 어제 일처럼 말씀하시며, 그때 그날의 소년처럼 우셨다. 어르신의 아이 같은 울음에 직감했고 동시에 겁이 났다. 이 일에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을 알았고, 해결이 쉽지 않을 예감에 겁이 났다.
선감학원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선감학원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의 섬인 선감도에 있던 소년 수용소였다. 1941년 조선총독부 지시로 세워져 1942년 4월 처음 소년 200명이 수용됐고, 1945년 2월 경기도로 이관된 뒤 1982년까지 40년 동안 운영됐다. 설립 목적은 ‘부랑아의 단속과 수용’이었지만 경찰 실적을 위해 가족이 있어도 무차별로 연행·감금됐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증언이 있으니 이제 정부 공문서를 찾아 증언을 입증해야 했다. 오랫동안 선감학원을 조사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께 자문하니, 선감학원 아이들의 입원·퇴원 기록이 담긴 ‘원아대장’이 경기도 문서보관소에 있다고 했다. 당시 선감학원에 누가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 문서였다. 그러나 그 활동가는 그 문서를 받긴 쉽지 않을 거라고 덧붙였다.
다음날 바로 해당 기관에 자료 요구를 하고, 담당과 공무원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듣던 대로, 자료 요구 주체가 국회일지라도 자료 제출을 못하는 이유는 수십 가지였다. 있긴 있으나 너무 오래된 기록이라 일일이 찾아야 하고, 바로 제출하기에 내용이 너무 방대했으며, 담당 공무원은 바뀌었고, 급기야 위에서 결재가 안 났다고 했다. 공무원들이 국회에 자료 제출을 미루고 거부하는 아주 오래된 레퍼토리다.
그때부터 전화하는 공무원들의 급을 오르내리면서(담당 주무관부터 팀장, 과장, 국장까지) 각 급에 맞는 방식으로 때로는 자료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설득하고, 내용 많은 것 알지만 그래도 수고해주십사 읍소하고, 그래도 안 되기에 급기야는 언성도 높이면서 냉탕 온탕을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두 달쯤 흘러, 선감학원 4691명의 기록이 담긴 ‘원아대장’이 내 손에 들어왔다. 실제로 “○월○일 어느 지역에서 경찰에 의해 수집 혹은 수거됨”이라는 수기로 쓰인 문장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낡디낡은 문서의 스캔본을 한장 한장 넘겨 보며 그제야 선감학원의 풍경을 어렴풋이나마 그 아이들의 눈으로 보게 됐다. 4691명 중 10대가 절반쯤 되고 10대 미만 아이도 1천여 명 됐다.
‘원아대장’ 자료를 받은 뒤 선감학원 문제를 오래 고민하신 연구자들께 자료 분석을 의뢰하고, 동시에 ‘선감학원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다. 이 법의 의미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피해자들의 기록이 오롯이 들어간 특별법 형태의 법명을 만들어서 이제껏 누구도 사과하지 않은 일에 국회가 법으로나마 사과와 위로와 피해 보상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고 싶었다. 둘째는 당시 이 특별법보다 더 포괄적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국회에서 야당 반대로 공전되고 있었다. 그래서 ‘선감학원 특별법’을 계기로 ‘과거사정리 기본법’ 처리가 속도를 내도록 추동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이때 법은 그 자체가 통과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다른 법의 조속한 처리를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하룻밤을 새우고 법안을 만들었다.
언론 배포 뒤 줄줄이 이어지던 전화법을 발의하는 날, 국회에서 피해자들을 모시고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 뒤 피해자들이 그 펼침막을 챙겨가도 되는지 물어봤다. 고이 간직하고 싶은 것 같았다. 기자회견장 모습도 일일이 사진 찍었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던 날이었는데도, 모든 장면을 눈에 담으려 했던 피해자들의 약간은 일그러지고 상기된 모습이 한분 한분, 마치 슬로모션 걸린 듯 지금도 자세하게 떠오른다.
법 발의 이후 선감학원 ‘원아대장’ 분석 결과를 보도자료로 만들어서 언론에 배포했더니 전국에서 자기도 선감학원 원생이었다고, 피해자 모임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전화가 줄줄이 이어졌다. 사무실을 지킨 후배들이 매일 밤 이런 전화가 왔다며 울컥하는 눈빛으로 메모를 전해줬다.
바로 이어졌던 국정감사에서는 피해자 대표 김영배 선생님을 참고인으로 모셔서 선감학원 피해 실태와 국가에 대한 요구를 들었다. 수십, 수백 번 하셨을 증언이지만 그날의 증언은 국회 속기사가 기록하고, 기관장이 답변 의무를 지는 그런 것이었다. 비로소 우리 의원을 통해, 그 증언이 공중에 흩어지지 않고 역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자들을 보이게 하고,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 대리인으로서 국회의원의 본령이다. 그 본령을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통해 다시 배웠다.
이후 피해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 끝에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2020년 5월20일)에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극적으로 통과됐다. 법 개정으로 해산됐던 과거사위 활동이 재개되면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과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등 국가폭력 사건의 진상 조사가 가능해졌다.
김영배 선생님이 진심으로 고맙다는 전화를 주셨다. 아직도 가끔 이름 모를 피해자들께 연락이 온다. 법은 하나의 도구일 뿐, 피해자는 피해 사건으로 단절된 일상을 다시 살 수 있게 되는 때, 그때 피해가 비로소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법이 국가로부터 버림받아 평생 각인된 고통에 한 줌 위로의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이보라 국회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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