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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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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에서 죽냐가 장례식을 좌우한다?

공영장례 조례 있는 지자체는 58곳, 없는 지자체는 무연고 사망자를 ‘시신 처리’ 수준의 ‘무빈소 직장’ 화장해
등록 2021-10-20 15:08 수정 2021-10-27 02:13
2021년 7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나눔과나눔 활동가 등이 서울시 무연고자 공영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박승화 기자

2021년 7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나눔과나눔 활동가 등이 서울시 무연고자 공영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박승화 기자

최근 몇 년간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노년층뿐 아니라 20~50대 청장년층에서도 늘어나는 추세다. 무연고사와 고독사의 원인이 되는 빈곤, 관계 단절, 우울, 고립감 등을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영국과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한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부’를 설립해 담당 장관직을 신설했고,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 문제 담당 장관직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2021년 4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고독사 실태조사를 하고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정부는 2022년 초 실태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립과 단절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뒤늦은 감이 있다.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통상 3일)이 흐른 뒤에 주검이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무연고 사망이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지만 주검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를 뜻한다. 연고자는 부모, 자식, 형제자매 등만 인정된다.
<한겨레21>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609일 동안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의 도움을 받아, 무연고 사망자의 연령과 주거지, 사망 원인 등을 다각도로 살폈다. 6개월여 서울 영등포와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다니며,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과 지인을 만났다.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살아 있을 때 잘 보이지 않았고 죽고 나서야 무연고 사망자라는 숫자로 기록된 이 ‘투명인간’들의 지난 삶의 퍼즐을 모으고자 했다. 이들이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드러나야, 정부와 사회가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1384호에서는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들의 삶을 추적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면서 지난 1년간 무연고 사망자가 크게 증가한 추세, 2020년 무연고 사망자 665명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관련 보도는 다음호 제1385호에서도 이어진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무연고 사망이 더는 우리 일상과 멀리 있지 않은 현실, 앞서 대책을 마련한 영국과 일본의 사례 등을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_편집자주

“당신이 죽은 뒤에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서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21세기 복지국가 대한민국에서도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국가 차원의 장례복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한 80만원 ‘장제급여’ 지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무연고 사망자 시신 처리 △장사시설 지원이 있다. 하지만 충분한 사회보장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 지원만으로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연고 사망자가 최근 몇 년 동안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가파른 증가 추세는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무연고 사망자 행정을 책임지는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이 ‘공영장례 조례’ 제정을 서두르는 이유다. 이 조례는 기초지자체가 운영하는 사회보장 차원의 장례복지라고 볼 수 있다.

2007년 신안군이 최초, 2018년 광역으로는 서울시가 최초

전국 최초의 공영장례 조례는 2007년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제정한 ‘신안군 공영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다. 이 조례는 가족 해체와 빈곤 등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주민의 장례를 지원해 고인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복지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21년 10월1일 기준으로 공영장례 관련 조례가 있는 지자체는 58곳이다.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 등 광역단체 9곳과 기초단체 49곳에서 조례를 제정했다. 그중 72%에 해당하는 42개 조례가 최근 3년 동안 제정됐고, 2021년에만 14개 공영장례 조례가 만들어졌다.

서울시 공영장례는 2015년 민간에서 시작했다. 당시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으로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한 ‘나눔과나눔’은 2015~2017년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으로 장례를 지원했다. 그리고 보조금이 나오지 않는 달에는 후원금으로 장례를 치렀다. 보조금 방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안정적인 공영장례를 위해서는 ‘공영장례 조례’가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조례 제정을 제안하고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가들이 직접 초안을 작성했다. 2017년 11월 발의된 조례안은 예산 등을 이유로 초안보다 많은 내용이 삭제된 상태였다. 이에 ‘제대로 된’ 서울시 공영장례 조례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 캠페인을 진행했다. 일부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광역단체로서는 서울시가 최초로 ‘공영장례 조례’를 2018년 3월22일 제정했다. 이로써 무연고 사망자뿐 아니라 연고자가 있지만 장례를 치를 능력이 없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지원할 법적·제도적 근거가 마련됐다.

조례가 현실적 실효성이 없는 경우도

조례 초안 작성 과정에서 가장 크게 고민한 대목은 공영장례의 정의였다. 현장에서 목격한 장례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공영장례가 무엇인지 정의부터 내렸다. 사람이 숨졌는데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것, 그리고 무연고뿐만 아니라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돌아가신 가족과 이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갖지 못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공영장례를 “장례의식 없이 시신이 ‘처리’되지 않도록 공공(公共)이 무연고 사망자 및 저소득 시민에게 검소한 장례의식을 직접 제공하거나, 또는 이러한 장례의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고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유가족과 지인 등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례”로 정의했다. 연고자가 없는 사람도,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장례의식 없이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가는 무빈소 직장(直葬) 방식이 아닌 가족과 지인이 애도할 수 있도록, 또는 가족과 지인이 없으면 공동체의 애도가 가능하도록 공공이 빈소 등의 ‘공간’과 장례의식 ‘시간’을 보장하는 장례로 정의했다.

이처럼 조례가 마련된 지자체는 무연고 사망자 등을 위한 공영장례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지자체는 여전히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시신 처리’ 수준의 ‘무빈소 직장’으로 화장만 하고 있다. 숨진 장소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사회보장이 지원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어디서 사망하느냐에 따라 죽음과 장례의 질은 차별적이다.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서울시 저소득 시민과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지원·상담을 하고 있다. 종종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상담 전화가 온다. 장례 상담과 장례 지원 안내를 모두 했는데 돌아가신 지역이 서울이 아니어서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없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상담 전화를 건 분은 “아니, 서울이 아니면 지원이 안 된다고요?”라며 너무나 어이없어한다. 상담하는 처지에서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영장례 조례가 제정됐다고 곧바로 공영장례가 진행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공영장례 조례가 제정됐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지자체에 연락해보면 장례식장과 업무협약을 맺은 정도에 그쳐,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례가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거나 무연고 시신 처리의 또 다른 이름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보건복지부가 대답할 차례

현재 서울시는 실효성 있고 지속가능한 공영장례를 위해 민관협력체계를 구축했다. 그 핵심에 서울시 공영장례지원상담센터가 있다. 서울시는 2019년 3월 안정적인 공영장례를 위해 나눔과나눔과 업무협약을 맺고 서울시 공영장례지원상담센터를 설치했다. 광역단체가 기본 방향과 지원체계를 구축한다면, 장례 지원 실무는 기초단체인 구청에서 담당하되,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그리고 장례 의전 업체를 ‘중간지원조직’이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사회보장제도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보편적인 제도 위에 지역적 특성과 여건에 따라 추가 지원을 할 수는 있다. 지금처럼 공영장례 제도 자체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으로 양분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질병 등으로 아플 때, 실업 상태에 놓일 때, 나이 들어 치매에 걸려도 누구나 같은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오직 유일하게 숨진 다음 장례는 어느 지역에서 죽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스갯소리로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제도를 들은 비혼인 분이 “주소를 서울로 옮기면 제 장례를 치러주시는 거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소한 본인의 장례를 위해 주소를 이전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보건복지부가 대답할 차례다. 여러 기초단체에서 시작한 공영장례가 전국으로 보편화된 사회보장제도로 안정되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공영장례 지원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더 나아가 국가 차원의 공영장례 제도를 고민할 때가 됐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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