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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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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에서 일부러 ‘역선택’을 한다고?

‘덜 싫은 후보’ 선택의 결과이지, 전략적 역선택은 아냐
등록 2021-09-04 02:45 수정 2021-09-04 02:45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정홍원 대통령후보자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역선택 방지조항 도입 여부 등 국민의힘 대선 경선룰 결정권은 당 선관위에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정홍원 대통령후보자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역선택 방지조항 도입 여부 등 국민의힘 대선 경선룰 결정권은 당 선관위에 있다. 공동취재사진

역선택 논란은 선거철 단골손님이다. 선거가 다가오면 각 정당은 경선을 치르고, 경선을 앞두고는 여지없이 역선택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다. 최근 선거에서는 막판에 후보단일화도 빈번해지고 있어 여론조사가 불가피한데 여기서도 역선택 논란은 빠지지 않는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지지율 성적표와 관련돼, 역선택에 대해서는 서로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먼저 역선택이 과연 존재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선택 개념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분명한 답을 선뜻 내놓기는 어렵다. 역선택(Adverse Selection)은 원래 경제학 용어인데 정보 격차로 인해 불리한 선택을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말한다. 여론조사 영역에서 역선택은 이와 다르다. 흔히 여론조사에서 역선택은 경쟁 정당 지지자들이 다른 정당의 경선에 참여해 의도적으로 조직적 투표를 함으로써 선거 결과를 왜곡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여론조사에서 상대 정당 후보 가운데 경쟁력이 낮은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해, 결과적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후보의 본선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유권자 중 여론조사 응답자 될 확률 0.002%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숨기면서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는 가정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여론조사에 참여하는 응답자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여의도의 시각에서는 사람들이 정치 영역에서 고도로 전략적인 행동을 한다고 보지만 실제로 거짓말하면서 고의로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상당한 규모의 사람들이 계획적으로 역선택을 한다는 사고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극단적인 정치 관점으로만 대중을 보는 것이다.

고의로 역선택을 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포함될 수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우려까지 고려한다면 여론조사 방법론 자체를 채택해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는 조사원과 응답자의 상호 불신 상황에서 질문의 답을 얻는 방식이기에 100% 솔직한 응답을 얻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또 조직적으로 참여한다는 가정도 과도하다. 여론조사는 대개 1천 명 정도 규모로 전국 조사를 실시하는데, 지난 총선 기준으로 유권자가 약 4400만 명이니 1천 명에 포함될 확률은 0.002%다. 여기에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조직적 참여도 어렵고, 의도적인 역선택도 사실상 없는데도 왜 역선택 논란은 계속될까. 응답자의 고의적인 역선택은 없지만 여론조사 결과에서 역선택처럼 보이는 내용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후보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 전체 참여자가 답한 내용과 경쟁 정당 지지층이 답한 내용이 확연히 다른 일이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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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지지층은 유승민을 좋아한다?

2021년 8월16일부터 18일까지 실시된 국민의힘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 25%, 홍준표 12%, 유승민 11%, 원희룡 4%, 최재형 4%다. 이는 모든 응답자의 전체 결과다. 이를 지지 정당별로 보면 차이가 발생한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윤석열 57%, 홍준표 14%, 유승민 6%, 원희룡 3%, 최재형 7%로 나타난다. 논란은 민주당 지지층의 결과에서 발생한다. 민주당 지지층에선 윤석열 5%, 홍준표 14%, 유승민 19%, 원희룡 6%, 최재형 1%다.

유승민·홍준표·원희룡 세 후보는 민주당 지지층에서의 결과가 전체 결과에 비해 높은 경향을 보인다. 반면 윤석열·최재형 두 후보는 전체 결과에 비해 민주당 지지층에서 현저히 낮게 나온다. 민주당 지지자가 대거 포함될 경우 윤석열과 최재형 후보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유승민·홍준표·원희룡 후보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역선택의 증거라고 일각에서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조사에 응답해 국민의힘의 약체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본심으로 응답해 나온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제시된 후보 가운데 가장 선호하거나 아니면 그중에서 덜 싫은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다. 일부러 경쟁력이 떨어지는 인물을 택해서 나온 게 아니다. 가령 유승민 후보가 민주당 지지층에서 지지가 높은 것은 민주당 지지자에게 거부감이 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일로 인해 선호가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는 역선택처럼 보이긴 하지만 의도적인 역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솔직한 응답의 결과로 보는 게 맞다.

역선택 방지 문항 두는 방법도

의도적인 역선택은 없더라도 결과적으로 역선택으로 오해할 만한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논란은 이어진다. 이런 현상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른바 ‘역선택 방지 문항’이 거론된다. 조사 처음에 지지 정당이 어디인지 묻고 경쟁 정당 지지자일 경우 배제하는 것이다. 정치적 이념 성향을 먼저 물어 반대쪽 성향 보유자는 배제하는 방법도 있다. 또는 특정 이슈에 대한 입장을 물어 간접적으로 반대쪽 지지자를 배제하는 방법도 있다.

한편 상대 정당 지지자라 하더라도 인물에 따라 지지가 변동될 수 있으니 조사에 포함하는 게 더욱 경쟁력 있는 후보를 뽑는 방법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경쟁 정당 지지자들의 지지 특성이 변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주장 역시 나름 논리가 있다.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역선택은 없기 때문에 이 논란의 정답 역시 없다. 정치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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