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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지어 두 벌로 3년

등록 2021-07-15 19:41 수정 2021-07-16 11:51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1인 가구 기초생활수급자가 생계급여로 받을 수 있는 현금 급여는 최대 54만8천원. 이 돈으로 식비, 휴대전화 요금, 교통비 등을 해결해야 하니 수급자의 삶은 팍팍하다. 기초연금을 받으면 그만큼 수급비에서 삭감하고, 일용직이라도 나가면 일당의 30%를 제외하고 모두 삭감한다.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수급자는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수급에서 탈락하고, 일자리 사업 기간이 끝나면 수급 밖으로 쫓겨난다. 이토록 불안한 수급의 세계에서 수급자가 ‘수급에 안주한다’는 말은 구조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수급자가 되기도, 수급자가 돼도 살기 힘든 일상을 전전긍긍 꾸려나가거나, 도달할 수 없는 욕망은 자기 눈에도 띄지 않게 덮어버린다. 남들은 이를 두고 ‘포기하는 근성’이니 어쩌니 쉽게 말한다.

외출하는 아이에게 용돈 1천원

기초생활수급비는 지난 4년간 평균 2%씩만 올랐다. 정부는 수급비를 올리는 데 인색하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이나 물가인상을 고려하면 수급자 삶의 질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심지어 정부는 이러한 급여 수준을 적절하다고 평가한다. 이 평가의 근거가 되는 보건복지부의 가장 최근 연구(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년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 및 평가연구’)에 따르면 한국에 사는 4인 표준 가족의 41살 엄마는 5659원짜리 브래지어 두 벌로 3년, 1만6829원 운동화로 2년을 보낸다. 외출하는 초등학생 자녀에겐 1천원, 중학생 자녀에겐 1600원을 준다. 한 달에 세 번 외출한다. 궁금하다. 이 보고서를 쓰고 채택한 이들은 자기 자녀에게 용돈을 얼마 주고 있을까?

경제 규모에 비해 복지, 특히 빈곤층 복지가 옹색한 것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자주 꼽히지만 엉성한 복지제도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복지를 독점했다’는 착시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같은 공공임대아파트 안에서도 수급자와 비수급자는 임대료 인상률이 다르다. 재계약 때마다 살림살이가 휘청이는 사람들은 수급비도 못 받는 사람에 비해 수급자는 혜택이 크다고 생각한다. 미묘하고 복잡한 선정 기준은 별로 다르지 않은 처지인 사람들을 제도 안과 밖으로 나눈다. 그저 자원을 줄여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효과적으로 분열한다.

매년 여름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포함한 73개 사회보장제도의 기준이 되는 ‘기준중위소득’(복지 기준선으로 사용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조사, 결정하는 전체 가구 소득의 중간치)을 정한다. 올해 정해지는 기준중위소득에 따라 내년부터 누가 수급자가 될 수 있는지, 수급자가 되면 얼마를 받는지가 정해진다. 기준중위소득이 오르는 것은 수급비가 오르는 일인 동시에, 복지가 필요한 이들의 손에 닿는 복지 종류가 많아지는 일이다.

2020년 정부는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렵다며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을 또 미뤘다. 4인가구 기준중위소득이 2.68% 오르는 데 그치는 사이, 2021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4% 이상으로 전망한다. 반면 저소득층의 위기는 가중됐고 가계부채는 치솟고 있다. 이 상황을 보고 있으니 빈곤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실패라는 말은 한 점의 추상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라는 부자가 되는데 가난한 국민은 더 가난해지고 있다.

기준중위소득을 인상하라

2022년 수급비가 많이 오르면 좋겠다. 달걀 한 판 가격 8천원, 올해도 지독하다는 무더위. 어디를 둘러봐도 수급비가 올라야 하는 이유뿐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받는 수급비의 수준이 오르고, 수급자도 살 만한 사회에 도달한다는 건 가난해도 포기하지 않는 근력을 우리 안에 심는 일이다. 가난하더라도 미래를, 건강을, 사람과의 교류를, 자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 이 꿈같은 날이 오기까지 바뀌어야 할 것은 정말 많지만 일단 7월에는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부터 하자. 빈곤 문제 해결에 나중은 없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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