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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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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직한 집’ 꿈 잃는 게 보통인 나라

1989년 보통사람의 주택 정책 그 뒤 32년,
내 집 마련을 통한 안정적인 삶도 공공의 주거복지도 모두 놓쳐
등록 2021-07-13 16:02 수정 2021-07-14 02:07
노태우 대통령이 1989년 2월 민주정의당이 서울 강남구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연 ‘보통사람들의 밤’ 행사에 참여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노동자와 도시 영세민을 위해 영구임대주택과 저렴한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연설했다. 연합뉴스

노태우 대통령이 1989년 2월 민주정의당이 서울 강남구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연 ‘보통사람들의 밤’ 행사에 참여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노동자와 도시 영세민을 위해 영구임대주택과 저렴한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연설했다. 연합뉴스

안정적인 내 집 혹은 셋집 마련이라는 ‘보통사람’들의 꿈을 담은 공공주택이 나온 지 32년 됐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 사람에게는 공공주택이 보이지 않는다. 국토교통부는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2019년 기준으로 전체 주택의 7%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진짜’ 공공주택의 재고는 4~5% 수준이라고 말한다.
안정적인 주거 공간, 내 집을 마련하는 발판, 부동산시장의 완충제(또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었던 공공주택의 가능성은 32년 전보다 커지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원인을 파고들수록 우리가 처음 꿈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확인할 뿐이다. 그나마 미약한 가능성이라도 찾으려는 시도가 아직 남아 있다. 절박한 보통사람, 집 없는 사람이 여전히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안이 나왔다. 미군으로부터 돌려받는 서울 용산기지에 대규모 공공주택을 공급하자는 것이다. 제안자들은 돌려받는 용산기지 300만㎡ 가운데 20~30%만 사용하면 공공주택 5만~10만 채를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용산은 빼어난 입지를 갖추고 교통이 편리한 곳이어서 공공주택 공급이 실현된다면 그 효과가 폭발적일 것으로 예상한다.
제안자들은 용산기지 공공주택이 대규모 정부 투자로 만들어지는 용산공원의 공공성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입지에 높은 품질의 공공주택을 대량 공급하면 공공주택에 대한 편견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다고 본다. 공공주택은 땅과 건물을 모두 정부가 소유하므로 나중에 공원으로 전환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관건은 오랜 논란을 겪으며 특별법으로 정해진 용산기지의 ‘공원’ 용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다. 용산공원 조성 관계자들은 공공주택 건설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편에선 용산기지의 반환 절차가 더딘데 언제 공공주택을 공급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용산기지 안 공공주택 10만 채 공급이라는 꿈은 실현될 수 있을까._편집자주

*사회주택과 공공주택의 의미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혼용해 썼습니다.

모두가 집 얘기로 뜨거운 와중이래도, 내 집 없는 우리 또한 국민 절반 이상에 속하므로(서울 전·월세, 사글세 등 점유율 57.3%, 2019년 주거실태조사) ‘보통사람’, 맞다. 보통사람인 우리에게 묻는다. “공공임대주택이란?” 아마도, “필요한 주거 정책”(95.1%, SH도시연구원,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서울시민 인식조사’)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니, 그 질문이 아니었다. 집 없는 우리한테 공공주택은 그나마 가능성이 엿보이는, 그리하여 가장 먼저 떠올릴 거주 형태인가? 가망 없어 보이는 ‘청약 대박’이랄지, 생애 전반의 부담일 ‘영끌’이랄지, 혹은 왜 이런 집이 이 가격일까 한숨만 나오는 ‘민간임대’보다? 공공주택은 필요하나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공공주택의 자리를 생각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보통사람의 좌절과 슬픔을 동반한다.

정부마다 제각각의 ‘브랜드’

1989년, 그때도 우리는 보통사람이라고 불렸다. 민주정의당 행사 ‘보통사람들의 밤’은 한국 주거 정책에서 굵직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집에 얽힌 보통사람의 두 가지 꿈이 호명됐다. 노동자의 내 집 마련, 영세민을 위한 공공임대. 그를 위해 정부와 여당은 영구임대 25만 채, 공공분양·장기임대 60만 채를 짓겠다고 했다. 두 꿈은 지당했으며, 어쩌면 서로를 보완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기다림의 가능성. ‘셋집 주인(민간임대) 등쌀에 시달리지 않는 임대주택에서 돈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몰라.’ 또한 자산 기반 복지사회로의 전환 가능성. ‘그렇게 마련한 내 집 한 채가, 척박한 한국 복지 속에 노후를 비롯한 각종 위험에서 나를 지켜줄 거야.’

32년 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정부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비영리조직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소유한, 시장가격보다 낮은, 질이 보장된’(사회주택의 일반적인 정의) 공공주택은 여전히 적다. 정부는 2019년 기준 전체 주택 대비 각종 장기 공공주택 재고가 7.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을 바라본다고 했다. 공공이 소유하지 않거나(전세임대), 결국 분양으로 전환해 민간에 넘겨주거나(10년 임대 등), 임대료가 높은(행복주택) 주택 등을 빼고 나면 실질적인 장기 공공주택 재고는 많아야 5% 수준에 머문다고들 본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4.3%로 집계한 바 있다.)

30년 동안 모든 정부는 공공주택 확충을 말했다. 저마다 자기만의 ‘브랜드’를 개발했다. 확충은 공공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보다, 조금씩 얹으며 입주 대상을 넓히는 방식이었다. 노태우 정부의 영구임대가 소득 하위 20%(도시 노동자 월평균 소득 50% 이하) 정도를 주요 대상으로 했다면, 국민의정부·참여정부 브랜드인 국민임대는 최대 소득 하위 60% 정도까지 대상으로 삼는다.(봉인식·최혜진, ‘Ghekière의 유형론을 활용한 한국 공공임대주택 정책에 대한 탐구’ 참조) 박근혜 정부의 뉴스테이 등은 소득 기준 자체가 없다. 얼핏 공공주택이 보통사람 전반으로 일반화하는 거로 보였는데 사실 궁여지책에 가깝다. “집값과 소득의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며 공공주택을 통한 주거복지 수요가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넓어졌기에 대상도 넓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이다. 소득 여력이 어느 정도 있는 계층에 상대적으로 비싼 임대료를 내도록 해 재정 부담도 줄여야 했을 것이다. 재고가 절대적으로 적은 상황은 그대로인데 대상은 넓어졌으니, 공공주택이 한층 더 눈에 띄지 않는 건 당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2월 임대주택 100만 가구 준공을 기념해 경기도 화성동탄 행복주택 단지를 방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2월 임대주택 100만 가구 준공을 기념해 경기도 화성동탄 행복주택 단지를 방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공공임대 5%, 민간임대 시장에 전혀 영향 없어

눈에 띄지 않는 건 이런 의미이기도 하다. “수도권에서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이 절반이라 치고 그 가운데 사회주택(공공주택)이 5%쯤 된다면, 나머지는 민간임대가 차지한다는 의미다. 공공임대가 민간임대 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박은철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이른바 ‘이중임대모델’이다. 민간임대가 워낙 지배적인 탓에 그나마 가격이 낮고 질 좋은 공공임대가 부동산시장 전반은커녕, 민간 임대시장에도 자극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 한국에서 공공임대는 내가 들어가 살 수 있다는 직접적인 희망으로도, 임대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쳐 임대료를 낮추고 품질을 높이리라는 간접적인 희망으로도 존재하지 못한다. 그들만의 주택으로 고립됐다.

여기까지, ‘당연하잖아’ 싶다. 너무 익숙하게 알아온 풍경이다. 그렇지 않다. 자가소유-공공임대-민간임대의 관계를 바탕으로 주택시장을 외국과 비교해보면 우리는 꽤 독특한(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다. 1980년대 이후 주택 구입에 대출 끼는 일이 일반화(금융화)하면서, 선진국에서 대개 공공주택의 자리가 흔들리고 집값이 폭등하긴 했다. 다만 한국처럼 내 집 마련도 공공주택 확충도 모두 되지 않은 선진국은 드물다.

예를 들어 ‘라이트 투 바이(right to buy) 정책’(임차인에게 사회주택을 살 권리를 주는)을 펴가며 자가 소유를 장려한 영국은, (이런저런 부작용이 있음에도) 최소한 자가점유율을 높였다. 공공(국가)이 맡던 주거와 복지를 개인이 자산으로 감당하는 사회로 전환했다. 독일은 우리처럼 민간임대가 임대시장을 주름잡지만, 민간임대 상당수가 공공의 통제를 받고 비영리 성격을 띠므로 사실상 공공주택과 비슷하다. 스웨덴은 자가 소유가 많아졌지만, 동시에 임대시장에선 민간임대가 줄고 공공임대가 늘어났다. 자가 소유 사회가 수반하는 양극화 앞에 공공의 역할을 강화해야 했을 것이다.

한국은? 공공임대는 여전히 너무 적다. 민간임대는 순수 영리 목적인데다 저금리 탓에 하루가 다르게 물량이 줄고, 품질이 낮아도 값은 오른다(즉, 가성비가 떨어진다). 무엇보다 모두가 집을 열망하는데도 수도권 자가점유율은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50% 언저리를 맴돌 뿐이다.(신진욱·이은지, ‘금융화 시대의 주택체제 변동의 네 가지 경로’ 참조) 보통사람의 두 가지 꿈, 내 집 마련을 통한 안정적인 삶도, 공공의 주거복지도 모두 놓쳤다. 난처하다.

한국 사회가 공공임대를 크게 늘리지 못한 원인은 다양하고 서로 얽혀 있으며 점점 악화한다. 전세제도. 공공주택은 보통 비정상적인 주거 불안 속에 시민의 분노가 폭발하며 늘어나는 게 상식이다. 한국은 그 분노를 전세로, 그러니까 민간에서 알아서 해결해온 오랜 역사가 있다. “전세가 내 집 마련으로 가는 지렛대 노릇을 했다. 다만 현재는 저금리로 민간 전세 자체가 늘 수 없고 비싼데다 10년을 전세 살며 돈을 모아도 집 한 채 소유할 수 없으니 주거 사다리로서 전혀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다.”(고정희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민간 전세의 의미와 자리는 변했는데 한번 익숙해진 경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집값 상승 편에 서온 공기업, 늘지 않는 공공임대

또한 빈약한 재정. “공공임대 건설은 집을 짓는, 또한 영구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돈이 많이 든다.”(박은철 연구위원) 이 과정을 막대한 재정 투입 없이 공기업(한국토지주택공사 등)과 임차인이 알아서 하도록 뒀다. 공기업 처지에선 어딘가에서 돈을 벌어 충당해야 한다. 땅을 팔아 공공의 보유 자산을 줄이고 민간 건설사처럼 분양해서 메웠다.

톺아보면 황당한 일이다. 물론 공기업의 땅장사, 집장사가 집값을 올린 단 하나의 원인이라 볼 수는 없다. 다만 공기업이 주거복지를 위해 땅과 집을 팔며 집값 상승 편에 선 아이러니는 부정할 수 없다. 집값 상승은 주거복지 수요를 늘린다. 중산층도 집을 사기 어려워진다. 공공임대는 더 절박해진다. 그런데 아뿔싸, 주거복지의 주체인 공기업이 자산을 줄인 상태다. 집 지을 땅이 없다. 집값 상승기에 민간주택을 되사서 공공임대를 하는 일까지 벌인다(매입임대). 집값은 더 오른다.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데 드는 비용은 늘어난다. 마침내 이런 한탄. “반포 주공을 당시 (주공이) 분양을 안 하고 (임대 형태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지금 주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이헌욱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2020년 9월15일 ‘공공주도 개발을 통한 공공주택 공급방안’ 토론회) 늦었다. 집 없는 보통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민간임대를 전전하거나, 공포에 질려 빚으로 집을 산다. 집값은 다시 오른다. 공공주택 건설 부담은 커진다. 공공임대가 늘지 못한다. 민간임대로 보통사람은 내몰린다… 또다시 무한 반복.

‘그나마’ 공공 소유 땅에 공공주택을

이쯤 되면, “사회주택 재고가 늘고, 내 집 마련을 위한 주거 사다리가 되는 것이 구조적으로 너무 힘들어진 상황”(고정희 연구위원)이라고 낙담할 수밖에. 보통사람의 꿈은 이대로 몰락하는가. 미약한 가능성이나마 찾으려 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021년 7월6일 공공택지에 절반은 장기 공공임대로, 절반은 토지임대부주택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법안(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내놨다. ‘그나마’ 지금부터라도 공공이 다진 토지에서만은 공공의 자산을 유지하고 부동산 수익을 차단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았다. “용산을 비롯해 서울의 주요 지역에 양질의 공공주택을 늘릴 필요”(고정희 연구위원)를 말하기도 한다. ‘그나마’ 아직 공공이 소유한 좋은 땅에 공공주택을 지어야 한다는 얘기다. 어디까지나 ‘그나마’다. 민간이 알아서 주거 문제를 해결해온 경로, 당장 아까웠던 재정 지원, (다른 복지제도에 견줘서도) 너무 늦게 깨달은 주거복지의 중요성, 무엇보다 폭등한 집값이 얽혀 2021년 공공주택의 자리는 한껏 줄어 있다. 다만 보통사람 우리에게는, ‘그나마’ 절박하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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