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차별금지론자 예수

등록 2021-07-05 10:35 수정 2021-07-06 01:57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올해도 어김없이 보수 개신교 내에선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뜨겁다. 최근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국민동의청원에 서명한 사람이 10만 명 넘고 국회에서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자, 부리나케 보수 개신교계는 이에 반대하는 청원을 올렸다. 대형교회 유명 목사들은 공예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교인들에게 서명을 독려했고, 고작 나흘 만에 10만 명의 서명을 모으며 무시무시한 힘을 과시했다. 한국 교회는 그런 식으로 지난 14년간 국회에서 7건 이상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될 때마다 앞장서 발목을 잡아왔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이를 드러내다

참 아이러니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야말로 ‘사랑의 종교’인 개신교가 오히려 앞장서서 추진해야 할 법안이 아닐까? 기독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믿음에 뿌리를 내린 종교가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동성애나 성적 지향성 등에 관한 교회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우선 하나님의 형상인 성소수자가 그 정체성이나 가치관에 따라 차별받는 일이 부당하다고 외치는 게 조금 더 기독교적이지 않을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인종/사회/종교적으로 극과 극에 있는 이 또한 나의 ‘이웃’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정말로 개신교인이 예수를 닮기 원한다면 우리 주변의 성소수자 이웃과 우정을 쌓고, 차별받는 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우리와 동일한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성경 속 묘사되는 예수는 ‘이웃 사랑’을 매우 구체적으로, 본인의 삶을 통틀어 나타내 보였다. 늘 변두리에, 차별의 그늘에 가려졌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그의 이야기 중심부로 이끌어왔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그가 태어났을 때 그에게 첫 경배를 드린 이들은 목자였다. 이들은 직업상 ‘불결’로 인해 늘 예배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던 존재였다. 그런 이들에게 예전 참여의 차별을 해소하고 예수를 향한 가장 첫 예배의 특권을 줬다. 여인들은 어떠한가. 성경은 당시 법정에서 증인으로 효력이 없던 여인들에게 예수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특권을 부여한다. 또한 종교 지도자의 딸을 고치러 가는 길에 예수는 오랜 지병 탓에 사회에서 소외됐던 여인을 중심으로 불러낸다. 기득권 집단인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보잘것없는 여인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움으로써, 그동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그가 모두의 앞에서 보이고 들리는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

교회는 성소수자에게 ‘성적 문란’의 틀을 씌우며 차별의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지만, 예수는 ‘문란’한 이들에게 더 다가갔다. 간음죄로 붙잡혀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몰린 여인을 구원했고, 여러 남자를 거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던 여인을 일부러 뙤약볕 아래 찾아갔으며, 경건한 종교 지도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 찾아와 발에 향유를 붓는 성노동자를 변호했다.

본질로 돌아가라

성경 속 예수는 그 시대 상황에서 특별히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 것이 전혀 아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종교인들에게 본질로 돌아가라고 상기시켰을 뿐이다. ‘이웃 사랑’을 놓치던 종교인에게, 구약성서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요약해줬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며 하나님 사랑은 결국 이웃 사랑과 동일한 말임을 강조했다.

만약 예수가 2021년 한국 교회를 본다면 어떤 말을 해줄까. 차별금지법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단 한 차례도 입법 절차를 밟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김종대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 대표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