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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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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오늘도

등록 2021-06-29 06:32 수정 2021-06-30 02:04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페미니즘 백래시(반격)에 철썩철썩 따귀를 맞다보니 상반기가 다 가버렸다. ‘허버허버’라는 온라인 신조어가 이른바 ‘남혐’이라고 항의받자 이모티콘 몇 종의 판매를 황급히 중단하면서, ‘앙○○띠’처럼 성착취물로 확산된 표현은 은근슬쩍 넘어가는 카카오 때문에 뒷목 잡은 일은 빙산의 일각, 아니 ‘한 꼬집’에 불과했다. GS에서 시작된 ‘집게손 모양’ 소동은 경찰청, 국방부, 기업을 휩쓸었다. 사라진 지 무려 5년이 다 된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 메갈리아 로고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인 양 집착하는 남자가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나는 혹시 몰라 엄지와 검지가 아닌 손가락으로 초콜릿을 집어 먹어보려 수차례 시도하다 포기했다. (참고로 검색창에 ‘소주 한 잔’을 치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메갈’이 암약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은 나아진 게 맞을까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논란’이 터질 때마다 우습고도 우울했다. 2015년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재시동) 이후 백래시는 계속 발생해왔지만, 올봄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걸어온 길을 의심하게 했다. 세상은 정말 나아진 게 맞을까? 끝없이 반복되는 헛소리에 언제까지 대응해야 할까?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뭘까? 무기력에 잠겨 누에고치가 돼가고 있을 때 강유가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을 보았다.

‘영 페미니스트’는 1990년대 중반 등장해 2000년대까지 두각을 나타낸 젊은 페미니스트 그룹을 뜻한다. <우리는 매일매일>은 그 시절 페미니즘을 통해 “내 경험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던 감독이 지난 몇 년 사이 마주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어떤 역할을 해내고 있는 걸까?” 그는 이십 대를 함께했던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찾아가 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이화여대 대동제 고려대생 집단 난동 사건, 부산대 페미니즘 사이트 ‘월장’ 사이버 테러 사건 등 과거의 국면마다 여성주의자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연대했는지, 영화는 다양한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다. 군가산점제 폐지 관련 대자보가 찢길 때마다 다시 써 붙이고, 여대 행사를 망치겠다는 일념으로 몰려온 수백 명의 남학생 무리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가로세로 2m짜리 ‘보지 상’을 끌고 거리에 나설 만큼 패기 넘쳤던 ‘영 페미’는 십수 년이 흐른 지금 더는 젊지 않다. 생활인·활동가·양육자 등 중첩되는 정체성에 따라 삶의 무게는 늘었고, 페미니스트로서 ‘한물갔나’ 싶어 움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끈질긴 여성들은 사는 곳이 바뀌고 하는 일이 달라져도 그 자리에서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며 일과 생활을 양립하기 위해 제주로 이주한 ‘짜투리’는 바쁜 시간을 쪼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관련 시위에 참여한다. 반성폭력 활동가로 일하다 번아웃(소진)으로 그만두고 수의사가 되어 전북 정읍에 사는 ‘키라’는 소싸움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에겐 소싸움을 폭력이라고 느끼는 감수성이 성차별,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감수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신호 보내며 계속 살아가자

물론 백래시 광풍은 <우리는 매일매일> 역시 비껴가지 않았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꼴페미 영화”라며 ‘좌표’를 찍는 바람에 별점 테러를 당했다. 하지만 백래시의 한복판에서 지쳐 있다면 어제도 오늘도 ‘꼴페미’로 살아가는 이 씩씩하고 웃긴 여자들의 이야기를 꼭 만나보길 바란다. 영화 속 ‘흐른’의 노랫말처럼 “깜깜한 바다를 겁내지 않도록”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며 계속 페미니스트로 살아가자.

최지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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