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다. 주된 밥벌이는 아니지만 글과 책을 써서 간식 정도는 사먹는 처지에, 직업윤리를 갖춰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무엇보다 내 글을 살피는 편집자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살면서 처음으로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중·고등학교 때 배워두면 좋았을 지식을, 새삼 다시 공부하려니 돈도 들고 시간도 든다. 반골 기질이 강해서인지 허울 좋은 핑계인지 모르겠지만, 10대 때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무시했다. 뜻만 통하면 되지, 규칙은 언어의 본질이 아니지 않은가. 가성비도 안 나왔다. 시험에 맞춤법 문제는 하나밖에 안 나왔기 때문에 3번으로 찍고 운에 맡겼다. 공부하기 싫은 핑계는 늘 설득력이 있다.
돈 주고 들은 수업이라 그런지, 그렇게 싫던 규칙이 재밌다.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쓴다. 잘 모르겠으면, 같은 뜻인지 아닌지에 따라 구분하면 된다. ‘축구를 못한다’와 ‘축구를 못 한다’는 다른 뜻이다. 공을 차는 능력이 부족하면 하나의 뜻이므로 ‘못한다’로 붙여 쓰고, 코로나19로 경기장이 폐쇄돼서 축구를 할 수 없다면 부정의 의미인 ‘못’과 행위를 뜻하는 ‘한다’로 띄어 쓴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국어사전을 찾으면 된다. 모두 정확한 뜻을 찾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다. 그래도 늘 규칙에서 벗어나는 단어가 있기 마련이다. 띄어 써도 되고 띄어 쓰지 않아도 되는 단어는 그저 개인의 취향이다.
국어의 신비함에 취해 있을 때쯤,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리 어머니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문자 쓰는 게 익숙지 않으셔서 짧은 문장만 보내므로 뜻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아들’, 아니면 ‘우리아들’로 시작하는 문장은 ‘잘지내요’라는 마지막 문장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띄어쓰기한 내 답장이 띄어쓰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문장보다 짧다. 쌓인 문자 기록을 천천히 넘겨보면서,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잘 쓰는 것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응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 상담을 할 때는 글은커녕 모든 것을 말로 끝내려는 분을 자주 접한다. 내 머리가 녹음기는 아니므로, 그분이 말하는 걸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중간에 말을 끊고 글로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하지만, 전화를 끊는 건 고사하고 신세 한탄이 추가되기도 한다. 어렵게 글을 받더라도,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지키지 않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어 여러 차례 확인해야 한다. 짜증이 치밀다가도, 글과 말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이 세상에 닿기 위해서라는 결론에 이르면 억지로라도 힘을 낸다.
생각해보면 세상이 정해놓은 말과 글의 규칙을 따를 수 없는 존재가 있다. 장애인이 이동할 수 없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비장애인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대중교통을 멈춰야 한다. 공장식 축산 제도의 문제를 말하기 위해 도륙당하기 직전의 닭과 돼지를 실은 차를 막는다. 세상은 법칙을 어긴 이들을 욕하고 비난하겠지만,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말과 글이다. 비표준어가 많은 사람이 반복해서 쓰다보면 표준어가 되는 것처럼, 세상도 그렇게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다양한 ‘사람사전’ 펼쳐 읽기를선거가 끝났다. 다양한 이야기와 해석이 넘칠 것 같다. 말과 글을 유려하게 쓰는 이들이 다종다양한 민심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규정하거나 틀렸다고 훈계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연히도 이 글은 절망스러운 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위한 변명이 아니다. 글 쓰는 사람이 정확한 뜻을 사용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정치인들 역시 국민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아마 이번 선거에서 심판받았을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자신만의 신념을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국어사전을 펼치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사전’을 펼쳐 읽기를 희망한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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