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2일 밤 11시50분 온라인 광장에 긴 도로가 깔렸다. 그 위로 저마다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늘어섰다. 추모를 위한 촛불과 꽃,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깃발을 든 채. 행렬은 마우스를 아무리 아래로 스크롤해도 그 선두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길고도 길었다.
미디어 닷페이스가 주최한 온라인 연대 행렬 ‘너의 내일을 우리가 지킬게’ 누리집 화면이다. 한 달 사이 이은용 작가, 김기홍 선생님, 변희수 하사까지 성소수자 3명의 부고 소식이 잇따랐다. 허망한 마음을 둘 곳 없는, 그래서 뭐라도 외쳐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닷페이스는 온라인 광장을 마련했다. 참여 방법은 간단했다. 닷페이스가 만든 누리집에 접속해 별명과 생김새, 하고 싶은 말을 선택한다. 그리고 연대 행렬에 합류한다. 그렇게 참여자 2만4천여 명(3월17일 기준)은 휴대전화 화면 속에서 같은 길을 걷는 이들과 무언의 연대를 나눴다.
변화를 이끄는 데는 여러 화법이 동원된다. 가르치거나, 타이른다. 꾸짖거나, 질책한다. 닷페이스의 화법은 다르다. 변화가 필요한 지점(닷·dot)을 찾고, 그 지점에 자리한 현장과 사람을 직면하게 한다(페이스·face). 나아가 변화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디딤돌이 되거나, 그 장벽을 넘다 지친 사람들이 토닥이며 숨 고를 공간을 마련한다. 변화를 견인하는 미디어이자 플랫폼인 닷페이스의 조소담(32) 대표를 3월10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닷페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2021년 1월 이사 온 망원동 사무실은 닷페이스의 7번째 사무실이다. 2016년 10월 상암동에서 사업자등록을 낸 뒤 홍제동, 을지로 등을 거쳐 얻은 독립 사무실이다. 그동안 유튜브 계정에는 콘텐츠 500여 개가 업로드됐다. 유튜브 23만5천 명, 페이스북 15만여 명으로 구독자 수가 늘었다. 뜻 맞는 기업 제품이나 기관 정책을 홍보하는 브랜디드 콘텐츠와 닷페이스를 후원하는 닷페피플을 통해 수익을 내는데, 이 닷페피플이 1700여 명(2021년 3월 기준)에 이른다. 닷페이스를 움직이는 힘이자 닷페이스가 일군 성과다.
닷페이스는 같은 문제도 다르게 이야기한다. 일반 방송 보도에서 재활용 이슈를 다루는 방식은 틀에 박혀 있다. 앵커와 기자 뒤편 찌그러진 플라스틱이 배경화면으로 깔리고 끝. 닷페이스는 친환경 플라스틱을 버렸을 때 그 플라스틱이 어디로 가는지 직접 따라가본다. 500t짜리 플라스틱 장벽을 보여주고, 재활용 가능한 줄 알았던 플라스틱이 버려지는 소리를 들려준다. 2018~2020년 선보인 ‘할 말 많은 인터뷰’ 시리즈는 어떤가. 동료를 떠나보낸 35년차 소방관, 촬영장 갑질에 혹사당하는 보조연기자, 긴바지를 입을 수 없는 여성승무원이 자기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정말 이렇다’는 공감과 ‘이런 줄 몰랐다’는 각성이 댓글창에서 울렁이듯 파도를 일으킨다.
“문제가 있어도 제대로 전달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해요. 언론이 객관적으로 편집해 현실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실제로 당사자의 목소리를 지우거나 고정된 형태로 욱여넣어서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카메라를 드는 순간 대상화는 시작된다.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부분을 나누고, 중요한 부분을 연결지어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나가는 데 편집자 해석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은 직장에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부조리를 고발하거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개인사를 털어놓기로 어렵게 결단을 내렸다.
“카메라 앞에 서는 분들을 담는 것에 (닷페이스) 내부에 두려움이 있어요.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도, 이것만큼은 이야기해야겠다, 이 이야기가 더 멀리 전해져야 한다 싶을 때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 서거든요. 그걸 아는 입장에서 카메라를 든 순간부터 ‘어떻게 담아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죠.”
2021년 1월 인천국제공항 환승 구역에 10개월째 갇힌 공항 난민을 19분여 영상에 담았을 때다. 닷페이스는 머리빗, 샴푸, 응급약 키트를 챙기고 항공권을 예매해 환승 구역을 찾았다. ‘오늘이 몇 주째 무슨 요일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그에게 어떻게 먹고 자는지 어려움을 묻기도 했지만, 이것만 부각하기보다는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창밖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물었다. 메시지를 위해 편의적으로 인물을 납작하게 다루지 않고 숨을 불어넣는 과정이다.
디지털 환경과 성폭력, 퀴어, 노동과 산업재해, 장애, 기후위기까지 닷페이스는 변화가 필요한 주변 3m 이내를 주목한다.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은 우리 각자가 서 있는 그 자리다. 자신의 문제의식이 닿는 곳이 3m이고, 그 문제의식을 다시 3m 밖의 세상과 연결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한 사회적기업가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1)
이는 사실 변하라고 촉구하기보다는 “이미 변화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에 가깝다”고 조 대표는 말한다. 변화하는 가족 형태를 제도가 쫓아가지 못해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할 때 사회에 이렇게 되묻는 식이다. ‘이미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하고 있는데 왜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거야?’
‘소수자’라는 표현도 닷페이스 내부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변화가 필요한 지점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을 뿐이다.
물론 변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 쉽게 변하지 않는 현실에 무력감도 느낀다. “문제의식을 가졌을 때 포기하지 않고 그 시선을 유지하게 하는 것도 사회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닷페이스는 콘텐츠나 미디어 서비스를 통해 그 무력감을 덜어내는 방법을 고민한다.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지점이다.
2020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함께 ‘내가 만드는 하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규탄 시위에 등장한 이 구호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고민했다. “제도 변화도 가해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일이 과거가 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고통이 끝나야 한다.”2) 6월2~17일 시민 펀딩을 받아 디지털성폭력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돕는 지원금을 마련했다. 1782명이 참여해 4404만원이 모였고 이 금액을 58명의 피해자에게 전달했다.
“사람들이 변화가 필요한 지점을 보면서도 무력감을 느끼지 않고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도록 같이 뭔가 할 수 있게 하는 것까지 닷페이스가 지향하는 미션 안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어떤 사람이 무언가 이야기하려 하면, 그 사람이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려 한다. 닷페이스는 그 자격에 구애받지 않고, 2020년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문구처럼 ‘없던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2016년 한국 사회가 급변하던 때 닷페이스는 탄생했다. 그해 5월 서울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이들이 촛불을 들었고 세월호 참사 진상을 규명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뭔가 부족했다. “더 많이 이야기가 터져나와야 하는 주제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덜 되고 있었어요.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하지’ 물었을 때 ‘우리가 하자’ 생각한 거죠.” ‘넥스트 미디어’ 관련 수업 등에서 만난 20·30대 친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댔고 닷페이스를 세웠다.
현재 조 대표와 개발자, 피디(PD) 4명 등 모두 7명이 일한다. 사수도 선례도 없이 모두가 ‘초짜’였기에 “서로가 레퍼런스(참고)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따르면서 남들이 말하는 ‘회사란 이래야 한다’ ‘기자란 이래야 한다’는 개념을 해체하고 재조립해나가는 과정을 밟아간다.3) 닷페이스 누리집에 소개된 ‘일 문화’ 중 일부다. ‘나 자신으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기준을 만듭니다.’
이미 만들어진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든 일터로 출근하는 것이 불안하진 않을까. 내가 내린 선택이 맞다고 느끼지만, 그 느낌을 뒷받침할 선례가 없을 때 그 이유만으로 그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할까. 조 대표는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내가 선택한 방향은 계속 불확실성을 더 많이 껴안는 방향’이었다고 표현했다.4)
“불확실함을 불안함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면 옆에 두고 모른 척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데 불확실함을 껴안는다고 하면, 내가 선택한 방식이 불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 상황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 같아요. 불확실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환영하고 좋아하면서 선택해나가자는 태도를 갖고 싶은 거죠.”
조 대표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속할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거나 만들어왔다. 불확실성을 껴안으며.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선생님이 복장검사를 했다. 성적으로 불쾌감과 모욕감을 주는 방식으로 ‘여학생의 교복은 이래야 한다’고 했다. 수업시간 내리 고민하다 그는 교무실로 찾아가 “너무나 당연한 감각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누군가 사과하고 사과받는 게 권력관계를 뒤집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그해 여름방학 자퇴를 결정했다. 어른 말씀을 잘 듣던 둘째 딸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자신의 선택으로 벗어난 생애 최초의 경험이다.
“환경을 고치거나 적응하는 것만큼이나 환경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선택을 하면 그 선택에 따라서 그 뒤에 살아갈 인생이 완전히 달라져요. 하고 싶은 선택을 하는 게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겠다 생각했어요.”
남들이 정해놓은 틀을 따라가는 대신 그 틀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경험은 2014년 대학생 때도 이어진다. 수업을 같이 듣던 친구의 제안으로 독립언론 미스핏츠에 초기 멤버로 참여했다. 미스핏츠는 세상의 모든 핏(fit·적합한)하지 않은 목소리를 담아낸다는 콘셉트의 20대 독립언론이다. 글을 썼다. 정해진 형식이나 주제는 없었다. 남들이 운운하는 ‘미디어의 자격’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던 때라고 조 대표는 기억한다.5)
기성 언론의 한 기자가 주거 문제가 이슈 될 때마다 학보사 후배에게 전화해 ‘주변에 옥탑방이나 반지하 사는 애 없냐’고 묻고 ‘대학생 모씨’ 인터뷰로 매년 비슷하게 보도하는 것을 보고 ‘웃기다’ 생각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고민했다. 청년 주거 문제 대응 방식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위해 펀딩을 받아 팀원들과 일본, 홍콩, 대만으로 취재를 나갔다. “우리끼리 해도 되는구나” 확인하게 됐다. 그때의 감각은 닷페이스에서 활동하는 감각과 연결된다.
‘믿을 구석’을 만들어간다“눈앞에 절망스러운 일이 벌어져도 출근해 할 일이 있고 그 일이 그 문제를 이야기하고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안심돼요. 10년 이후에도 한국에서 살아간다고 했을 때, 믿을 만한 사람들이 있어서 희망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을 주면 좋겠어요. 그런 ‘믿을 구석’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이요.”
조 대표에게 닷페이스의 동력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다. 닷페이스는 투자사 소풍의 투자를 받았다. 동료 7명을 더 찾아 텍스트 기사도 내고, 캠페인 영역도 확장할 생각이다. 닷페이스가 만들어내는 믿을 구석은 오늘도 끝없이 넓어진다.
글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1355호 - 체인저스 21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582/
1)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 홍진아 지음, 2018년
2) ‘N번방 이슈를 잊지 않은 당신을 찾습니다’, 닷페이스 유튜브 영상, 2020년 6월3일
3) 4) 5) <월경>, 조소담·강민진 등 공저, 2020년
선택
‘사람은 원래 가진 능력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곧 그 사람이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덤블도어 교수가 한 말이다.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는 가끔 이 영화 대사를 떠올린다.6)
그는 부조리를 목격하고 체험한 학교를 그만두기로 선택했다. 견디는 사람을 연료로 쓰는 시스템에서는 자퇴, 퇴사, 포기 같은 중도 퇴장을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여긴다고 지적하며, 중도 퇴장을 해본 경험이 오히려 삶을 풍요롭게 한 다고 말한다.7) 이 세상에 들어맞지 않아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겠다며 독립언론 미스핏츠를 선택했다. 친구들과 함께한 경험은 정석에서 탈출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8)
그렇게 없던 길,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나간다. 닷페이스는 그 선택과 선택이 쌓여서 만들어진 또 다른 여정이다.
6) 8) <당신은 체인지메이커입니까?>, 정경선 지음, 2018년
7) ‘고등래퍼’, , 조소담, <한겨레> 칼럼 ‘2030 잠금해제’, 2018년 3월5일
2020년 10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취재하며 디지털성폭력 피해자와 만났을 때다. ‘뭐가 안 되고’ ‘뭐는 어렵고’의 연속인 정부 피해자 지원 정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상치 못하게 피해자가 미디어 닷페이스 이름 넉 자를 꺼냈다.
피해자는 닷페이스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진행한 ‘내가 만드는 하루’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원 자격을 따지거나 사용 내역을 증빙하라 요구하지 않는 대신, 일상 회복 계획을 세우는 지원서 작성을 비롯한 모든 과정이 피해 회복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됐다. 그는 “되게 되게 정말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저를 모르는 사람이 선뜻 저를 위해 돈을 낸 거잖아요. 주위에 나한테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고 사회도 피해자인 저한테 책임을 묻지만, 사회 저 멀리에 내가 잘 살았으면 하는 사람도 있구나 감동받았어요.”
사람들은 2017년 10대를 대상으로 한 랜덤채팅 앱의 성착취 실태를 고발한 히어아이엠(H.I.M)을 보고 공분해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에 서명했고, 2020년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에 참여해 깃발을 흔들었다. 닷페이스가 마련한 판에서 누군가는 변화의 작은 디딤돌을 놓으며 효능감을 느끼고, 누군가는 그 변화를 목도하고 체감한다.
그렇게 저마다 작은 점처럼 떨어져 있더라도 그 점들을 연결, 연결 짓다보면 언젠가 변화로 수놓인 큰 세상을 직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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