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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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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장애] 운동화끈 묶어달라 부탁할 수 있도록

발달장애 아들의 목표, ‘지원받아 잘 사는’ 자립
등록 2021-01-04 00:24 수정 2021-01-08 10:55
아들(오른쪽 둘째)이 친구들과 함께 아쿠아리움으로 현장학습을 갔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훗날 가족 품을 떠나 자립하는 게 나의 장기목표다.

아들(오른쪽 둘째)이 친구들과 함께 아쿠아리움으로 현장학습을 갔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훗날 가족 품을 떠나 자립하는 게 나의 장기목표다.

새해가 되면 신년 계획을 세우기 바쁘다. 올해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살은 10㎏을 빼고, 드디어 저축이란 것도 해야지. 살아가다보니 일은 계획보다 돌발변수에 잘 대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살은 1㎏이라도 더 찌지만 않으면 감사한 것이 되었으며, 유독 저축 앞에선 갑자기 목탁 두드리는 흉내를 내며 ‘무소유’를 외치곤 했다. 계획의 무상함이란…. 허허허.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의 신년 계획도 내가 세웠다. 설정한 목표를 토대로 특수교사와 학기 초마다 개별화교육회의를 하는 게 엄마인 내 역할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러저러한 계획을 세우곤 하지만 그래도 매년 되풀이되는 한 해의 가장 큰 목표는 ‘학교생활 잘하기’였다. 선생님 말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문제없이) 잘 지내기. 그렇게 여러 해를 보냈다.

“자립, 무… 무서워요”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다. 학교생활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가 달라졌다. 아들의 ‘자립’을 장기목표로 설정하면서부터다. 한 해를 잘 보내기 위한 1년의 계획과 자립이라는 장기목표를 위해 필요한 1년의 계획은 그 내용이 확연히 달랐다. 이제 내가 세우는 아들의 신년 계획은 더 이상 ‘평화로운’ 학교생활이 아니다. 담임에게서 전화가 오더라도, 시끄러운 나날이 한동안 이어지더라도, 그 모든 것을 아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그래야 아들이 산다. 아들은 살고 나는 죽는다. 내가 기대하고 기다리는 미래는, 그래야만 온다.

“여러분, 나중에 자립하면 어떤 점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엄마 잔소리 안 듣는 거요.”

한 청년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자리에 모인 청년들이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보면 나도 결혼이라는 자립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 부모님 잔소리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남편 잔소리가 그 뒤를 이을 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말이다.

이날 만난 20~30대 청년들은 발달장애인이었지만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장, 합리적인 보수, 좋은 동료와 친구, 지원해줄 가족 등 어찌 보면 발달장애계에서 흔치 않은, 꽤 좋은 여건의 당사자들이었다.

“이제 제가 10년쯤 지난 후에 여러분을 다시 찾아오면 그땐 모두 자립해서 잘 살고 있겠네요.”

갑자기 조용해진다. 어라? 제일 말을 많이 했던 열성 청년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왜 말이 없냐고. “무… 무서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자립해 사는 건 무서워 싫다는 말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예상 못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이날 만난 청년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최정예 부대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청년들조차 가족 품에서 떠나지 않으려 하면, 올해 열세 살이 됐지만 두세 살 인지에 머물러 있는 내 아들은 ‘자립’이라는 평생 과제 앞에 설 자리가 없다.

아들 끼고 살면, 내가 죽는 순간 지옥

자립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엄마의 죽음 뒤 집을 나와 거리 생활을 하는 청년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30년 뒤 아들이 같은 내용으로 뉴스에 나오지 않으려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아들은 자립해야 한다. 주야장천 옆에 끼고만 살면 아들 인생은 내가 죽는 바로 그 순간부터 지옥이 된다.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를 상실해버리기 때문이다.

시설엔 보내지 않는다. 보낼 생각도 없지만 앞으로는 보낼 수도 없다. 장애인 권리 운동 방향이 탈시설을 향하고 이미 서울은 시설 입소가 금지됐으며, 이 흐름은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다. 10~20년이 지나, 그러니까 아들이 딱 자립생활을 시작할 때쯤이면 여러 정책과 제도가 아들의 자립생활을 뒷받침할 것이다.

자립을 위해선 세 요소가 충족돼야 한다. 물리적 자립, 경제적 자립, 심리적 자립. 앞선 두 요소는 정책 영역으로 이 부분에선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심리적 자립이 문제다. 발달장애 당사자는 자신의 장애를 잘 인지하기 때문에 가족 의존도가 높고, 가족 역시 보호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심리적으로 분리가 잘 안 된다. 그래서 자립할 수 있는 청년들조차 자립을 안 하고 못한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건 생각만으로도 불안해서.

몇 해 전 부모교육을 들으러 갔다. 발달장애 아동이 몇 달간 연습해 리본 묶기에 성공해도 정작 치료실 밖을 나오면 운동화끈을 못 묶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치료실에서의 활동이 일상으로 확장되지 않는다는 게 주제였는데,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꼭 리본을 묶을 줄 알아야 할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운동화끈 묶어달라 도움을 요청하면 되잖아.’

타인의 지원 잘 받을 수 있는 성인으로

아들의 자립은 ‘나 혼자 산다’가 아니라 ‘지원을 받아 산다’가 될 것이다. 활동지원사, 직무지도원, 사회복지사 등의 지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아들은 ‘타인의 지원을 잘 받을 수 있는 성인’으로 자라면 되지 않을까?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정확한 표현으로 자기 의사를 드러내고, 타인과 관계 맺는 걸 너무 두려워하거나 마냥 좋아하지 않고, 인간관계의 그 복잡미묘한 방정식을 풀어갈 자신만의 방식을 찾고, 그런 성인으로 자라는 게 기능을 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내가 쓰러졌을 때 무작정 거리로 나가 방황하지 않고 옆집 벨을 눌러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텐데….

새해가 밝았고 다시 계획을 세울 시점이다. 장기목표를 설정하고 차근차근 향해가는 일정은 사실 재미없다. 눈에 보이는 극적인 변화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면 변화는 공고해질 것이다. 중간에 길을 잃지만 않으면 된다. 올해도 자립이라는 큰 목표를 위한 중간 과정으로서 1년이 될 수 있길…. 2021년도 파이팅이다.

글·사진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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