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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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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아이가 혼자 살면

정보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발달장애인 주거지원 정책, 탈시설 로드맵이 진정성 있게 다가오려면 정부 중심 잡고 총대 메야
등록 2021-08-15 01:38 수정 2021-08-15 11:10
발달장애인 주거지원 서비스를 공부하다보면 복장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를 시설에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동상을 껴안고 노는 동환이.

발달장애인 주거지원 서비스를 공부하다보면 복장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를 시설에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동상을 껴안고 노는 동환이.

몇 년 전 남편이 모임에 나갔다가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술이 만취돼 들어왔다. 다음날 바가지를 잔뜩 긁을 요량으로 왜 그렇게 술을 마셨냐 다그쳤더니 “친구들이 동환이를 시설에 보내래”라고 말하는 걸 듣고 숨이 멎을 뻔했다.

친구들은 “너하고 제수씨, 딸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며 남편을 설득했다고 한다. 남편을 위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 귀엔 그들이 발달장애인 아들은 버리고 비장애인 딸만 키우라고 종용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육아가 힘들다고 자식을 고아원에 보낼 생각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아들에게는 어쩜 이리 가혹할 수 있을까.

“나중에 크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한창 어리고 예쁜 8살. 아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뽀뽀를 퍼붓지 않고는 못 배기던 그 시절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 자식을 둔 ‘선배맘’을 만났다. 그는 아들을 시설에 보냈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내게 그는 말했다. “지금이야 어리고 예쁘니까 그런 생각을 못하지만 나중에 크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정말 그럴까? 아들을 시설에 보내는 게 최선일까? 정말 그럴까?

요즘 나는 발달장애인 주거지원 서비스를 공부하고 있다. 성인기 발달장애인이 독립생활을 하기 위해선 주거 공간 확보가 최우선으로 필요하기에 이들이 살 집을 구할 수 있는 어떤 정책과 지원이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다. 정보를 한데 모아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책’을 만들어 주거정책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게 목표다.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땐 의욕이 불타올랐다. 그런데 일을 진행할수록 복장이 터진다.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보가 산발적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얻고자 하는 개인이 용을 써서 하나의 힌트를 습득한 다음 무수한 검색과 전화 연락을 통해 간신히 정보 하나를 얻는 과정이 무한 반복되는 중이다.

모든 정보를 위에서 꿰뚫어본 다음 그것들을 분류하고 정리해 쉬운 말로 바꿔야 할 마당에 정보의 가장 끄트머리에서 하나씩 힌트를 캐내 한 걸음씩 힘겹게 나아가고 있으니 이러다간 필시 놓치는 정보가 생기게 될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보건복지부에 연락했다.

우선 인터넷에 보건복지부를 검색해 조직도를 살폈다. 장애인 정책국이 나온다. 산하에 장애인정책과, 장애인권익지원과, 장애인자립기반과, 장애인서비스과가 있다. 다시 과별로 들어가 담당자를 찾는데 ‘주거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설마…’ 하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가장 업무 연관성이 높아 보이는 과에 전화했더니 자기네 업무가 아니라며 다른 곳으로 떠넘긴다. 연결해준 곳에서도 자기네 담당이 아니라고 한다. 그랬다. 발달장애인 주거지원과 관련해선 아예 담당자조차 없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정보를 구하는 것조차 산 너머 산

복장이 터지고 머리는 더 터질 뻔했던 시간을 보낸 건 그래서였다. 체험홈, 그룹홈, 지원주택, 공공임대주택 등 발달장애인 주거지원 정책이 체계적이지 않고 정보를 구하는 일이 어려웠던 건 이런 업무를 총괄하는 담당자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발달장애인 주거정책은 정부 차원에서 책임지고 관리하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발달장애인 주거지원 서비스는 지자체별로 저마다 내용이 달랐고 그마저도 지자체가 직접 담당하는 게 아니라 민간에 사업 외주를 주는 형식이 많아 개인이 필요한 핵심 정보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해서 정보에 도달해 살 집을 구한다 해도 문제다. 발달장애 특성 때문이다. ‘지원주택’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발달장애인의 독립에는 장애 정도에 따라 간헐적 지원부터 24시간 밀착 케어까지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다양한 주거 형태의 내부, 근거리에서 당사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할 공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우리 아들의 경우 신체 나이는 13살이지만 사회적 발달은 34개월 수준이다. 쉽게 말하면 몸은 13살이지만 정신연령은 3살이라는 뜻이다. 아마 아들은 성인이 되어도 3~4살 정도의 사회성 발달을 보일 것이다. 이런 아들에게 너 혼자 알아서 살아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3~4살 아이가 혼자 살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해보면 된다.

발달장애인의 고립은 생명의 위험과도 직결된다. 그래서 지원인력이 필수적인데 그런 인력을 양성하고 앞으로의 정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할 정부 차원의 준비가 하나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2021년 8월2일 정부는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장애계는 이를 환영하지 않았다. 로드맵을 뒷받침할 세부 정책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부부가 죽고 난 후에도 아들이 엄마아빠와 함께 살던 동네에서 계속 살기를 바란다. 밥 먹여줄 테니 시설에 들어가 남은 평생을 군 생활하듯 보내는 걸 원치 않는다. 아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 바라는 건 그 하나다.

시설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지 않도록

그러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중장기적 세부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먼 미래까지 크게 보고 그림을 그려나갈 주체가 필요하다. 지자체와 민간의 산발적 노력이 아닌 정부가 중심을 잡고 총대를 메야 하는 이유다. 일단 정부 차원의 담당 부서가 먼저 구성되길 바란다. 그래야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도 조금은 진정성 있게 다가올 것이다. 앞으로는 아들을 시설에 맡기라는 얘기를 더는 듣고 싶지 않다.

글·사진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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