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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는 ‘찾아가는 복지’, 현실은 ‘찾아 먹는 복지’

얌전히 있으면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기에 지적장애인 아들을 ‘자폐성장애인’으로 등록하다
등록 2021-07-18 08:04 수정 2021-07-23 01:35
동환이가 장애로 겪는 어려움을 이 사회가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

동환이가 장애로 겪는 어려움을 이 사회가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

지적장애인이던 아들이 자폐성장애인이 됐다. 아들이 지적장애인이건 자폐성장애인이건 장애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발달장애가 있는 건 사실이니 그로 인해 아들은 현실 삶에서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면 그 부분을 지원하면 된다. 정책이 할 일, 복지가 할 일이 바로 그런 일이다.

그러나 ‘찾아가는 복지’를 강조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복지 현실은 ‘찾아 먹는 복지’에 더 가깝다. 지적장애인이던 아들을 자폐성장애인으로 장애명을 바꿔 재등록을 신청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들에게 필요한 복지 혜택을 찾아 먹으려고. 얌전히 있으면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기에, 가만있으면 가마니가 되기 때문에.

검사가 불가능하면 평균점인 6점

‘발달 지연’인 줄 알았던 아들이 끝내 ‘발달장애’ 확진을 받은 건 5살 때다.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다니던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가까운 재활병원으로 치료실을 옮겼다. 그곳에서 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지적장애 2등급이 나왔다. 3점 차이로 1등급이 아닌 2등급을 받았는데, 인지는 낮아도 사회성이 좋아 2등급이라고 했다. 하긴 아들은 아무에게나 안겨 잘도 웃었다. 훗, 사회성 좋은 녀석 같으니.

그런데 이상하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주변에서 장애 아이들을 보는데 우리 아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때 알았다. 우리 아들은 2등급이 아니라 1등급을 넘어 특등급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을.

등급을 변경하기 위해 재심사를 요청했다. 몇십만원의 검사비를 감수하며 진단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지적장애 2등급이다. 이번엔 2점 차이로 1등급에서 떨어졌는데, 말 한마디 못하는 아이의 언어영역 점수가 6점으로 채점돼 있었다. 아들은 말도 못하고 의사소통도 안 돼 검사 자체가 불가능했는데, 검사가 불가능하면 0점이 되는 게 아니라 전체의 평균점인 6점으로 환산한다고 했다. 오히려 말하는 아이가 아들보다 더 낮은 점수를 받는 이상한 시스템이었다.

억울해하는 내게 의사가 말했다. “정 그러면 정신과 가서 자폐로 다시 받으세요.” 알고 보니 재활병원에선 지적장애 판정만 내릴 수 있고 정신과에 가야 자폐와 지적장애 판정을 모두 내릴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쌍둥이 육아만으로도 헉헉대던 시절이라 그런 정보도 모르고 살았다.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의 특성을 모두 가진 아들은 장애명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어휴, 됐다. 언제 또 가나. 그냥 살자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때 난 정신과에 갔어야 했다.

이용자 중심 아닌 제공자 중심의 설계

아들이 성장하면서 장애인 주차권이 절실해졌다. 기다림이 힘든 아이는 주차장에 가서 주차할 곳을 찾아 빙빙 돌고 있으면 차 뒷자리에서 난리가 났다. 덩치 커진 아이가 몸을 들썩이며 소리 지를 때마다 차 전체가 흔들거렸다. 아들은 목적지에 다 왔는데 왜 주차하지 않는지, 자기를 왜 내려주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서울의 경우 지적장애는 1등급까지만 장애인 주차권이 발급되고 자폐성장애는 1, 2등급 모두 주차권을 받는다. 2019년 장애등급제가 폐지됐지만(사실은 기존 6단계에서 2단계로 등급이 다시 나뉜 것뿐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아직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지 등급제 폐지 이후에도 아들에겐 주차권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겠나,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야지. 두 달 전, 정신과를 찾아갔다. 다시 비싼 돈을 내고 검사받아 자폐성장애 판정을 받았다. 검사진단서와 의사소견서 외에 학교 담임과 치료사의 소견서도 첨부해 아들의 장애가 얼마나 심한지를 국민연금공단에 증명했다.

장애계에선 늘 일어나는 일이다. 자신을 위해 마련된 복지정책을 사용하기 위해 장애 당사자는 장애로 인해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든지를 매번 증명해야 한다. 그때마다 정말이지 기운이 쭉 빠진다. 이 과정을 거쳐 아들은 장애 정도가 중한 자폐성장애인이 됐고 절실히 필요했던 장애인 주차권도 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했던 이유는 우리나라 장애 정책이 이용자 중심이 아니라 제공자 중심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장애가 발생하면 정부는 그 특성에 맞춰 필요한 복지를 개별 지원하는 게 아니라, 법으로 규정해놓은 장애명과 장애 정도에 따라 복지를 일괄적으로 지정해 제공한다. 같은 장애라도 개인의 특성과 처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사안이 천차만별이지만 그런 개별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아들이 발달장애인이 되고 나서 처음 알게 된 대한민국 장애 정책은 아쉬운 부분이 참 많았다. 일괄 지원 방식을 띠는 제공자 중심 서비스도 그중 하나다. 사실 이 부분은 정부 의지만 있으면 바꾸는 게 가능한데 사람을 짐승처럼 등급 매겨 일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닌 각자에게 필요한 부분을 개별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바꿀, 용기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입법을 발의할 국회의원의 등장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용기 있는 장관과 국회의원을 기다린다

전체 장애인의 88.9%가 후천적 장애인이다. 어느 순간 내가 신장 투석을 받는 내부 장기 장애인이 될지도 모르고, 나이 든 내 부모가 척추 손상으로 휠체어를 타게 될지도 모른다. 내 자식이 낳은 어여쁜 손주가 자폐 확진을 받을 수도 있고, 가장 친한 친구가 뇌졸중 후유증으로 네 살 아이가 돼버릴지도 모른다.

복지정책은 그런 모두의 미래를 위한 보험이 돼야 한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구실을 해야 한다. 현실의 삶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개별 지원으로 장애 정책의 변화가 절실한 이유다. 매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 먹는 복지’를 하는 것도 슬슬 힘에 부친다. 이렇게 각 가정이 발버둥 치며 정보를 모으고 애써 찾아 먹지 않아도 되는 ‘찾아가는 복지’가 실현될 날을 기다려본다. 너무 늦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글·사진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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