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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연의 더불어, 장애

내 세금으로 장애인만 호의호식하나?

자격 미달 돌봄 인력 때문에 숨진 A씨, 돌볼 사람이 없어서 숨진 B씨, 미래에는 더 중요해질 ‘돌봄’

제1378호
등록 : 2021-09-01 18:49 수정 : 2021-09-0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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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의 전시회에 참여한 쌍둥이. ‘엄마’라는 말을 처음 한 아들과 꿈으로 가득 찬 딸이 맞이하는 미래를 어떨까.

자폐성 장애인 A씨는 장애인보호센터 직원들이 평소 먹지 못하는 김밥과 떡볶이를 강제로 먹인 뒤 기도가 막혀 숨졌고, 뇌병변 장애인 B씨는 직장도 없고 갈 데도 없이 집에만 있다가 한여름 폭염이 내리쬐는 옥탑방에서 고독사했다. 모두 최근에 일어난 장애인 사망사고다. A씨는 사람들 때문에 숨졌고 B씨는 사람이 없어서 숨졌다. 전혀 다른 양상인 것 같지만 두 사건의 본질은 같다. 돌봄 노동자, 즉 ‘지원인력’ 문제가 두 사건의 핵심이다. 지원인력은 그 수가 지금의 몇십 배로 대폭 늘어나야 한다. 인원수만 늘려서도 안 된다. 전문화돼야 한다. 고수익이 보장돼야 한다. 돌봄 노동자가 하나의 당당한 서비스직이 돼야 한다. 지체할 시간은 없다. 이를 위한 기반을 지금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꽤 많은 경우 이런 반응에 직면한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장애인만 호의호식하려는 거냐고. 아무 상관도 없는 장애인 뒷바라지하려고 내가 열심히 일해서 세금 내는 줄 아냐고. 나에겐 상처가 되는 말이지만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아마 나 또한 ‘발달장애인 아들의 엄마’가 아니었다면 같은 말을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설득하고 싶다. 그런 거 아니라고. 더 크고 멀리 보면 그게 결국 나와 내 가족을 위하는 일이라고.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거라고.

기자가 되겠다는 딸에게 기자 아빠의 답
얼마 전 남편이 카드회사의 전화를 받았다. 매달 걸려오는 결제대금 안내 전화다. 통화를 마친 남편이 “이젠 이런 것까지”라고 한다. 상담원이 아니었다고 한다. 음성 안내 시스템이었단다. 어쩐지 “네” “네” “○○은행” “77○○○○” 등 개인정보를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고 발음도 또박또박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비장애인 딸은 미래 희망 직업이 여러 개 있는데 가장 되고 싶은 건 ‘놀고먹는 것’이지만 ‘기자’라는 직업도 2위인가 3위인가를 차지하고 있다. 기자인 아빠와 기자였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인데 “나중에 기자도 하고 싶어”라는 말에 남편이 “하지 마”라며 선을 긋는 걸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기레기’가 아닌 사명감 지닌 기자로서의 보람이 얼마나 큰데 그걸 막느냐고 뭐라 했다. 돈을 많이 못 벌어 그러느냐. “돈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삶엔…”이라며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으려는 찰나 “얼마 뒤 없어질 직업이야”라는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하아~. 4차 산업혁명과 그에 따른 직업군 변화 앞에선 할 말이 없다.

나는 미래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할지 사실 감도 못 잡겠다. 막연한 생각을 할 뿐이다. 하지만 확실하게 아는 건 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직업의 상당수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미 식당에 가면 사람 대신 키오스크가 자리잡고 있고, 마트에서도 계산원의 수가 줄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를 기계에 내준 건 오래된 일이고, 요즘 딸은 인기 있는 아이돌 대신 노래하는 프로그램의 보컬로이드 가수인 ‘시유’를 좋아한다. 거기에 전화상담원까지. 그리고 앞으로는 기자도, 택시 기사도, 농부도, 판사도, 의사도, 어쩌면 대통령까지.

지금도 취업이 어렵다고 난리다. 일자리가 없다. 기존 일자리에서 일을 찾으려 하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앞으론 더 많은 일자리가 ‘기술’로 대체될 텐데 그때가 되면 ‘사람’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술이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일자리
기술이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일자리. 나는 대표적인 게 돌봄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돌보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돌봄이라는 게 그런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업무처리 능력만이 아닌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과 지속적이고 애정 어린 관심과 빠른 상황 판단 능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일자리는 딱딱한 기술이 대체할 수 없다.

장애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기술’에 일자리를 내주고 일거리를 찾아헤맬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돌봄 인력은 대폭 늘어야 한다.

그렇게 확충된 돌봄 노동자는 장애인만이 아닌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 우리 모두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늙어도, 아파도, 장애가 있어도, 어려도, 가난해도 방치되지 않고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확충된 돌봄 일자리는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미래의 고마운 수입원이 될 것이다.

그 수가 늘어나는 만큼 전문화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돌봄 노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지금 이 분야 종사자들의 처우는 그리 좋지 않다. 그러다보니 자격 미달의 노동자가 자꾸 뉴스에 나오고 그런 이들로 인해 다치고 죽는 사람도 계속 나온다. 돌봄 노동의 전문화가 진행돼 자격 미달인 이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돼야 하고 그만큼 남아 있는 이들의 처우는 더 공고히 보장돼야 한다. 돌봄 인력이 하나의 당당한 전문 서비스직이 돼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다.

‘엄마’란 말을 처음 한 아들도, 꿈으로 가득 찬 딸도
A씨는 자격 미달 돌봄 인력 때문에 숨졌고 B씨는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숨졌다. 나는 이제 막 ‘엄마’라는 말을 처음으로 한 13살 아들이 같은 일을 겪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미래에 살고 싶지 않다.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찬 13살 딸이 10년 뒤 일거리가 없어 좌절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다. 아들도 살리고 딸도 살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늙어갈 일만 남은 나도 살고 싶다. 돌봄 인력의 재정비, 확충, 전문화, 정책화.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나중에 닥쳐서 하려면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른 뒤일지 모른다.

글·사진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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