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부르다. 오삼불고기에 고봉밥을 허겁지겁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장애’ 지난 칼럼에 장애인 탈시설 대안으로 지원주택을 소개한 뒤 욕을 많이 먹어 배가 부르다.
공개된 글을 쓰는 자는 글에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책임에는 욕먹을 책임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욕을 먹더라도 정당한 이유로 욕먹고 싶다. “에스엔에스(SNS) 사진과 실물이 달라 딴사람인 줄 알았다. 사기다!” 이런 욕은 얼마든지 대환영. 욕먹는 내용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아들이 기능 좋은 발달장애인이라 자립생활이 가능해 탈시설에 관한 글을 썼다고 오해받으면 세상 억울하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될 아들은 아직도 말 한마디 못하고 사회성 발달이 2~3살 수준에 머물러 있는, 24시간 밀착 지원이 필요한 최중증 발달장애인 이다.
나는 왜 최중증 발달장애 아들을 위해 시설이 아닌 지원주택이라는 탈시설 대안에 한 표를 던진 것일까. 오늘 칼럼은 그 여정에 관한 얘기다. 차마 아들 혼자 남겨두고 죽을 수 없어 시설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 헤맨 엄마의 이야기다.
아들은 발달장애 중에서도 최중증이다. 한 치료사는 아들을 두고 “혼자 힘으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발달장애인 중 가장 중증”이라 했고, 한 특수교사는 “20년 넘게 특수교사를 하면서 만난 학생 중 가장 예후가 안 좋다”고 했다. 이 정도 주변 증언으로도 감이 안 잡히면 구체적 사례로 들어가본다.
며칠 전 자다가 눈을 번쩍 떴다.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기에 불을 켜고 살펴보니 밥솥이 마그마처럼 달궈진 상태로 하얀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얼른 코드를 뽑고 보니 ‘보온’에 맞춰져 있어야 할 버튼이 ‘취사’에 맞춰져 있다.
아들이 범인. 엄마가 밥할 때 쌀을 씻어 밥솥에 넣은 뒤 ‘취사’ 버튼 누르는 걸 반복적으로 본 아이는 언젠가부터 밥이 먹고 싶을 때마다 밥솥 앞으로 가 ‘취사’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램프에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지니의 마법처럼 “저 버튼을 누르면 밥을 준다”는 하나의 패턴이 머리에 입력된 것이다.
밥솥은 엉망이 됐다. 내부 전선이 홀라당 타버린 듯했고 안에 있던 밥은 뜨거운 온도에 달궈져 주황색으로 변해 있었다. 주황색으로 열받은 밥은 내 생애 또 처음. 조금만 늦게 깼어도 화재로 이어졌을 상황이다.
아들을 붙잡고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도 없다. 밥솥 안에 밥이 남아 있을 땐 보온이어야 한다, 취사는 새로운 쌀로 밥을 처음 할 때만 누른다는 이 어려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은 매일 그날 먹을 밥만 해서 다 먹어치우고 버튼을 아무거나 눌러도 문제없게끔 밥솥 코드를 뽑아놓는 것이다.
이런 아들은 혼자 살 수 없다. 내가 아들보다 오래 살 수도 없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
성인이 된 아들 앞엔 5개 선택지가 놓일 것이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하든가 △(소규모 시설인) 그룹홈에 입소하든가 △엄마랑 살던 집에서 엄마가 죽고 난 뒤에도 계속 살아가든가 △임대주택을 빌려 혼자 살아가든가 △지원주택 등 탈시설 대안 주거모델에 들어가 살든가 하는 것이다.
먼저 지금 사는 집에서 아들 혼자 살든가, 임대주택에 당첨돼 혼자 사는 건 선택지에서 제외한다. 지원인력이 없으면 아들은 살아갈 수 없다.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아들의 일상을 지원하겠지만 곁에 머무는 시간은 한정돼 있다. 13살 아들의 활동지원 시간은 월 128시간인데 성인이 되면 이 시간은 더 줄어든다. 아마 혼자 남겨진 지 얼마 안 돼 실종이나 사고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시설은 노’인 이유는최중증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들이 공통으로 갖는 이 두려움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시설에 보낸다. 그곳에선 지원인력 없이 혼자 남겨져 사고를 당하거나 실종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면 아들도 시설에 가야 할까? 내 대답은 ‘노’(No)다.
내가 ‘시설은 노’라고 외치는 가장 큰 이유는 외출을 못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이유 같지만 ‘외출을 못한다’는 하나의 사실이 품고 있는 의미는 크다. 아들은 개별 지원이 아닌 단체 지원 서비스만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먼저 외출부터 보자. 아들이 외출하려면 일대일로 지원할 인력이 필요하지만 아들이 시설에 입소하는 순간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는 끊긴다. 중복지원이라는 판단에서다.
시설에선 생활지원교사 1명이 이용인 5~6명을 담당하거나 상황이 열악한 곳은 10명 이상을 책임진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은 지금 살아가는, 그냥 평범한 삶의 방식(운동 삼아 매일 동네를 산책하거나, 주말이면 한강이나 대형 쇼핑몰에 놀러 가거나, 가끔은 외식한 뒤 카페에서 디저트로 초코케이크를 먹는)을 모조리 시설에 맞춰 바꿔야 한다.
낮에는 시설 내 작업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시설 내 생활관에서 잠들고, 단체 외출할 때만 봉고차를 타고 시설 밖에 나갈 수 있고, 마트에 가는 것조차 일상이 아닌 체험 프로그램 진행하듯 견학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일 대 다수의 지원체계 아래에선 ‘24시간 지원(돌봄)’이라는 시설의 가장 큰 장점(?)도 빛을 잃는다. 낮에도 부족한 지원인력은 밤이면 그 수가 더 줄어든다. 생활지도교사가 정해진 시간마다 순찰하지만, 방에 있는 아들이 아프거나 다쳐도 어떤 형식으로든 본인이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으면 즉각적인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
다음으로 눈을 돌린 곳은 소규모 시설인 그룹홈이다. 그룹홈은 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소규모 가정형 시설이다. 3~5명의 장애인 당사자가 사회재활교사와 함께 그룹홈에서 거주한다.
“앗! 혼자 살면 외로운데 친구와 함께 살면서 아들을 지원해줄 인력까지 한집에서 같이 산다고?” 기쁜 마음에 자세히 알고 싶어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에도 연락하고 개별 그룹홈에도 전화해 문의했다. 궁금한 것을 잔뜩 물어본 뒤 나는 선택지에서 그룹홈도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룹홈도 시설이기 때문에 그룹홈에 입소하면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가 끊겼다. 혼자 외출이 불가능한 아들은 꼼짝 않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처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룹홈에 입소하려면 낮 시간을 보낼 곳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한다. 사회재활교사가 한집에 같이 있긴 하지만 24시간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법적으로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룹홈에 거주하는 당사자들은 직장이든 어디든 밖에 나가 있어야 한다는 게 암묵적인 규칙, 입소 자격이라고 했다.
회사에 월차를 내도, 몸이 아픈 날 어쩌다 일찍 퇴근해도, 주간활동서비스가 오후 1시에 끝나도, 당사자는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에 들어가야 한다. 활동지원사도 없이 혼자서, 하아~.
그렇게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한숨이 푹푹 나는 날을 보내던 중 지원주택의 존재를 알게 됐다. 임대주택에 들어가 살기에 자립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이 적었고 지원인력이 상주하기에 ‘돌봄’ 문제에서도 한시름 놓을 수 있는 주거모델이었다. 시설이 아니기에 활동지원 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고, 함께 살 동료를 선택할 수 없는 그룹홈과 달리 지원주택에선 혼자 살지, 누구와 함께 살지 등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다.
아들이 지원주택에 들어가 사는 미래를 상상해봤다. 아들 친구 A, B와 함께 셋이 한집에 살아도 좋겠다. 셋은 각자의 활동지원사와 함께 직장이든 평생교육센터든 주간활동서비스든 각자 스케줄대로 낮 동안 움직이고, 각자 일정이 끝나는 대로 집에 와선 셋이 도와가며 일상을 꾸리게 되겠지.
셋이 함께 산다고 아무런 지원이 없으면 그것도 걱정. 그런데 바로 옆집에 위치한 지원센터에서 주거코치가 요리, 빨래, 병원 일정, 은행 업무 등 당사자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지원한다니…. 마음이 확 놓였다.
밤에는 어떡하냐고? 어차피 시설에 살아도 마찬가지였다. 밤에 자다가 아파도 본인이 어떤 식으로든 의사를 ‘직접’ 표현하지 않으면 도움받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열심히 반복학습 시키는 수밖에. 자다가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거실에 있는 벨을 누르라고, 아니면 옆집으로 건너가 벨을 누르라고. 소리라도 지르라고.
그렇게 지원주택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주거코치와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동시에 받는 아들을 보면 나는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먼저 눈감을 수 있지 않을까.
방향성을 정하고 대안을 요구해보자탈시설 대안으로 지원주택 확충을 요구하자는 지난 칼럼은 이런 과정을 거쳐 나왔다. 아들로 인해 알게 된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현실은 차가웠다. 정치인은 표가 필요할 때 외에는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없었고, 보건복지부는 10개를 요구하면 그중 1개를 선심 쓰듯 던져주는데, 그 1개를 받은 기획재정부는 필요한 예산의 10분의 1가량만 간신히 내주니, 간신히 얻은 1개의 정책마저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하곤 했다.
그래서였다. 적어도 방향성이라도 탈시설로 정하고 대안을 내놓으라며 꾸준히 요구해보자고. 그래야 1개씩, 1개씩 던져주는 것들이 모여 20년, 30년 뒤엔 비로소 제대로 된 정책으로 정착되지 않겠냐고. 지금 당장 시설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적어도 우리가 방향성이라도 그리 잡고 가야 이 나라는 뭐라도 만들어보려고 애쓰는 척이라도 하지 않겠냐고.
지난번에 이어 2주 연속 같은 주제의 칼럼을 쓰는 이유다. 그만큼 나는 함께 힘을 모으자는 얘기가 하고 싶었다. 탈시설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우리가 가진 두려움은 매한가지이기에. 나는 잘 죽고 싶고 자식은 잘 살리고 싶은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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