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데리고 경찰서로 향했다. 아들의 실종에 대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두고 싶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실종이다. 키는 어른만큼 크지만 말도 못하고 거리를 다닐 때 차를 의식하지도 않고 세 살 정도의 사회성을 보이는 발달장애인 아들이 어쩌다 혼자 남겨질 경우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지난겨울 한적한 곳으로 산책 나와 엄마와 숨바꼭질하다 끝내 한강에서 발견된 청년 이야기는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안전벨트 하나라도 채우자. 안전벨트가 사고 자체를 예방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확보해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후속 조처에서 차이가 날 것이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지문 등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경찰서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복지카드 재발급을 위해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나서다. 갓난아이 백일사진을 찍듯 “동환아, 여기 봐봐. 여기야, 여기. 옳지. 아이고 예쁘네”라고 오두방정을 떨며 간신히 정면 사진을 찍었는데 결과물을 보고 난감해졌다.
눈도 크고 코도 오뚝하고 얼굴도 뽀얀, 내 아들이지만 아들 같지 않은 초등학생이 사진 속에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사진관은 내 증명사진도 실제 나이보다 20년쯤 젊게 만들어준 곳이었다. 나는 나 같지 않은 내 사진에 크게 만족하며 염치도 없이 그 사진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들었지만 아들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요즘 들어 부쩍 달리기가 빨라진 아들을 뒤에서 쫓아가는 게 버거워진 터. 혹 그러다 놓치기라도 하면 복지카드 사진이 전단에 쓰이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에 최대한 실사에 가까운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러다 내친김에 만일의 실종에 대비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미리 해두자는 생각으로까지 확장됐다.
지문 등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지역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전화를 걸었다.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에 단체로 지문 등록을 했다는 알림을 받은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지. 주민번호를 말하니 2013년에 지문과 사진을 등록했다고 한다. 2013년이면 다섯 살 때다. 초등학교 6학년 형님이 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다. 한 번 등록했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몇 년마다 사진을 다시 찍어 등록해야 함을 알았다.
손가락에 빨간 인주를 묻혀 지문을 찍을 거란 내 예상은 틀렸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지문인식기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으니 곧바로 찍힌 지문이 컴퓨터 화면에 뜬다. 다섯 살 때 찍은 지문이 있지만 지금 찍은 게 더 선명해서 바꾸기로 했다.
유전자 보관했다가 사건 일어나면 등록다음은 사진. 보정하지 않은 증명사진을 내밀었더니 필요 없다고 한다. 형사가 손에 쥔 작은 카메라로 찰칵찰칵 사진을 찍자, 아들 얼굴이 컴퓨터 화면에 떴다. 정면을 향한 사진을 골라 클릭 한 번으로 쉽게 등록을 마 쳤다.
지문과 사진을 등록했더니 옆에 ‘전단지’라고 쓰인 메뉴가 보인다. 전단 만드는 툴이라고 한다. 실종 사건이 일어나면 등록된 사진을 토대로 곧바로 전단을 만들어 인쇄에 들어간다. 사진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는 게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전자도 등록할 수 있을까? 유전자 등록을 하고 싶다고 했다. 화상이나 상처로 지문 확인이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했다. 형사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철로 된 납작한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유전자 등록 키트란다. 이 상자 안에 채취한 유전자를 넣어 보관한다고.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사건이 일어나기 전 유전자 등록은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채취한 유전자를 키트에 담아 가정에서 보관하다 만일의 사건이 발생하면 그때 경찰서에 유전자를 등록하는 거라고 했다. 손톱과 머리카락을 넣을 거라던 내 예상은 또 틀렸다. 키트 안에 마련된 커다란 면봉으로 입안과 혀를 싹싹 긁어 상피세포를 보관했다. 형사에게서 채취 방법을 자세히 설명 들었다. 보물단지라도 되는 양 유전자 키트를 꼭 껴안았다.
실종 대비책의 마지막 단계는 배회감지기다. 경찰서는 발달장애인 실종 대비책의 하나로 배회감지기를 배포한다. 일종의 위치추적기다. 하지만 지역마다 예산에 따라 보유한 수량과 제품이 달라 확인해야 한다. 다른 지역에서 신발에 착용하는 배회탐지기를 본 적 있는데, 우리 지역 경찰서의 경우 시계 형태로 된 배회감지기를 배포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물량이 없다고. 8월께 새 물량이 들어온다기에 신청하고 왔다.
이날 내가 아들과 경찰서에 가서 한 일은 총 네 가지다. 지문과 사진을 재등록했고, 유전자 키트를 받았으며, 배회감지기를 신청했다. 모두 사전 예방이 아닌 사후를 대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실종 사건이 일어나면 지문이나 유전자 같은 건 당장 중요치 않다. 모두의 관심, 그것처럼 절실한 게 없다. 계절과 상황에 맞지 않는 옷차림으로 서성대거나 부쩍 불안해하는 모습의 누군가를 마주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조금만 지켜봐주길 바란다. 관심 갖고 지켜보면 알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
사춘기 아들은 이젠 어릴 때처럼 엄마 손을 잡고 다니지 않는다. 가고 싶은 방향으로 무작정 달려간다. 뻐걱거리는 내 무릎은 젊고 튼튼한 다리를 가진 아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럴 때면 쌍둥이 딸이 뒤처진 엄마를 대신해 앞으로 쌩 달려간다. 누나와 잡기놀이 하는 줄 아는 아들은 신나서 깔깔거린다. 하지만 자신을 뒤따라오는 누나가 늘 함께 있을 순 없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최소한의 대비책을 마련해놓는 것. 아들과 함께하는 삶에선 이런 모습이 일상이다.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현실의 모습이다.
글·사진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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