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인류를 덮친 코로나19로 깨달은 게 수없이 많지만, 그중 가장 핵심은 우리가 현재 ‘어떤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지다. 경제는 망해가는데 주가는 올라가고, 자영업자들은 죽어가는데 투자가 붐이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 우리는 이미 이런 세상에 살고 있었다. 이른바 ‘믿을 만한’ 자본주의의 모습은 사라지고, 우리가 ‘본 적 없는’ 자본주의로 변화했다. 이 사실을 대낮에 폐업한 가게 앞을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으로 주가를 확인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선명하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팬데믹 이후의 사회를 이야기하며 “자본주의가 이미 급진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급진적 자본주의’라는 표현이다. 원래 ‘급진적’이란 말은 좌파의 것이었다. 급진적 페미니즘, 급진적 생태주의 같은 것은 물론 ‘이것이 더 급진적인 변화이다’라는 것은 ‘왼쪽 사상’의 기본 캐치프레이즈(구호)였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변신하는 지금 ‘왼쪽의 상상력’은 허덕거리면서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 보인다.
기후위기만 해도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생태주의는 환경파괴로 인해 삶의 터전이 파괴된 이들의 것이 아니라 자본의 것이 되었다. 친환경이란 이름을 자본이 어떻게 가져다 쓰는지, 그리하여 그들의 자본이 얼마나 증식하는지는 동네 슈퍼마켓 진열대에만 가도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어떤 진보주의자들이 기후위기에 맞서겠다며 제안하는 게, 도심에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수준이다. 그런 ‘낡아빠진’ 자동차들을 우리 사회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지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가부장제에 맞선다는 여성주의는 어떤가. 이미 한국의 자본주의는 가부장제를 무너뜨렸다. 한 사람의 수입으로 그 한 사람 이상이 먹고살 수 없게 되었을 때, 정상 가족 속에 유지되던 가부장적 권력도 실제적으로 끝났다. 남은 것은 옛 가부장제의 습속에 저항하는 클리셰다. 명절에 전 부치기 싫다는 펼침막이 21세기 여성주의의 캐치프레이즈라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이 와중에 자본주의는 이런 사상이 원래 저항하려 했던 대립을 이용한다. 기업은 친환경과 환경파괴의 대립을 부추기고, 소득자본이 줄어드는 것을 노동자 사이의 성대결로 은폐한다.
한때 ‘급진적’으로 제시됐던 대립을 자본주의가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시대에, 도리어 이에 저항하는 방식은 고전적으로 보인다. 얼마 전 독일 연방노동법원은 플랫폼노동자 ‘크라우드 워커’(Crowd Worker)가 노동자로서 법적 지위를 가진다고 판결했다. 독일에서도 플랫폼노동자는 자영업자로 분류됐다. 이런 판결을 이끌어내도록 소송을 지원한 쪽은 독일 금속노조였다. ‘노동자 지위’란 개념이 아직은 남아 있기에 그나마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저항해야 하는 건 무엇인가새로운 방식으로 싸우든 고전적 방식으로 싸우든, 코로나19 국면이 재확산되고 길어지면서 우리는 점점 냉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때 우리가 신선하게 여겼던 왼쪽의 기획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도 다 드러날 것이다. 씁쓸하지는 않다. 20세기 사람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런 말을 했다. “공산주의는 급진적이지 않다. 급진적인 것은 자본주의다.” 한 세기 전의 통찰을 지금도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질 뿐이다.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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