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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피플파워와 초엘리트들

등록 2020-09-12 10:30 수정 2020-09-15 10:10
연합뉴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피플파워’라고 했지만 이 정권의 성격은 엘리트주의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소수 지배계층에 속한 사람들끼리 통용할 논리를 당연한 것처럼 얘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느 여당 출신 인사의 “조국 전 장관은 대한민국의 초엘리트”라는 말도 이 점을 드러낸다. 특정인이 엘리트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엘리트니까 그럴 수 있다”는 걸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보수야당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사진)의 아들 문제를 두고 ‘제2의 조국 사태’라고 하는데, 물론 법적 기준으로 보면 두 사안은 완전히 다르다. 추미애 장관 사건에는 사학재단을 운영하는 집안도, 56억원에 이르는 재산도, 금융사기꾼에 가까운 5촌 조카도 없다. 그러나 앞서 ‘초엘리트’란 기준으로 본다면 비슷한 느낌도 있다. 군에서 발생한 문제 해결을 위해 부모의 부하 직원을 동원할 수 있는 군인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실체는 아직 베일에 가려 있다. 국민의힘이 며칠에 걸쳐 떠들썩하게 공개한 ‘녹취록’이란 것에 등장하는 군 관계자들은 모호한 말을 하거나 상황을 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당시 일부 여당 관계자가 추미애 장관 아들의 편의를 목적으로 활발히 움직인 건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추미애 장관은 신속한 검찰 수사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라는 특수성과 검찰이 8개월 동안 사실상 수사를 뭉개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임검사는 아니더라도 수사에 독립성을 기할 수 있는 실질적 조처가 필요하다. 이게 선제로, 또 적극적으로 돼야 의문을 갖는 여론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엄호에 나선 여당 의원 일부의 주장은 사태를 악화하고 있다. 보좌관의 전화는 청탁이 아니라 문의라면서 식당에서 김치찌개 빨리 달라고 한 것과 같다는 발언도 나왔는데, 군대는 식당이 아니다. 카투사 자체가 편한 군대라 휴가 논란은 별 의미가 없다는 우상호 의원의 주장은 “엘리트니까 그럴 수 있다”는 얘기와 비슷한 뉘앙스로 다가온다.

엘리트의 대중 지배는 합의된 통치 방식을 대중이 수용함으로써 정당화된다. 의혹이 제기되면 물의를 일으킨 것에 일단 사과하고 수사에 적극적으로 임해 명예회복의 길을 찾겠다고 하는 것도 이런 행태의 하나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의 태도는 이런 ‘합의’가 무너졌다는 걸 보여준다. 합의된 통치가 아니라 양대 엘리트 파벌의 아귀다툼에 모든 사회적 자원이 동원되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출신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카카오 너무하군요. 들어오라고 하셍”이란 메시지도 이런 사례다. 윤 의원은 2015년 네이버 임원 신분으로 국회에 나왔을 때는 포털 사이트 기사 배치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은 언론 자유 위축이라고 했다. 2015년과 2020년의 ‘윤영찬’을 하나의 일관성으로 이해하려면 ‘파벌’을 기준으로 하는 수밖엔 없다.

이런 사건은 개혁이란 명분이 대립을 정당화하는 근거로만 쓰이는 현실을 드러낸다. 하지만 바람직한 것은 그 반대, 즉 개혁하기 위한 대립이다. 이걸 위해선 개혁을 위해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 다 가질 순 없다. 정치적 책임이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정하는 게 본질이다. 여당 사람들은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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