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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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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업에서도 ‘관계’가 먼저

학교가자닷컴 신민철 교사의 수업에 참여해보니…
교사는 체력 소모 크고, 학생은 집중 어려워
등록 2020-05-04 23:59 수정 2020-05-07 14:35
3월 현직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구축한 온라인 학습터 ‘학교가자닷컴’에서도 4월16일 온라인 개학식을 열었다. 화면 갈무리

3월 현직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구축한 온라인 학습터 ‘학교가자닷컴’에서도 4월16일 온라인 개학식을 열었다. 화면 갈무리

4월27일 월요일 오전 9시, 화상회의 서비스 ‘구글 행아웃 미트’ 링크 주소를 따라 서울 광진구에서 대구 달서구 진월초등학교로 향했다. 1분 남짓 접속 과정을 거치자 교실에서 수업을 준비 중인 5학년3반 담임 신민철 교사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출석 체크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예상은 적중했다. 9시30분 수업 시간이 임박해서야 학생들이 하나둘 화상회의 창으로 들어왔다.

“마이크 켜고 응답하세요. 채팅창에 쳐도 됩니다. 서로 인사하세요. 누가 아직 안 왔지?”

“쌤 ○○이가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다시 잠들어 결국 선생님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학생 1명을 제외한 19명이 이날 실시간으로 진행된 사회 수업에 참여했다.

“미리 안내해주는데, 오늘 배울 내용이 조금 지루하다.”

“무슨 내용인데요?”

모니터에 지도가 나타났다. 우리나라 영해가 어디까지인지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수업 마지막엔 멘티미터(실시간으로 의견을 모으는 웹사이트 도구)를 활용해 그동안 배운 내용을 퀴즈로 함께 풀었다. 누가 정답을 맞혔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이날 수업으로 느낀 점을 써보는 데까지 선생님의 분투가 40분간 이어졌다.

와이파이 없는 21세기 교실

코로나19로 사상 초유의 초·중·고 온라인수업 시대가 열렸다. 한국전쟁 중에도 천막을 치고 학교 문을 열었는데, 모든 학생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난’ 요즘 학생들보다, 교사들의 당혹감이 더 컸다. 당혹감에는 학교의 열악한 상황도 한몫했다.

4월28일 ‘코로나로 미리 온 미래교육과 학교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교육 4개 단체 공동포럼에 참여한 전대원 경기도 위례한빛고등학교 교사는 온라인수업 준비가 녹록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21세기 학교에 와이파이(무선 인터넷)가 깔려 있지 않다거나 클라우드(온라인 저장공간)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상업용 전자우편을 사용할 수 없다거나.”

교육부가 제시한 온라인수업은 크게 세 가지다. 실시간 화상 수업, 학생이 미리 제작된 강의를 보고 교사가 피드백하는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 학습 내용 요약 같은 과제 수행 중심 수업이다. 신민철 교사는 하루 한두 시간 화상 수업, 영상 콘텐츠 활용 수업, 과제를 주고 개인별 피드백을 주는 수업을 하고 있다. 신 교사가 근무하는 학교에선 모든 학생에게 태블릿PC를 나눠주었다.

신 교사가 온라인수업을 준비한 것은 2월부터다. 코로나19 환자가 매일 급증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개학은 힘들 것이라 직감했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 다른 교사들과 함께 학년별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는 온라인 학습터 ‘학교가자닷컴’(학교가자.com)을 기획한 배경이다. 3월2일 문을 연 학교가자닷컴은 현재 전국 유치원, 초·중·고 교사 100명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학교가자닷컴 사례처럼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유례없는 ‘교사 간 협업’이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4월27일 대구 진월초등학교 신민철 교사가 진행한 실시간 화상 수업 화면. 참여자 의견을 실시간으로 모을 수 있는 웹사이트 도구 ‘멘티미터’를 활용해 학습 내용을 퀴즈로 풀고 있다. 화면 갈무리

4월27일 대구 진월초등학교 신민철 교사가 진행한 실시간 화상 수업 화면. 참여자 의견을 실시간으로 모을 수 있는 웹사이트 도구 ‘멘티미터’를 활용해 학습 내용을 퀴즈로 풀고 있다. 화면 갈무리

‘영상 속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알까

1991년 태어난 신민철 교사는 2017년 군 제대 뒤 대구 하빈초등학교 4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에듀테크’(에듀케이션과 테크놀로지를 합친 말로,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교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수학 과목이 특히 부진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심하다, 미국의 비영리 온라인 교육기관 ‘칸아카데미’를 접하게 된다. 칸아카데미에선 개인 학습 속도에 맞춘 연습 문제, 동영상 수업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 학생들이 문제를 풀어나가자 어느 지점이 취약한지 데이터가 모였고 이 정보를 활용해 눈높이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디지털 교육을 활용해온 신 교사에게도 학생을 직접 만나지 않는 온라인수업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1시간 화상 수업을 하면, 교실에서 3시간 수업한 것 같은 체력 소모가 있어요. 교실에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으면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데, 온라인수업에선 이런 활동이 어렵죠.”

화상 수업에 직접 들어가보니 신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들이 서로를 잘 아는 눈치였다. 4월16일 온라인 개학을 하기 이전부터 ‘화상 학급’을 열어온 덕이다. 온라인수업을 하려면 ‘관계’ 만들기가 필수적이다. 사단법인 좋은교사운동도 4월 말까지 학생·학부모와 전화 통화나 화상 대화,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직접 찾아가는 온라인 가정방문 캠페인을 했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낮은 학년일수록 영상 속 선생님을 ‘우리 선생님’이라고 인지하기 어렵다”며 “온라인수업 환경에선 학부모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교사가 학부모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해주고 때로는 역할을 주문하거나 안내하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의 예절을 ‘온라인’에서도 실현하려고 한다. 신 교사는 “수업 시간에 딴짓해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이 상처받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건 잘못이라고 강하게 이야기한다”며 “온라인 방에서는 서로 비난하지 않고 인터넷 용어를 쓰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했다”고 말했다.

다시, 왜 학교 교육인가?

불현듯 닥친 온라인수업 시대는, 역설적으로 학교 교육이 왜 필요한지 되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학원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강의나 교육방송(EBS) 수능 특강과 학교 수업이 다르지 않다면, 굳이 교실이라는 공간에 모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김영식 공동대표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상호작용과 정서적 교감을 인터넷이 모두 대체할 수 없음을 새삼 느낀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호작용하면서 배우는 과정을 모니터링해주고 그에 맞는 피드백을 하는 게 어찌 보면 교사가 하는 수업의 본질적 요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닫힌 교실 문이 언제 다시 열릴지 아직 알 수 없다.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해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운’ 수업 환경 조성은 여전히 큰 숙제다. 신민철 교사는 교육 방식뿐 아니라 내용도 코로나19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식을 아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협업과 토론·토의가 잘되는, 실패를 가치 있게 여기는 학교가 되길 바라요.”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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